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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istory_7924
    작성자 : sungsik
    추천 : 11
    조회수 : 1146
    IP : 1.241.***.244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3/03/04 11:29:16
    http://todayhumor.com/?history_7924 모바일
    [펌] 광해, 피의 시작 <2>


    선조에게 붕당이 있고 임진왜란이 있듯, 인조에게 병자호란이 있듯 (...) 광해군에게도 몇 가지 대표할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 중 지금 가장 부각되는 부분은 중립외교, 명과 청(아직 청은 아니었지만) 사이에서 조선의 살 길을 모색했다는 것이죠. 광해군 성군설에서 가장 부각되기도 합니다.

    부정적인 쪽으로 가장 부각되는 건 끝없는 궁궐 건축, 정말 궁궐왕이었습니다. 

    http://58.120.96.219/?b=8&n=29870
    http://58.120.96.219/?b=8&n=29893
    http://58.120.96.219/?b=8&n=29955
    http://58.120.96.219/?b=8&n=29996

    남한산성, 병자호란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이 두 부분을 어느 정도 다뤘습니다. 1년하고도 반은 지났으니 그 때와 생각이 좀 달라지기도 했구요. 전체적으로 다시 다뤄보고 싶긴 하지만 ^^; 이것까진 욕심이겠죠. 

    저 내용에서 약간 추가 혹은 제 생각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중립외교 부분은 광해군의 긍정적인 부분으로 봐도 손색이 없다고 봐요. 자기의 지지기반(혹은 가장 큰 위협)인 대북과도 척을 지고 쫓겨나기 전까지도 거기에 매달렸으니까요. 자신의 왕권강화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이었고 오히려 약화에 일조했죠. 그럼에도 매달렸다는 건 임란 등을 겪으면서 국제정세, 외교에 대해 자기의 길을 확실히 정했다는 것이겠죠.

    하지만 반정세력도 그런 중립외교를 상당부분 이어받았고, 인조 역시 자기의 정통성 내지 왕권에 관련된 부분이 아닌바에야 딱히 큰 일은 벌이지 않았습니다. 그 차이가 정묘호란을 만들긴 했지만 병자호란은 광해군과 인조 정권의 차이로 보기엔 상황이 너무 크게 달라졌죠. 명 대신 청을 황제로 모셔야 되는 상황, 아무리 광해군이라 해도 이걸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여기에 당시 청이 명을 정말 대신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죠. 지금 결과론으로 보면 그렇지만 당시엔 딱히 그 수준까진 아니었거든요.

    걱정되는 건 이런 중립외교를 지금의 외교에 대입하는 겁니다. 그것도 한 쪽에만 대입하는 경우죠. 여론은 거기에 반감을 느끼지만 지도자는 그걸 뛰어넘는 실리를 추구하는 것, 이건 미국, 북한, 일본, 중국 어느 쪽을 향하든 마찬가지입니다. 참 짜증나는 근현대사 덕분에 어느 쪽이든 다수의 반감이 나오는 거니까요. 햇볕정책에 대입하든 얼마 안 남은 현 정부의 대일외교에 대입하든 다 말이 되는 상황이에요. 결과가 최종 평가를 결정할 뿐이죠.

    그리고 궁궐왕 부분, 이건 광해군에게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이렇게 궁궐을 계속 보수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건 광해군 자신의 심리적인 부분입니다. 어디 있으니 귀신이 나온다는 식으로 아무리 민생이 어려워도 이건 해야된다는 식으로 밀어붙였거든요. 설령 이런 미신적인 부분이 서인의 창작이라 해도 그 규모에서 이미 큰 문제가 됩니다. 대원군이 경복궁 하나 살리는데도 많은 반대가 있었습니다. 조선 건국 이래 최대의 전쟁을 치른 후 경복궁 몇 배의 궁을 만든다고 공명첩을 발행하고 백성들을 쥐어짠 것, 이건 그가 정말 나라를 살릴 생각이 있었는지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물론 왕권강화를 위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크죠. 하지만 순수히 왕권강화 용도로 본다면 더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위의 중립외교가 칭송받는 건 왕권의 약화를 각오하고 조선의 생존을 위해 밀어붙였다는 것, 하지만 이런 궁궐병은 왕권강화를 위해, 다시 말 해 자기 자신을 위해 망가진 조선의 복구를 포기한 일이니까요. 

