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주의 : </div> <div>1.전문가가 아니어서 직접 실록을 보고 작성한 글이 아니고 방송을 토대로 작성했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어서 지적과 수정이 필요 할 수 있어요 ^.^</div> <div>2.조선시대 상언과 격쟁이라는 민원 접수방식을 악용하는 단점도 있었고, 그 단점을 보완하는 기록도 있는대 잘 몰라서 이 글에는 추가하지 못했어요.</div> <div> </div> <div> </div> <div>-상언(上言) : 조선 시대, 청원을 위해 왕에게 올리는 문서</div> <div>-격쟁(칠 격擊, 쇳소리 쟁錚) : 왕 행차 시 징, 꽹과리 등을 쳐서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공식적으로 허용된 민원제도</div> <div> </div> <div> 정조는 왕릉을 참배하는 능행을 다녀오면서 그 동안에 상언(동행하는 관리가 문서로 접수)과 격쟁(동행하는 관리가 문서로 작성)을 접수하고</div> <div>궁으로 돌아와 왕이 곧바로 민원을 해결하는 형식이었고, 처리가 3일 만에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왕 행차 그림이 나오는대요, 그림에 많은 사람들이</div> <div>행차 주변에 가까이 모여든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div> <div>-정조실록, 정조16년 "...구경 나온 백성들이 산과 들을 가득 매웠다. 상이 백성의 고통에 대해 두루 물었다."</div> <div> </div> <div> 백성들과의 거리가 매우 가까운 상황 때문에 포도대장이 경호의 어려움을 들어 백성들의 접근 금지를 건의 했더니</div> <div>-정조실록, 정조5년 "무릇 팔방(八方)의 백성은 나의 적자(赤字)인데..." 나의 갓난아기와 같아서 보살펴야 한다며 막지를 않았대요.</div> <div> </div> <div> 대신들 또한 말리기를</div> <div>대신 : "소민이 상언을 하는 것은 매우 외람되고 난잡한 행동입니다. 상언과 격쟁을 받지 마소서"</div> <div>정조 : "듣거라 저 말할 곳 없는 자들이 억울함을 가슴에 품고 달려와 하소연하기를 어린 자식이 부모에게 하소연하듯 하니</div> <div> <strong>그렇게 만든 자가 잘못이지 저들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strong>." </div> <div>라고 하셨대요.</div> <div> </div> <div> 왕조시대라는 신분제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왕이었던 정조는 계속해서 부정부패로 고통받는 백성을 위하는 정책, 곧 나라를 위하는 정책을 펼치고 진심으로 애민하는 모습을 보여줌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div> <div> 그런대 현제 사회는, 민주주의라는 정말 좋은 이념이 존재하는 우리 사회는 왜 왕권 사회보다도 못한 소통의 모습이 곳곳에 만연한 것일까 하는 안타까움이 느껴졌어요. </div> <div> 아니면 돈과 권력이 계속해서 계급을 만들어온 현실을 제가 부정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div> <div> </div> <div> 정조 시대의 이러한 긍정적인 모습을 현대 시대에 사는 우리들도 같이 공유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iv> <div>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