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div> <div><font size="2"> 계급이 올라 이제는 더이상 오를곳이 없는 병장이 되고 분대장을 달고 난 후 내 군생활엔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font></div> <div><font size="2">그중 가장 큰 변화는 내무실을 옮기게 된 것이었다. 누구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각소대 화기분대 인원들과</font></div> <div><font size="2">본부소대 계원들로 이루어진 내무실을 따로 만들게 된 것이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입장에서 봤을땐 그리 탐탁치 않은 아이디어였다.</font></div> <div><font size="2">하지만 일말의 재고도 없이 우린 그렇게 대역죄인이라도 된것처럼 본부소대로 귀양아닌 귀양을 가게 되었다. </font></div> <div> </div> <div><font size="2">역시 나의 우려는 그대로 들어맞는 듯 했다. 소대마다 생활 분위기가 틀리고 내무생활에서 맡은 임무가 틀리기 마련인데 </font></div> <div><font size="2">갑자기 한곳에서 같이 생활을 하게 되니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소한 일로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고 괜한 기싸움으로 인해 </font></div> <div><font size="2">분위기가 냉랭해 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특히 계원들과의 갈등은 갈수록 심해졌다. 우리는 밤새 근무를 나가고 낮에 잠을 잤고 </font></div> <div><font size="2">계원들은 평범하게 낮에 일하고 밤에 잠을 잤기 때문에 생활 패턴 자체가 판이하게 달랐고 내무생활 분위기 또한 우리와 달랐다. </font></div> <div><font size="2">우리들은 선임이 하는일 과 후임이 하는일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예전군대라면 계원들은 그냥 내키는 사람이 내킬 때 하는 </font></div> <div><font size="2">프리한 분위기였다. 이것이 선진병영인가 하는 문화충격에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그걸 받아들이기엔 이미 나는 너무 빈티지한 </font></div> <div><font size="2">군대문화에 익숙해진 사람이었다. 계속되서 악화되기만 하는 분위기에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기로 </font></div> <div><font size="2">하고 먼저 손을 </font><font size="2">내밀기로 마음 먹었다. 일과가 끝나고 근무를 나가기 전에 먼저 솔선수범하여 청소를 시작했지만 지금 보고있는 </font></div> <div><font size="2">티비프로만 다 보고 </font><font size="2">청소하자는 계원 후임의 말에 나는 완전히 맛탱이가 가버렸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그리고 또한가지 나를 불편하게 하는건 보급관님의 존재였다. 전에 있던 보급관님은 사단으로 전출을 가고 새로 보급관님이 부임했는데</font></div> <div><font size="2">전에 있던 보급관님과는 달리 그는 매우 깐깐한 스타일이었다. 전의 보급관님이 동네아저씨 처럼 편한 스타일이었다면 새 보급관님은 </font></div> <div><font size="2">완전 상남자에 리얼솔져 스타일이라 항상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자주 오지는 않지만 올때마다 자기 사무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font></div> <div><font size="2">꼭 우리 내무실로 와서 생활하고 잠을 자 우리를 항상 불편하게 만들었다. 힘들던 시절을 버텨내고 이제 좀 군생활이 편해지나 싶었더니 </font></div> <div><font size="2">이게 왠 날벼락인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그렇게 내 남은 군생활은 고통으로 얼룩지는가 싶었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시간이 지나자 내 생활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초반의 갈등도 어느정도 해소되어 이제는 서로 같이 생활</font></div> <div><font size="2">하는데 적응이 되었고 계원들과도 제법 친해지게 되었다. 나의 군생활은 어느덧 그 전보다 더 윤택해지고 있었다. 계원들과 친해지니 </font></div> <div><font size="2">남들 하나 챙겨줄 때 두개를 채겨주기도 하고 남는 부식 하나라도 더 챙겨먹을수 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보급관님과 친해진 것은 </font></div> <div><font size="2">큰 수확이었다. 남들보다 자주 보다보니 </font><font size="2">이런저런 얘기들도 많이 나누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보급관님이 우리를 대하는 것도 </font></div> <div><font size="2">전과 달리 많이 살가워졌다. 그리고 그 효과는 굉장했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한달에 한 번 씩 실시하는 즉각조치 사격이 있는 날이었다. 근무에 들어가기 전에 바닷가에서 실사격 훈련을 하는 날이었는데 </font></div> <div><font size="2">그때마다 중대장님과 보급관님이 항상 동행을 했다. 근무지에 도착해 훈련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옆쪽 백사장에서 불빛이 보였다. </font></div> <div><font size="2">차가 한대 들어와 있는 것이었다. 밤에는 민간인 출입금지 지역이었지만 낮에는 근처에 해수욕장도 있고 또 주변에 모텔도 많고</font></div> <div><font size="2">밤바다에서 </font><font size="2">은밀한 밀회를 즐기기 위해 가끔 민간인들이 들어올 때가 있었다. 그럴때는 직접 가서 통제를 해야 했는데 </font></div> <div><font size="2">하필이면 </font><font size="2">간부들이 잔뜩 있는 자리에 민간인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보통은 가서 돌려보내면 군소리 없이 돌아갔지만 가끔 돌아가지</font></div> <div><font size="2">않고 </font><font size="2">버티는 진상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아주 제대로 걸린 날이었다. 