    광해군의 공과 과, 성군인가 폭군인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이 두 가지 일들, 여기엔 왕권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자가 칭찬받는 이유는 왕권의 약화를 각오하고도 조선을 위해 밀어붙였다는 것이고 후자가 욕 먹는 이유는 왕권 강화를 위해 민생을 무시하고 밀어붙였다는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찌됐든 이것이 당대 그의 평가가 떨어지는 이유가 되었고 반정의 명분이 되었다는 것이죠. 


    뭔가 참 이중적이면서도 비슷한가 싶은 일입니다만... 이 두 가지에서 역시 볼 수 있는 공통점은 그가 참 열심히 밀어붙이긴 했다는 겁니다. 마지막까지도요. 

    그리고 여기서 드는 의문점은 이 두 가지가 그가 밀려나는데 명분은 됐을지언정 결정적인 이유가 됐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건 그가 미쳤느냐 제정신이었냐와도 또 연결됩니다. 

    광해군의 치세를 대표하는 건 하나가 더 있습니다. 바로 끝이 없는 옥사였죠.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나이는 아홉살이나 어리지만 법적으로 자신의 어머니와도 연결되는 일이었습니다. 아내이자 국모를 폐하거나 국본, 나라의 근본인 세자를 폐하는 경우는 있었습니다만 그 어머니를 폐하자는 논의는 이 때가 처음이었고 마지막이었죠. 효가 중시됐던 조선의 유교 사회에서 충격적인 일이 일어난 거였습니다.

    그 얘기를 해보도록 하죠.

    +) 사실 이거 외에 광해군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하나 더 있긴 하죠. 대동법이요. 하지만 광해군 때는 경기도 정도였고 그 자신도 확대를 반대했습니다. 이후 대동법을 설명하는데 있어 그가 중심이 될 순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얘기하는 데서 대동법 얘기를 굳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

    시작은 유영경이었습니다. 이건 예상 못 했을 사람이 없겠죠. 영창대군을 밀었으니까요. 

    선조가 살아있었을 때라면 모를까 죽은 상태에서 권력의 중심은 임금이었습니다. 대비가 있었다지만 나이도 어렸고 궁에 산 지 10년도 되지 않았죠. 영창대군은 겨우 세 살이었구요. 유영경이 막 수십년동안 인정받은 대신이라면 모를까 그가 인정받은 건 임란 말이었습니다. 선조가 죽은 이상 땡이었죠.

    거기다 그에게 이를 갈고 있는 세력이 있었으니 대북이었죠. 마침 선조가 죽기 직전 섭정 명령에 유영경이 반대했고, 대북은 그를 탄핵하다 우르르 귀양갔습니다. 광해군은 당연히 그들을 살렸고, 그들은 유영경에게 집중포화를 퍼부었죠.

    이런 상황에서 그와 거리가 멀었던 소북 역시 여기 가담합니다. 유영경이 이끈 소북은 탁소북, 더러운 소북이고 자기들은 청소북, 깨끗한 소북이라는 거였죠. 

    그 자신도 그런 걸 알았는지 선조가 죽은 지 10일만에 사직을 청합니다. 광해군은 그걸 거부했구요. 그로선 꽃놀이패였죠. 권력은 순식간에 그에게로 왔습니다. 그가 결국 왕이 된 이 때, 신하들은 충성경쟁을 위해 유영경을 더 탄핵해야 했습니다. 광해군은 선조의 신하였다는 것을 이유로 반대했지만 그게 본심이 아니라는 건 태조 태종 때부터 딱 눈에 보이죠. 그는 한 7개월 기다립니다. 자기는 싫지만 신하들이 계속 요구하니 눈물을 머금고 파직에서 귀양까지 코스를 밟습니다. 그리고 즉위년 9월 1일에 결정을 내리죠.

    "내가 감히 끝까지 비호하지 못하겠으니, 유배된 곳에서 스스로 자결하여 백성들의 노여움에 사죄하도록 하라."

    이렇게 그와 신하들은 이제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걸 알리면서 스스로도 그걸 인정하게 됐죠.

    그와 동시에 문제가 됐던 것은 그에게 가장 큰 위협이었습니다. 그의 형 임해군이었죠.

