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div> <div> <font size="2">환경미화 기간이었다. 대대적으로 부대정비 및 청소가 시작되었고 나는 보급관님으로부터 후임들을 몇 명 </font></div> <div><font size="2">데리고 비품창고 정리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후임들을 데리고 자신있게 길을 나섰지만 시작부터 </font></div> <div><font size="2">난관에 봉착했다. 비품창고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우리부대에 비품창고가 있다는 </font></div> <div><font size="2">얘기를 들어본 적 조차 없었다. 다시 보급관님을 찾아가 비품창고가 어디 있는거냐고 물으니 보급관님은 </font></div> <div><font size="2">한참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내 코를 쥐어뜯으며 비품창고의 위치를 알려 주셨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구령대 밑에 항상 자물쇠가 걸려 있는 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곳이 바로 비품창고였다. </font></div> <div><font size="2">문을 열자마자 오래된 먼지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켜보니 곳곳에 쌓인 먼지들이 </font></div> <div><font size="2">오랫동안 사람의 출입이 없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창고 안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너저분하게</font></div> <div><font size="2">널려 있었다. 한참을 낑낑대며 정리하던 중 창고 구석에서 바구니더미를 발견했다. 바구니 안에는 </font></div> <div><font size="2">야구공과 글러브 그리고 몇 가지 야구용품들이 들어 있었다. </font></div> <div> </div> <div><font size="2">창고 정리를 마치고 나서 보급관님께 보고를 하고 그 야구용품에 대해 물어보았다. 보급관님도 그동안 </font></div> <div><font size="2">잊고 지냈는지 그게 거기 있냐며 나에게 되물었다. 몇 년 전에 우연찮게 구해서 병사들 가지고 놀라고 부</font></div> <div><font size="2">대 안에 </font><font size="2">가져다 놨는데 하는 사람이 없어 그냥 창고에 쳐박아 뒀다는 것이었다. 그럼 사용해도 되냐고 </font></div> <div><font size="2">물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다. 새로운 여가활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괜시리 설레였다. </font></div> <div> </div> <div><font size="2">쉬는 날 후임들 몇명을 데리고 공과 글러브를 꺼내 캐치볼을 하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다른 이들도 </font></div> <div><font size="2">호기심에 연병장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족구와 축구에 지친 사람들에게 새로운 구기종목의 등장은 </font></div> <div><font size="2">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쉬는 시간이면 연병장에 나가 캐치볼이나 배팅연습을 하면서</font></div> <div><font size="2">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다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글러브가 모자라다는 점이었다. 결국 </font></div> <div><font size="2">짬순에 밀려 글러브를 사용할 수 없게 된 후임들은 울상을 지었고 그들을 가엾이 여긴 나는 후임들에게</font></div> <div><font size="2">국방일보로 글러브를 만들어주었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후임들의 얼굴을 보면서 김영만아저씨도 </font></div> <div><font size="2">이런 마음이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임들의 사용후기를 들어보니 종이라는 소재를 사용함으로써</font></div> <div><font size="2">가죽으로 만들어진 기존 글러브보다 혁신적으로 가벼워진 무게와 의외로 착용감이 괜찮다는 호평이 </font></div> <div><font size="2">자자했다. 다만 아주 작은 문제점이 있다면 손바닥에 전해지는 고통이 맨손으로 받는 것과 별 차이가 </font></div> <div><font size="2">없다는 점과 공을 두번정도 받으면 찢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량생산을 중지하기로 했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이제는 사람들도 제법 모였고 의미없는 캐치볼에 서서히 질려가던 우리는 진짜 시합을 하기로 했다. </font></div> <div><font size="2">화기소대와 PX빵 내기를 하기로 하고 경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이 공과 글러브들이 창고 구석에 쳐박히게 </font></div> <div><font size="2">된 원인을 알아냈다. 