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마문驅詩魔文효効퇴지退之송궁문送窮文
시마를 쫓는 글, 한유의 가난을 보내는 글을 본받아

작가 - 이규보
번역 - 이가원
편집 - 섬집아이


대개 흙이 쌓여서 된 높은 언덕이나, 물이 고여서 된 깊은 우물이나, 또 나무ㆍ바위ㆍ집ㆍ담장은 모두 천지간의 감정이 없는 물건이지만 귀신이 여기에 붙어 괴상함과 요사스러움을 나타내면 사람들은 미워하고 꺼리며 저주하고 쫓아내느니라. 심한 경우에는 언덕을 깎아 내고 우물을 막아버리며, 나무를 자르고 바위를 부수며, 집을 무너뜨리고 담장을 쓰러뜨리고 마느니라. 사람도 이와 같으니라. 처음엔 질박하고 문채가 없으며 순수하고 정직하던 사람이지만 시의 요사함에 빠지면 말이 괴상하고 글이 춤추며 만물이 현혹되고 사람이 놀라게 되느니라. 이것은 다른 연고가 아니라 마귀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나는 이 까닭에 감히 그 죄를 나열하면서 쫓아버리려 하노라. 그 말은,

“사람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에는 태고의 순박함이 있었으니, 꾸밈이 없고 치레가 없음은 마치 꽃이 아직 피지 않은 것처럼 그 총명함이 가려져 있음은 마치 구멍(눈ㆍ귀 따위)이 아직 뚫리지 않은 듯하였노라. 누가 그 문을 만들고 그 열쇠를 주었길래 마귀가 느닷없이 들어와 버젓이 이에 의탁하고 있어, 세상과 사람을 현혹시켜 아름다움을 꾸미게 하며, 요술을 피우고 괴상한 짓을 하여 비틀거리며 떼지어 다니게 하며, 혹은 아양을 떨어 뼈마디가 녹게 하고, 혹은 놀라게 하여 풍랑에 휩싸이게 하며, 세상이 너처럼 건장하지 못한데 어찌 날뛰게 하고, 사람이 너처럼 공력功力이 없는데 어찌 박정하게 하느냐.” 이것이 너의 첫째 죄이니라.

“땅은 조욱함을 숭상하고 하늘은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것이니라. 조화造化와 신명神明의 현묘玄妙함은 둥글둥글 아득하고 기관의 오묘함은 자물쇠로 굳게 잠겼는데, 너는 생각 없이 그 영묘靈妙함을 염탐하여 비밀을 발설시켜 당돌하기 그지없으며, 옆구리를 쳐서 달[月]은 괴로워하고 가슴을 뚫어 하늘은 놀라워하며, 신령은 이래서 불쾌하게 여기고 있으니, 너로 말미암아 사람의 생활을 각박하게 하였노라.” 이것이 너의 둘째 죄이니라.

“구름과 노을의 빼어남, 달과 이슬의 순수함, 벌레와 물고기의 괴이함, 새와 짐승의 이상함, 그리고 저 새싹과 꽃받침, 초목과 꽃나무 등은 천태만상으로 천지간에 번성하고 있는 것을 너는 거침없이 취하면서, 하나 남김 없이 보는 족족 노래로 읊어 잡다하게 모여들게 하고 끝이 없느니라. 너의 검소하지 못함은 하늘과 땅이 꺼리노라.” 이것이 너의 셋째 죄이니라.

“적을 만나면 즉시 공격할 것이지 대포가 웬 말이고 보루堡壘가 웬 말이냐. 어떤 사람을 좋아하면 곤룡포袞龍袍가 아니라도 훌륭하게 꾸며 주고, 어떤 사람을 미워하면 칼이 아니라도 찔러 죽이니, 너는 무슨 도끼[鉞]를 가졌길래 전벌戰伐에 방자하고, 너는 무슨 권세를 잡았길래 상벌賞罰을 멋대로 하느냐. 너는 육식자肉食者(후녹厚祿을 바라는 관리官吏)가 아닌데 나라일에 관여하고 너는 주유侏儒(배우, 광대)가 아닌데 모든 일을 조롱하느냐. 시시덕거리며 허풍치고 꼿꼿하게 난 척하니 누가 너를 시기하지 않고 누가 너를 증오하지 않을소냐.” 이것이 너의 넷째 죄이니라.

“네가 사람에게 붙으면 염병에 걸린 것처럼 몸은 더럽고 머리를 헝클어지며, 수염은 빠지고 형용은 매끄러워지며, 사람의 소리를 괴롭게 하고 사람의 이마를 찌푸리게 하며, 사람의 정신을 소모시키고 사람의 가슴을 야위게 하며, 오직 환란의 매개체이며 평화의 도둑이니라.” 이것이 너의 다섯째 죄이니라.

