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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_39509
    작성자 : 소리조각
    추천 : 11
    조회수 : 930
    IP : 210.90.***.125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7/12/12 17:12:24
    http://todayhumor.com/?love_39509 모바일
    [옛날사람 주의]사랑이 뭐예요? 2편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늘 그렇듯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재수한 동기와 빠른년생 선배가 친구를 먹었다가 다시금 멱살잡이를 하고 있었고, 

    과대표는 어느새 신입생들 여자후배들의 이름을 모조리 외웠으며, 남자후배들에겐 모조리 별명을 붙여주었다. 


    학생회장 누나는 후배들을 이끌고 마당에서 왜인지 모르지만 말뚝박기를 하고 있었고, 

    이상하게 계속 말뚝이 되고 있던 동기 하나는 술에취해 어느새 학생회장 누나의 손목을 잡고 "이제 너라고 부를께"라고 하다가 싸다귀를 맞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 와중에 해물파전을 연성중이었다.



    화장실에 두번쯤 다녀오자, 정신이 좀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쉴곳이 필요했다.

    민박집의 한쪽 구석에는 술을 마시다 뻗은 일명 낙오자들을 위한 방이 있었다. 


    해물파전의 연성에 성공한 이들이 식도의 고통과 좌뇌의 쪽팔림을 치유하면서 쉴 수 있는 곳이었다. 

    이미 나도 해물파전의 연성에 성공했으니 저 천상의 어둠속으로 들어가 쉴 수 있으리라.


    그렇지만 아까 나를 연행했던 LAPD 친구들은 어김없이 화장실에서 나오는 나를 발견했고, 

    이번에는 다이하드에 나오는 NYPD가 되어 마약사범 연행하듯 나를 질질 끌고갔다. 어쨌든 나는 쉽게 쉴수없는 운명이었다.



    술자리에 다시 참가하여 더게임오브데스와 아이엠그라운드자기소개하기를 미친듯이 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은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흘끔흘끔 주변을 살펴보면서 H를 찾아보고 있었다. 


    워낙 방이 많아서 사방팔방으로 흩어진 학우들은 누가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수가 없었다. 


    남자후배들이 몇명 와서 잘부탁 드린다고 술을 따라주었고, 나는 알았다고 하고선 그 녀석에게 제2차 사발식을 시전해 주었다.


    그리고 그때 뒤에서 여자목소리가 들렸다. K였다.


    "선배님 저 여기 앉아도 되요?"


    "당연하지!!!"


    누군지 뒤돌아볼새도 없이 내옆에 앉아있던 동기는 발로 나를 걷어차면서 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나는 그대로 자빠지면서 K에게 자리를 양보해야했다. 


    아오 이 기집애 아까부터 맘에 안드네... 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H였다.


    "우와~ 감사합니다. 저도 같이 앉아도 되요?"


    "당연하지!!"


    그리고 누군지 뒤돌아볼새도 없이 내옆에 있던 동기는 내 발길질에 자빠지면서 나와 H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오빠, 아, 아니지 선배님 안녕하세요."


    "으..응?으으응... 물론 안녕하지."


    "죄송해요. 과대표 선배님이 오빠라고 부르지 말랬는데."


    "뭐? 정말?"



    H는 자신의 말버릇을 사과했고, 나는 H에게서 오빠라는 호칭을 뺏어간 과대표를 언젠가 쳐죽이리라 마음먹었다.


    "쥐를잡자~ 쥐를잡자~ 네마리~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신규인원의 유입은 곧바로 게임으로 이어졌다. 술과 담배를 모르고는 인생을 논하지 못한다는 4학년 선배님의 사상(?????)에 따라서 

    우리는 맨정신으로 앉아있는 놈이 없어질때까지 술을 마셔야 했고, 혀가 꼬부라져서 더이상 쥐를 잡을수 없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물론 옆에 앉은 H 때문에 헬렐레 했던 나는 술을 마시던 안마시던 이미 혀가 꼬부라졌고, 위점막의 노사정 대통합 제안을 계속 무시하고 

    술을 연짱 위속에 털어넣던 나는 어느새 총궐기 파업으로 이어진 위장때문에 더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를 이탈해서 화장실로 도망쳤다.



    오바이트가 나올줄 알았지만 의외로 속은 멀쩡했고, 머리가 좀 아팠다. 