    "임해군 이진은 오랫동안 다른 마음을 품고서 사사로이 무기를 저장하고 몰래 사병을 양성하였습니다. (중략) 그러다가 (선조가) 승하하는 날에 이르러서는 발상하기 전에 공공연히 그의 집에서 나갔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달려 들어왔으니, 그 정적이 비밀스러워 가병(家兵)을 지휘한 정상이 환히 드러났습니다."

    2월 14일, 그가 왕위에 오른지 10일이 조금 지났을 때 나온 말이었죠. 

    임해군, 장자임에도 세자 문제에서 말이 나오지도 않은 막장 오브 막장이었죠. 임진왜란 때도 동생 순화군이랑 개차반으로 놀다가 반란군에 붙잡혀 일본군에 넘겨지기도 했었죠. 하지만 역모는 얘기가 달랐습니다. 그게 왕의 형이라도 말이죠. 아니 형이기에, 동생보다 우선순위였기에 더 심각했죠.


    "나의 형이 어찌 그럴 리가 있겠는가?"

    광해는 이렇게 답하면서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어쨌든 말이 나왔으니 조사해 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당일로 임해군은 도성 밖으로 쫓겨나고, 곧바로 진도로 유배됩니다. 참 빠른 결단이었죠. 여기에는 그가 여장을 하고 도망가려다 잡힌 것도 컸죠. 정말 켕기는 게 있어서였을까요? 아니면 그냥 두려워서였을까요?

    이 사건에서 임해군과 관련된 인물들과 그의 종들이 딸려옵니다. 우리 형이 그랬을리가 없어라고 나섰던 광해군은 그 말과는 달리 참 의욕적으로 밀어붙였죠. 고문 끝에 종들에게서 증언이 나왔고, 무기를 묻었다는 증언으로 그 자리를 파 봤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바보가 아니라면 당연히 증거를 없앴겠다는 추측이 (광해군에게서) 나왔고 수사는 계속됐죠.

    이런 가운데서 명의 사신이 조선으로 옵니다. 왜 장자 임해군이 있는데 광해군이 왕이 됐냐는 거였죠. 이를 위해 조정에선 대본을 준비했고 임해군이 병이 있다는 것과 역모는 종들이 지멋대로 저질렀다는 식이 됐습니다. 임해군은 (진도로 가기도 전에 강화도 교동으로 바뀝니다) 이걸 따라줬지만 명나라 사신은 믿지 않았고 많은 뇌물을 주고서야 해결됩니다. 이걸로 임해군의 이용가치는 확실히 사라졌구요.

    임해군을 죽일 것이냐 살릴 것이냐, 여기서 의견이 갈립니다. 그리고 여기서 광해군 치세동안 집권세력이 결정되죠. 이덕형 등이 올린, 형제의 정으로 (그것도 같은 어미를 둔) 살려주자는 말에 광해군은 못마땅해합니다. 그리고 형제라 해도 죽여야 된다는, 정인홍이 올린 상소에는 기뻐했죠. 


    "차자를 살펴보고서 충직한 의논이 해·달과 더불어 빛을 다투는 것임을 잘 알았다. 매우 경탄(몹시 놀라며 감탄한다)스럽다."

    그럼에도 광해군은 형을 죽일 순 없다고 나섰지만... 이쯤되면 그의 마음을 모르긴 어려울 겁니다.

    다음해, 광해 1년 5월, 임해군은 그를 지키던 이정표의 손에 죽습니다. 병사로 알려졌지만, 이정표가 독약을 먹이려다 거부하자 목을 졸라 죽인 거였죠. 어찌됐든 그가 맡았던 죄인이 죽은 것이니 나름 벌 주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곧 묻혔고, 몇 년 안 가 그는 똑같은 임무를 맡게 됩니다. 이번엔 왕의 동생이었죠.

    --------------------------------------------

    광해군 치세, 그 시작은 피였습니다. 하나는 왕이 돼야 할 자신에게 딴지 걸었던 이였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왕권에 가장 큰 위험이 되는 형이였죠. 임해군의 경우는 정말 역모를 벌였을지 의문이긴 합니다. 여장하고 도망갔다는 것 외에는 확실한 심증도 없었거든요. 

    그래도 피를 흘리며 시작했던 다른 왕들을 생각하면 뭐 그럭저럭이라는 느낌은 듭니다. 정통성이 그리도 중요했던 당시 정통성을 위협하는 건 정말 컸으니까요.

