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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자국이 남은 동그란 눈, 꽃 색으로 물들이고 웃으면 예쁜 얼굴이 거울 너머를 통해 보였다. 트렌치코트를 벗어 사물함 위에 놓고, 몸의 윤곽이 드러나는 검은 원피스를 확인하듯 이리저리 비춰보곤 나는 소녀를 향해 돌아섰다. 소녀는 꼭 17살. 어여쁘고 예쁜 17살이었다.
책상을 뒤로 대충 밀어 놓은 교실 가운데에 앉은 소녀를 보며 나는 나무 바닥을 하이힐의 굽으로 찍어 누르며 의자를 끌어당겨 소녀의 앞에 앉았다.
“믿진 않겠지만 나도 너만 할 때가 있었단다.”
입을 벙긋거리며 대답을 해야 하는 지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한 소녀의 얼굴을 보며 나는 웃었고 소녀는 숨을 집어 삼키며 입술을 다시 꼭 다물었다.
“너처럼 예쁜 눈, 코, 입술, 볼….”
여자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어중간하고 가장 어여쁠 몸을 교복 아래로 살펴보듯 시선을 떨어트리자 교복치마 아래로 뻗은 두 무릎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낼 것처럼 오므라들었고 나는 귀여워서 어깨를 움츠리며 웃었다.
“아무튼 예뻤어. 너 만큼….”
담배 생각이 나 다시 일어나 사물함 위에 있는 코트에서 담배 한 대와 라이터를 들고 의자로 돌아가 앉았다.
“그래서 남학생들한테 러브레터도 받아보고 초콜릿에 뭐 이것저것 받아봤었거든. 근데, 그 나이 때 애들이 다 그렇잖니? 또래보다는 선배, 아니면 대학생 오빠들, 그도 아니면…총각선생님.”
라이터의 불을 당겨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필터로 빨아들인 연기를 소녀의 얼굴로 뿜었다. 필터에 빨갛게 바른 립스틱자국이 남았고 입술을 맞물어 살짝 문지르고 나는 계속 이야기를 이었다.
“젊고 잘생긴 총각 선생님이면 여고에서는 요즘 아이돌 못지않게 인기를 누리잖니? 지금도 그럴 거고. 그렇지?”
입술을 꼭 다물고 오므린 무릎에 시선을 한 번 더 준 뒤 나는 빙그레 웃었다.
“17살. 봄에 젊고 잘생긴 총각선생님이 학교로 발령받아 왔어. 어찌나 잘생겼던지 어디서 배우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는데 피아노를 전공한 음악선생님이라니 여자애들이 흐물흐물하게 녹아서 그 선생님 책상에 꽃도 가져다 놓고, 가정시간에 만든 것들도 올려놓고, 유치하고 구구절절한 편지까지 쓸 정도였단다.
나는 그러진 않았는데 그 선생님이 좋긴 했어. 손가락이 길고, 속눈썹이 정말 그늘이 생길 만큼 길었거든. 순정만화에서 툭 튀어 나온 것 같았어 그 선생님이….”
덜컹거리며 오래된 창문이 흔들려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바깥을 내다봤다.
“비가 오겠다. 난 비 오는 날 좋아하는데 넌 어떠니?”
작게 ‘응?’하고 덧붙이자 뻣뻣하게 소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니?…안 됐구나….아무튼 다시 돌아가서 나는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처럼 하지 않아도 됐어. 그냥 가만히 있어도 눈에 띄었거든, 그래서 나는 가만히 그 음악선생님을 가만히 바라보곤 했단다. 예쁘면 모든 게 쉽지. 너도 알거야.
그래서 여름이 올 즈음엔 음악선생님하고 난 서로 사랑하는 것처럼 굴었어. 일과 중에 몰래 은밀한 눈짓을 주고받는 거,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도시락을 같이 먹는 다던가….”
어느새 필터 끝까지 태운 담배를 손가락으로 튕겨내고 나는 다시 어깨를 움츠리고 코웃음을 쳤다.