    나는 담배연기와 소음으로 꽉찬 방안에 들어가기 전에 마당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 잠시 앉았다.


    내가 K의 사발주를 대신 마시고, 해물파전을 연성하는 동안 진행되었던 캠프파이어의 잔해가 마당에 남아있었다. 학기가 시작되기전의 봄이라 날씨는 꽤 쌀쌀한 편이었고, 나는 어느새 재로 변한 장작들 앞에 앉아서 불을 쬐고있었다. 



    "오빠.... 아니 선배님, 뭐하세요?"


    이번엔 다행히 나를 걷어찰 친구가 없었기에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고, 거기엔 약간 취기가 돈 모습의 H가 서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때문에 볼이 빨간 모습은 볼수 없었지만, 웃고있는 입과 약간 감길듯말듯한 눈이 그녀가 취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어, H구나. 나 머리가 좀 아파서 잠깐 쉬고 있었어. 술 많이 마셧니?"


    "아...흐흐흐, 별로 안마셨는데, 제가 술이 좀 약한가 봐요."


    "에이, 취했으면, 들어가 눈 좀 붙이지."


    "히힛, 근데, 아직 선배님이랑 얘기를 못해봐서요."



    딸꾹질이 나나? 아니 H가 아니라 내가 딸꾹질이 나나? 아니다 딸국질이 아니라 그냥 심장이 뛰는건가보다.


    그녀는 배시시 웃으면서 내옆에 앉으려고 했고, 나는 앉아있던 조그만 플라스틱 의자를 그녀에게 건네주고 바닥에 털썩 앉았다.



    "어? 아녜요. 이거 선배님이 앉으세요."


    "아냐. 괜찮아. 난 어차피 츄리닝인데 뭘."


    "안돼요 그래도, 이렇게 선배님을 바닥에 앉게 할수는 없죠."


    "아냐아냐, 괜찮아. 여자는 찬데 앉으면 안된데. 앉아."



    사실 내가 그말을 했던건 어떤 작업성 멘트는 아니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여중-여고 테크트리를 충실하게 타온 H에게 별것도 아닌 그 말은 상당히 충격이었나 보다. 


    H는 약간 벙찐 얼굴로 날 쳐다보았고, 나는 왜? 라는 표정으로 H를 쳐다보았다.



    "그럼 저도 바닥에 앉을래요."


    "읭?"



    H는 바닥에 앉은 내 옆에 그대로 풀썩 주저 앉았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때부터 눈에 들어왔던 H였지만, 나는 여자사람과의 만남에는 영 젬병이었다. 


    여자와 단둘이 있을 경우 그 여자는 99.999.....% = 100%의 확율로 학과 동기였고, 

    그럴 경우 우리의 대화는 대체로 술얘기 아니면, 과제 얘기였고, 이런 경우를 만나보지 못했던 나는 무슨 얘기를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굳이 무슨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내 옆에 앉은 H는 잠시 모닥불의 잔해를 바라보다가 스르륵 내 어깨에 기대었다. 

    그리고, 나는 메두사의 얼굴을 본 사람처럼 온몸이 굳어버렸다.


    H를 머리는 가벼웠고, 곁눈질로 옆을 바라보자 그녀의 정수리가 보였다. 

    이미 강촌에 도착해서 강행군을 하고, 사발식을 하고 남은 술을 머리에 털고, 지겹도록 오래가는 술자리 때문에 

    머리는 떡이 될 지경이 됐겠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머리에서는 샴푸냄새가 났다. 


    쌔액-쌔액 하는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그냥 있는 동안 나는 이상한 느낌에 취해있었다. 

    이런게 연애의 징조일까? 나도 연애를 할 수 있나? H는 나를 좋아하는걸까? 아니면 그냥 갑자기 만난 대학생활의 자유에 취해서 기분이 좋은 것 뿐일까?

     

    사랑? 설마... 이런게? 강촌의 허름한 민박집에서 술에 취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머리식히러 나와서 사랑에 빠진다고?


    H는 잠들어서 듣지 못하겠지만, 무언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저기...H야... 내가... 그 말할게 있는데... 아무래도 내가 널 좋아하나보다... 정말로."


    H의 머리가 약간 뒤척였다.





    출처 1편 - http://todayhumor.com/?love_39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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