    +) 이런 점에서 영조가 대단했던 게 피를 최대한 흘리지 않으면서 모두를 감싸는 탕평을 시도했다는 것이죠. 자기 자식한테 한 게 좀 커서 그렇지
    +) 이런 정통성 문제는 원래 지금쯤 썼어야 할 (...); 연산군의 무오사화 문제에서 꽤 크게 걸립니다.

    이후 광해군의 치세는 나름 안정기에 들어갑니다. 대동법부터 동의보감 등 민생을 생각하는 정책도 나왔고 오현종사 문제로 대표되는 각 당파간의 세력싸움도 있었구요. 궁궐도 창덕궁 정도면 왕이 머물 궁궐은 확실히 있어야 했으니 큰 문제가 안 됩니다. 아직 여진족이 문제가 될 때도 아니었구요.

    나름 안정적인 복구를 시작했던 조선, 하지만 광해군 4년부터 전혀 다른 문제가 시작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옥사였죠. 그 옥사의 끝, 옥사를 주도한 광해군과 대북이 노린 건 법적으로 광해군의 어미인 인목왕후였습니다.

    조선시대 정치적으로 진행된 옥사들은 다 마찬가지긴 합니다. 대체 어디까지가 진짜 역모였고 어디까지가 왕과 집권세력이 꾸민 것인지 말이죠. 이 전까지 상황을 보면 더 그렇죠.

    선조가 정말 광해군 대신 영창대군을 세자로 하려고 했을까 하는 의문, 일단 이게 시작일 겁니다. 전 이건 맞다고 봅니다. 물론 선조가 십년은 넘게 더 살아야 된다는 조건이 있지만 영조랑 비교하면 그 정도로 무리는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무리수를 생각했을까 하는 부분은 태조 때 막내를 세자로 둔 것을 보면 안 될 거라 보지 않구요.

    하지만 그게 광해가 왕이 될 때까지 그대로 이어졌을까 하면, 그것도 그거대로 의문이죠. 선조는 광해 싫다 싫다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폐세자 하려는 시도는 안 했습니다. 이게 광해의 입지에 큰 문제는 됐지만, 그걸 갈아엎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현실적이 문제는 있었고, 선조가 아무리 욕 먹어도 그걸 모를 왕은 아니었으니까요.

    이건 인목왕후 역시 마찬가집니다. 그녀가 광해 집권 전에 했던 모습이 어떻든간에 정통성 문제에 공식적으로 딴지를 건 적은 없습니다. 선조가 한 번 쓰러졌을 때도 광해군의 섭정을 명령했고 선조가 죽자마자 광해를 바로 왕위로 올립니다. 선조가 죽은 상태에서 그녀가 딱히 무리수를 둔 건 보이지 않는 것이죠.

    광해군 초기의 당파 역시 나름 균형이 잡힙니다. 이항복, 이덕형, 이원익 등이 위를 지켰고 대북을 우대하고 서인의 세력이 약하긴 했지만 소북, 남인도 잘 등용했구요. 

    그러던 게 삐끗하기 시작한 것이 광해군 4년부터였습니다. 


    광해군이 미쳤나, 아니면 고도의 정치적인 술수였는가, 그거야 자신만이 알겠죠. 그게 열 살도 안 된 자기 동생을 죽여야 될 정도였나 그 시대에 그 정도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나 하는 문제도 같이 말이죠.

    어찌됐건 확실한 건 있죠. 그게 그냥 미쳐서 날뛴 거든 정치적인 행동이었든, 그게 실패했다는 것이요.

    자, 다음 편엔 그 때로 가보겠습니다. 


    다음 편엔 이 양반도 좀 등장시켜야겠군요. 


    출처 : http://pgr21.com/?b=1&n=2147



    sungsik의 꼬릿말입니다
    인터넷 어딘가에서 그런 말을 봤다.
     
    '영화 하나가 잘만들었니 못만들었니로
    티비 토론을 할만큼 세상에 큰 논란이 없었던
    그 때가 그립다.'

    대통령부터 정치권, 헌재까지..
    모든 사건, 모든 발언 하나하나가 비상식적이기만하고
    민주주의와 다양성이라는 단어들이 너무나 가볍고
    가치가 없게 느껴진다. 

    이 나라엔 진보와 보수가 있는 게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만 남아 있다는 이 느낌이
    군사정부를 겪지 않았던 내 세대에겐
    너무 낯설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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