“이 다섯 가지의 죄를 짊어지고 어찌하여 사람에게 붙어 있느냐. 진사陳思에게 붙어서는 그 형을 업신여기게 하였으니, 콩이 솥 속에서 우는 것은 과연 콩깍지에 기인한 것이냐. 이백李白에게 붙어서는 까불려서[簸] 미치게 하였으니, 달을 잡으려다 물에 빠지니 강물만 아득하였노라. 두보杜甫에게 붙어서는 모든 일에 낭패하게 하였으니, 쓸쓸한 타향살이를 하다가 뇌양耒陽에서 객사하게 하였노라. 이하李賀에 붙어서는 환상과 괴기怪奇에 차게 하였으니 재주를 품고도 세상을 만나지 못하고 요절케 하였노라. 몽득夢得에게 붙어서는 권세 있는 사람을 헐뜯게 하였으니, 젠 체하고 거드먹거리다 끝내는 넘어져서 떨치지 못하였노라. 자후子厚에게 붙어서는 재앙이 일어나는 기틀을 움직이게 하였으니, 유주柳州로 귀양가 돌아오지 못하니 누가 그를 슬퍼할 것이냐. 아, 너 마귀야, 어이하여 이렇게 많은 사람을 차례로 그르쳤느냐. 또 나에게 씌었으니, 네가 온 뒤로는 모든 일이 기구하였노라. 흐릿하니 잊어버리고 멍청하니 바보가 되며, 벙어리가 된 듯도 하고 귀머거리가 된 듯도 하며, 형체와 흔적에 구애되며, 굶주리고 목마름이 몸에 닥치는 줄도 모르고, 추위와 더위가 살갗에 사무치는 줄도 모르며, 계집종이 게을러도 꾸중하지 않고 사내종이 미련스러워도 다스리지 않으며, 동산의 초목이 말라도 깎는 것을 모르고 집이 쓰러져도 부축하는 것을 모르게 되었노라. 가난 귀신이 온 것도 역시 네가 부른 것이다. 귀인에게 오만하고 부자를 능멸하며, 방종하고 거만하며, 말소리는 공손하지 못하고 뻣뻣한 얼굴에 아첨할 줄 모르며, 색色을 보면 쉽사리 혹하고 술을 만나면 더욱 거칠게 되었으니, 이는 실로 네가 시킨 것이지 어찌 나의 마음이겠느냐. 으르렁으르렁 괴상함을 짖듯 실로 무리도 많도다. 나는 네가 싫어 저주하고 쫓나니 네가 빨리 도망치지 않으면 너를 찾아 벌 주겠노라.”하였다.

이날 밤 피곤하여 잠이 드니, 베갯머리에 시끄러운 소리가 나며 빛깔과 무늬가 고운 옷을 입어 번쩍번쩍하는 것이 나와서 나에게 말하기를, “심하네 자네가 나를 나무라는 말과 나를 배척하는 말이, 웬 일로 나를 이처럼 미워하나. 내 비록 미미한 마귀이지만 하늘에서도 나를 알아 주시고 있네. 처음 자네가 세상에 나왔을 때 하늘에서는 나를 보내어 따르게 하셨네. 자네가 어려서 벌거숭이로 있을 때도 나는 집에 숨어서 떠나지 않았으며, 자네가 소년이 되어 총각머리를 하고 있을 때도 슬몃슬몃 엿보고 있었으며, 자네가 어른이 되어 상투를 짜게 되고부터는 깝죽깝죽 따라 다녔네. 자네에게 기개를 주어 웅장하게 하였고 자네에게 수사修辭의 법을 가르쳐 문장을 아름답게 하였네. 시험장에서 문예를 겨룸에 있어 해마다 합격하게 하여, 하늘과 땅을 놀라게 하고 명성이 사방으로 나게 하였으며, 높은 분과 귀한 분이 모두 자네의 모습을 우러러보게 하였네. 이것은 내가 자네를 도와 줌이 얄팍한 것이 아니었고, 하늘이 자네를 풍부하게 함이 셀 수 없는 것이라네. 오직 입에서 나가는 말, 몸을 가지는 태도, 색色을 좋아하는 것, 술을 즐기는 것은 각각 다른 이가 맡은 것으로 내가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네. 자네는 어이하여 신중하지 못하고 미친 듯이 바보인 듯이 행동하였으니, 실로 자네의 잘못이지 나의 허물은 아니라네.” 거사居士는 이리하여, 오늘을 옳게 여기고 어제는 그릇되게 여기면서 움츠러들어 겸연쩍어 하는 표정으로 허리를 꺾어 절하고 맞이하여 스승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