할시온 런치(Halcyon Lunch)

(빨려들어가는 표지다... 1권 표지가 히요스, 2권이 트리아조.)

본인은 사무라 히로아키의 팬임을 자처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의 작품 중 한국에서 정발된건 다 읽어봤다고 자부하고 있기도 하다.

딱 하나, [무한의 주인]빼고.

이런 사무라교 사이비 신봉자인 내가 처음으로 접한 사무라류 만화가 바로 이 [할시온 런치]다.

제목을 한글로 해석하면 [편안한 점심]이다.

제목과는 한참 괴리되어있는 내용인게 뻔하다. 사무라 히로아키인걸.

편안하기보단 불편하고, 점심식사보다는 오히려 토해내는 쪽에 가깝다. 아니, 확실히 토해버리는 작품이다.

일단 장르는 “사랑의 SF코미디”라고 출판사는 말하고 있는데,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막장 구토계 SF코미디”에서 “뽕빨 구토계 SF코미디”로 진화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일견 [시끌별 녀석들]풍의 명랑 연애물이나 [멋지다 마사루]풍의 하이개그물로 비춰질 수도 있는 발언이다.

하지만 독자입장에서 말하자면 둘 다 아니라고 평하고 싶다.

사랑이야기라고 하기엔 징그럽고, 코미디라고 하기에는 기괴하다.

뽕빨물이냐고 한다면....... 확실히 미소녀는 셋 정도 나오지만 말초신경을 자극하기 보다는 그냥 멍청하거나 구토를 일삼거나 아주 조금 귀여운 정도다. 게다가 그 셋 중 하나는 이미 "소녀"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나이이기도 하고...

이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은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데, 작가의 센스에 동의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변태같은 막장만화”로 읽히는 것 같고, 작가의 센스에 크게 공감하는 사람들에게도 “변태같은 막장만화”로 읽히는 편이다. 요컨대, 변태같은 막장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즐길 수 없다는 거다. 다만, 여기서의 “변태같은”이라는 표현은 성적으로 야하다기보다는 기괴하다는 뜻에 더 가깝다.

메인히로인인 “히요스”의 특징부터가 다른 히로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어느 날 갑자기 10대 미소녀형태의 외계인이 우주에서 날아와 지구인 남성에게 들러붙어 산다는 내용은 그야말로 외계소녀물의 정석을 달리는 것 같지만, 그 들러붙은 상대가 사업을 말아먹은 40대 홈리스다. 게다가 히요스의 특기는 무엇이든 먹고(맨 처음 먹은 것이 리어카였다.) 그것들을 기괴하게 융합된 형태로 토해낼 수 있는 것이다(사진1). 토해낸다고 해서 우아하게 재생성낸다던가 어딘가의 마법사 나부랭이가 간장.막야를 뽑아내듯 “뿅!”하고 나오고 그런 건 상상도 하지 않는것이 좋다. 먹는 것은 하이테크놀러지로 맛있게 먹는 주제에 토해낼 땐 목구멍에 손가락을 찔러 넣어서 그야말로 “아날로그 방식으로” 토해낸다(사진2). 게다가 용서 할 수 없는 점은 그 토해낸 직후의 표정이 참을 수 없게 에로틱하다는 점이다.

사진1. 불량배 둘, 민물게, 물고기, 리어카와 배낭을 삼킨 후 토해낸 생물이다.

사진2. 이 장면에서 잠깐 쇼크.

원래 만화라는 건 상업적인 목적을 가지고 대중에게 공개되는 것이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지켜지는 룰이 몇 가지 있다.그 [룰]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인용 에로만화가 아닌 이상 섹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라던가, 사회 통념상 비상식적이라고 생각되는 성적취향에 대한 표현을 가급적 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할시온 런치]는 그러한 사회의 암묵적인 룰들을 전혀 개의치 않고 작품의 전면에 내세운다. 딸아이뻘의 여자아이를 가운데 두고 남녀가 섹스를 논하는 장면이나,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고등학생 친누나에게(엄밀히 따지면 친누나는 아니지만...) 성적으로 자극 받아 거기를 주물거리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충격적인 장면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화 내에서 이런 장면들은 마치 별 일 아닌 듯이 자연스럽게 연출되어서 “야하다”라는 생각보다는 “깨알 같은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성적인 표현에 대한 통념이 깨지는 순간이다.

이런 과격한 표현이 독자들에게 용인되는것은 그것이 결코 허구나 상상에 기반한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이며,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입을 다물어야하는 그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성(性)이 작가가 말하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자리하게 되면 작품에 공감할 수 있는 깊이는 비약적으로 깊어지기 마련이다.

또한 예쁘장한 어린소녀에게 대놓고 욕정을 품는 남성들이나 “북초선(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인민공화국의 패러디 맞다.)”의 독재자가 젊은 여성 수십 명을 곁에 끼고 희희낙락하는 모습(사진3)은 퇴폐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정직하고 통쾌하다. 항상 민감하게 다루어지는 이슈들을 (소아성애, 북녘 김가 3대 돼지)가감 없이 그대로 그려버리는 작가의 센스는 이미 검열이 불가능한 경지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오유인들이 웃대에서 온 학습지를 보며 "나도 저런 위험한 드립 쳐보고 싶은데..."하면서도 그것이 불가능하듯, 다른 작가들도 분명 건드려보고 싶지만 결코 건드릴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을 자신의 네임밸류와 결코 정상적이라 볼 수 없는 화풍을 무기로 누구보다 자극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는건 사무라 히로아키에게 주어진 악마의 권능이라 할 수 있겠다.

사진3. 사실 이거보다 더 많다. 무슨 건프라모으듯 미소녀를 모으는게 [장군님] 취미인지 최종적으로 100명까지 늘어난다.

[할시온 런치]의 세계는 끊임없는 구토와 기괴한 합성생물들, 더 이상 망가질 부분이 없을 정도로 망가지는 여주인공과 브라콘, 파더콘, 로리콘, 오지콘, 시스콘 등 다양한 성적취향이 난무하는 엽기적인 세계지만 결국에는 현실세계를 소름 끼치게 투영한다. 공개적으로 얘기하기를 꺼릴 뿐이지, 분명 이 세상 어딘가에는 미소녀 수십 명을 끼고 사는 독재자가 있고, 누나에게 성적 환상을 품는 어린 남동생도 있다. 게다가 미소녀라고 해서 절대 망가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