나는 야구의 광적인 팬은 아니었다. </font><font size="2">TV에서 볼 게 없을 때 야구중계를 하면 </font></div> <div><font size="2">보는 정도였고 캐치볼은 초등학교 이후론 해본적도 없으며 학교 앞에 있는 배팅센터에서 가끔 공을 </font></div> <div><font size="2">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나만큼의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시합이 </font></div> <div><font size="2">될리 만무했다. </font></div> <div> </div> <div><font size="2">게임이 시작되고 순식간에 만루가 되었다. 화기소대 김병장의 공은 정확하게 허벅지, 엉덩이, 등짝에 명중</font></div> <div><font size="2">했다. 물론 의도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던지는 공도 민족의 얼이 담긴 아리랑 볼이었고 실제 시합용 </font></div> <div><font size="2">공이 아닌 물렁물렁한 연식공이어서 그렇게 아프진 않았겠지만 세번째 타자의 등짝에 공이 맞는 순간 </font></div> <div><font size="2">어디서 본 건 있는지 다들 연병장으로 달려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대 클리어링이 끝나고 무사만루의 </font></div> <div><font size="2">대 찬스를 맞게 되었다. 고참은 빈볼이 두려웠는지 어느새 내무실에서 방탄헬멧을 가지고 나왔다. </font></div> <div><font size="2">가만히만 서있어도 볼넷으로 나갈 수 있었겠지만 </font><font size="2">그건 싫었는지 열심히 배트를 휘둘렀지만 배트는 허망하게</font></div> <div><font size="2">허공을 가를 뿐이었고 그렇게 물러선 고참의 얼굴은 쓸쓸했다. </font></div> <div><font size="2">그 후로는 계속 같은 식이었다. 일단 맞추기만 하면 당연히 수비가 될리 없었고 그렇게 15점 정도를 내고 </font></div> <div><font size="2">나서야 길고 긴 1회초가 끝났다. 하지만 우리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font></div> <div> </div> <div><font size="2">그렇게 경기는 막장으로 치닫았다. 경기가 계속되고 우리는 점수세기를 포기했다. 아마 한 70점 정도는 </font></div> <div><font size="2">난 것 같았다. 이걸 계속해야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쯤 오랜만에 제대로 맞은 장타가 나왔다. </font></div> <div><font size="2">외야로 날아가 굴러가는 공을 후임이 줏어서 힘껏 홈으로 뿌렸다. 공은 홈과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font></div> <div><font size="2">날아갔다. 실제 경기장이었다면 관중석이 있어야 할 방향이었다. 아는여자를 본 모양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2">힘이 빠져버린 우리는 다 집어치우고 마지막으로 점수를 내는 팀이 이긴걸로 하기로 합의를 봤다. </font></div> <div><font size="2">그러고나니 사라졌던 긴장감이 조금은 돌아오는 듯 했다. </font></div> <div> </div> <div><font size="2">그리고 첫 타자로 나선 후임이 땅볼을 쳤다. 하지만 놀랍게도 수비를 보던 상대방이 던진 공이 1루수 </font></div> <div><font size="2">글러브에 정확하게 들어갔다. 이 게임을 통틀어서 처음으로 나온 야구경기 같은 모습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2">그러자 이제는 세입이네 아웃이네를 두고 싸우기 시작했다. 심판도 없고 룰도 잘 모르니 무조건 서로</font></div> <div><font size="2">우기기 시작했다. 공이 빨랐네 아니네 몸이 빨랐네 베이스를 밟아야 아웃이네 아니네 심장에 공을 </font></div> <div><font size="2">찍어야 아웃이네 막무가내로 서로 우기기 시작했고 그렇게 말싸움은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지기 </font></div> <div><font size="2">시작했다.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우리는 정리를 하고 내무실로 </font></div> <div><font size="2">돌아갔고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그 이후로 야구공과 글러브는 어두운 창고속에 쳐박혀 다시는 </font></div> <div><font size="2">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 공에대한 논란은 한참동안을 계속 되었다. 그리고 말을 꺼내진</font></div> <div><font size="2">않았지만 바로 옆에서 </font><font size="2">지켜본 나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font></div> <div> </div> <div><font size="2">아웃이었다. </font> </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font>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