이미 한참전에 출발했던 후임은 함흥차사가 되어 </font></div> <div><font size="2">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결국 나까지 그쪽으로 가게 되었다. 도착해보니 왠 남녀와 후임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font></div> <div><font size="2">술이라도 한잔 거하게 걸쳤는지 벌건 얼굴로 내가 오자마자 걸쭉하게 욕부터 날리던 그 사내를 보니 아.. 개머리판은 이럴때 </font></div> <div><font size="2">쓰라고 만든거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화를 누르고 좋게 이야기 했지만 그는 끝까지 막무가내였다. 그러다 결국 보급관님이 </font></div> <div><font size="2">몸소 행차하셨고 나는 최소 군장이구나 라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한덩치 하시던 보급관님을 본 그 사내는 잠시 움찔했지만 술기운인지 아니면 여자 앞이라 그런건지 기죽지 않고 폭언을 날리기 시작했다.</font></div> <div><font size="2">이런 진상들은 평소에 모여서 주기적으로 강의라도 듣는건지 아니면 전국진상연합에서 내려온 프로토콜이라도 있는건지 항상 </font></div> <div><font size="2">비슷한 멘트를 날렸다. 내가 내돈으로 세금내고 내가 오겠다는데 니들이 뭔데 오라가라 하냐는 것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2">나는 보급관님이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해졌다. </font><font size="2">보급관님은 몇마디 하지 않았다. 당신들 지금 여기 있는것 자체가 국가보안법 위반이고</font></div> <div><font size="2">우리는 지금시간부로 실사격 훈련을 할건데 어디 계속 그자리에 있어보라는 말이었다. 누가 잘못인지 내일 뉴스에서 한번 봅시다 라고 </font></div> <div><font size="2">말하고 대꾸할 틈도 없이 그대로 돌아서 가버린 보급관님의 뒷모습을 사내는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자리로 돌아온 보급관님은 </font></div> <div><font size="2">한참을 그쪽을 응시했다. 아직까지 차는 그대로 있었다. 그러자 보급관님은 확성기를 꺼내들더니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기 시작했다. </font></div> <div><font size="2">조용하던 밤바다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졌고 차는 빛의속도로 백사장을 빠져나갔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보급관님이 처음 부임했을때 돌던 소문이 사단에서 근무하다 욱하는 성질 때문에 대대 보급관으로 좌천된거라는 소문이었는데 이 일이</font></div> <div><font size="2">있기 전까지 나는 그냥 부풀려진 소문쯤으로 치부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 소문은 어쩌면 과장이 아닌 축소된 소문일지도 </font></div> <div><font size="2">모른다는 생각이 </font><font size="2">들었다.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고 이제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걱정하고 있는데 내 걱정과는 달리 보급관님은 </font></div> <div><font size="2">오히려 날 보며 씩 웃고 말 뿐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뜻밖의 행운은 다시 찾아왔다. 이제는 새로운 생활에 완전히 적응해 같이 내무실을 쓰는 다른소대 사람들과도 원만하게 지낼 수 있었고</font></div> <div><font size="2">계원들과도 친해졌다. 특히 그 중에 보급계원으로 있던 후임과는 우연히 같은지역 사람인 걸 알게 된 후 많이 가까워지게 되었다. </font></div> <div><font size="2">그러다 분대 후임 하나가 사고를 치게됐다. 가스마개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사실 가스마개를 잃어버리는 건 원주민식으로 치면 </font></div> <div><font size="2">장작으로 만든 길을 맨발로 밟고 걸어간다거나 높은 곳에서 덩쿨만 묶고 뛰어내린다거나 하는 성인식과 같은 일에 불과했다. </font></div> <div><font size="2">일이등병때 통과의례 같이 한번은 겪고 지나가는 일이라 욕한번 먹고 지나가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남는 가스마개가 없다는</font></div> <div><font size="2">것이었다. 보통 전임분대장들이 한두개씩 물려주고 가는 터라 소대에 남는 가스마개가 한두개 쯤은 있기 마련인데 그때는 남는게</font></div> <div><font size="2">없었다. 이미 다른 후임들이 잃어버린걸 메꾸다 보니 남는 가스마개가 없었고 다른 소대를 돌아가며 물어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font></div> <div><font size="2">이러면 상황이 곤란해지는 것이었다. 안그래도 전장비다 뭐다 검열을 앞두고 재물관리에 신경쓰고 있던 시기였기에 가스마개를 잃어</font></div> <div><font size="2">버렸다고 보고하는 순간 후임이나 나나 앞으로의 휴가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한참을 헤매다 포기하려던 순간 나에게 구원의 빛이</font></div> <div><font size="2">다가왔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보급병 후임이 내 얘기를 듣고는 조금만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일이 지난 후 그 후임이 나를 불렀다. 그가 내민건 가스마개였다. </font></div> <div><font size="2">아니 이 귀한걸 어디서 구했냐고 묻자 그 후임은 공무차 사단에 다녀오면서 사단에 있던 동기에게 LED라이트와 교환했다는 것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2">그렇게 개념없는 발언으로 내 맛탱이를 가게 했던 후임은 다시한번 감동으로 내 맛탱이를 가게 만들었다. </font></div> <div><font size="2">그렇게 그 후임은 가스마개를 등과교환한 강철의 보급술사가 되었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