“아무튼 재밌었어 그게. 선생님이랑 학생이 그런 식으로 만난 다는 것 자체가 그럴 만 했으니까.
방과 후 아무도 없는 음악실에서 얘기를 나누고 가끔 애들이 하는 것처럼 입을 맞추고 그 긴 손가락으로 어깨나 손을 쓸어주는 그런 게 다 재밌고 동시에 다른 여자애들하고 내가 다르다는 우월감 같은걸 느꼈거든.
그냥 게임 감각이었던 거지 과시하고 싶고 그냥 지루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야. 그게 큰 실수인줄도 모르고….”
다시 오래된 창문이 흔들렸고 톡톡, 유리를 손톱으로 건드리는 듯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소녀는 여전히 긴장을 풀 줄 모르는 채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지루하니?”
소녀가 고개를 저었고 나는 빙긋 웃으며 계속해 주절거렸다.
“어느 날 체육 때문에 운동장에 트랙을 그러야 하는데 화장실이 급하다고 나보고 대신 좀 해달라고 반 친구 하나가 부탁하더라? 사람은 보통 의심이 잘 없는 동물이니까…난 그냥 그러려니 학교 뒤에 있는 창고로 그 애 대신 갔어.
트랙을 그리는 흰 가루가 든 그걸 끌고 나오려는데 걸어서 5분쯤 떨어진 곳에 있는 남고 교복이 보였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그 뒤로 창고 문이 닫혔어. 화장실이 급하다던 애의 얼굴이 보였을 때 그 기분이란…넌 상상이 되니?”
내 말에 소녀는 고개를 가로젓는 단순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아무튼 한참을 비명을 지르다 정신을 잃었는데…깨어났을 때 나는 고통스러워서 비명을 지르다 정신을 다시 잃었어.
하얀 천장을 보며 정신을 잃고, 다시 그 천장이 보이면 고통스러워서 몸부림치다 그걸 보며 다시 정신을 잃곤 했단다. 고통에 못 견딜 때는 살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흐흐, 하고 나는 어깨를 움츠리며 재밌는 농담을 하는 것처럼 소녀에게 말했다.
“나중에 거울을 보니 진짜로 살이 다 녹아있더라. 재밌지 않니?”
깔깔깔, 웃음을 터트리자 바깥에서 기다렸다는 듯 번쩍이는 빛을 뿌리며 번개가 쳤다. 낮게 으르렁대는 짐승처럼 천둥까지 일자 나는 숨을 가다듬고 부드러운 소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 둘은 내가 죽은 줄 알았던 거야…. 나는 운이 좋은 건지 없는 건지 살았고…. 예뻤던 걸 다 잃었지. 눈도 코도 입도 막 피어나려 했던 내 몸도….
나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어. 부모님한테도 학교에도, 경찰한테도. 어떻게 된 건지 누가 그랬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고. 그런데 그거 아니?”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바짝 얼굴을 가져다대고 나는 한껏 소리를 죽여 소녀에게 속삭였다.
“사실은 다 기억하고 있었어. 왜 걔가 나한테 그랬는지, 눈을 감지 않아도 그 얼굴 생김새를 사진을 보는 것처럼 볼 수 있었단다.”
킥킥, 웃으며 ‘왜 그랬는줄 아니?’하고 묻자 소녀는 곧 울음이라도 터트릴 것처럼 입술을 비틀었다.
“내가 원하는 건 부모님도, 학교도, 경찰도 줄 수 없었거든…. 아직 이 세상에 없었으니까.”
다시 담배가 생각났지만 참기로 하고 나는 몸을 물러 세우며 말을 이었다.
“신에게 기도먼저 했단다. 신님 그 둘이 아무런 사고도 없이 살아가게 해주세요. 사고도 없이 행복하게 가정을 이루고 아들, 딸 낳고 잘 살게…. 그리고 가능하다면 각각 외동아들, 외동딸만 가지게 해 주세요….
그리고 신님은 이뤄주셨단다. 그 예쁘장한 아이는 외동아들하나를 두고 있었고…. 너희 아버지는 너만 두고 있잖니? 아, 아니구나! 그 애는 아들이 아니고 딸이 됐지? 어제부로?”
작게 웃는 내 목소리에 기어코, 소녀가 작게 흐느껴 울기 시작했고 나는 그 소리를 잠시 가만히 듣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죽이진 않을 거야. 그냥, 넌 그런 아버지를 두고 있던 죄로…그냥 좀…아프게 될 거야…. 처음부터 얘기했잖아?”
내말에 소녀가 자지러지듯 울음을 터트렸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옆에 뒀던 휘발유 통을 들고 구석에 아무렇게나 밀어둔 책상과 의자위로 휘발유를 끼얹었다.
기름 냄새가 역하게 치고 올라왔고, 뒤에서 소녀가 몸부림을 쳤는지 교실바닥위로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한통을 전부 책상과 의자에 끼얹고 남은 휘발유를 바닥을 흠뻑 적시도록 뿌린 나는 살려달라 악을 쓰기 시작한 소녀를 그 자리에 두고 교실 뒷문과 창문들이 잘 걸려있는지 확인 한 뒤, 나는 사물함 위에 올려둔 트렌치코트를 들어 걸쳤다.
기름이 튀었는지 얼룩이 생겼지만 별로 개의치 않고 나는 의자에 묶인 채 넘어진 소녀를 일으켜 세우고 살랑살랑, 손은 흔들어 보였다. 자지러지는 소녀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교실 앞문으로 나가기 전 거울 앞에서 다시 내 모습을 확인했다.
일그러진 얼굴위로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게 그려진 눈썹, 입술이 있던 흔적만이 남아있었을 입술 위에 빨갛게 덧칠한 립스틱, 없어진지 오래된 코가 있던 자리를 확인하곤 나는 답답하게 뒤집어쓰고 있던 가발을 끌어당겨 벗어 바닥에 내던졌다.
눌러 붙은 장판 같은 민둥머리 때문에 다시 가발을 뒤집어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내던진 가발이었다. 바깥에서 경광등이 깜빡이며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소녀의 울음소리가 작게 잦아드는 것을 들으며 나는 거울을 통해 소녀를 향해 웃었다.
“아버지 오셨나보다. 딱 맞춰 오신 거 같네…얌전히 기다리렴. 내 안부는 직접 네 아버지한테 전할 생각이거든.”
교실 문을 나서며, 나는 주머니 안에 넣어뒀던 담배를 꺼내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불을 당겼다. 화끈거리는 불기운에 일그러진 얼굴을 찡그리는 시늉을 했지만 잘 되진 않았다. 조금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해 작게 한숨을 쉬곤 담배의 필터를 물고 한껏 빨아들인 뒤 미련 없이 멀쩡한 담배를 휘발유로 젖은 바닥으로 내던졌다.
다시 소녀가 자지러졌고 나는 내 눈앞에서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한 교실을 확인하듯 바라보곤 교실 앞문까지 단단하게 걸어 잠갔다. 또각또각, 빈 복도를 울리는 구두굽 소리를 꼬리처럼 끌고 나는 계단을 올라 옥상으로 올라섰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고 천둥과 번개가 발작처럼 뒤따랐다. 옥상을 가로질러 난간위로 올라서자 운동장에 들어온 경찰차와 경광등을 단 승합차 한 대, 그리고 새까만 승용차한대가 보였고 비를 그대로 맞으며 안절부절 못하는 남자와 학교로 뛰어 들어가는 남자들이 보였다. 경찰로 보이는 남자가 나를 손으로 가리켜보이자 안절부절 못하던 남자가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웃었다.
“거 봐. 눈이 꼭 지 아빠더라니.”
누군가 옥상으로 올라오는 것 같은 소리에 더 이상 나는 기다리지 않고 겁에 질린 것 같은 표정을 하는 남자를 향해 몸을 던졌다.
천둥번개가, 발작처럼 내 뒤를 따랐다.
갑자기 이런 내용이 떠올라서 시간을 내봤습니다.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꿈과 공포가 넘치는 공포게시판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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