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div> <div> <font size="2">상병을 달고 나의 군생활이 한창 무르익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6개월 간의 해안생활을 마치고 대대로 복귀해 대대상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font></div> <div><font size="2">어느 날 BOQ앞을 지나가는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장교와 부사관들의 군생활은 어떨까? 군대란 계급사회 속에 살다보면</font></div> <div><font size="2">사병들 사이에서는 사병들만의 병영문화가 있었고 그로 인해 이런저런 에피소드나 갈등들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장교나</font></div> <div><font size="2">부사관들도 우리처럼 그들만의 룰이나 규율이 있는걸까? 갑자기 일어난 호기심은 파문처럼 내 마음속에서 번져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font></div> <div><font size="2">난 간부들을 평소보다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나같은 일반사병이 자주 볼 수 있는 간부라고 해봤자 소대장이나 부소대장 정도였고 그마저도 퇴근후에는 어떤 생활을 하는지 알수가 없는</font></div> <div><font size="2">노릇이었다. 물론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그때까지 내가 관찰한 결과에 의하면 아무래도 사병출신이 많은 부사관 같은경우는 </font></div> <div><font size="2">정해진 규율을 그대로 따르기 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가는 방식을 선호하는 유형이 많았고 장교같은 경우에는 왠만하면 정해진</font></div> <div><font size="2">규율대로 행동하려는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나 부임초기 같은 경우엔 그 정도가 더 심한 편이었다. 작업을 할때도 소대장이</font></div> <div><font size="2">정해진 복장과 정해진 시간에 맞춰 작업을 진행하는 스타일이라면 부소대장은 편한 복장과 편한시간에 작업을 진행하는 스타일이었다.</font></div> <div><font size="2">우리들이 느끼는 데에도 </font><font size="2">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부사관들 같은 경우는 자신이 경험을 해봤기에 내무생활에 관대한 편이었고 장교의 </font></div> <div><font size="2">경우는 간혹 정말 사소한 </font><font size="2">부분까지 체크하고 넘어가려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조금 불편한 점이 있는것도 사실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2">지극히 내 개인적인 느낌에 의하면 </font><font size="2">부사관들이 동네 노는 형 같은 느낌이라면 장교들은 자율학습 시간에 칠판에 떠든사람이라며 </font></div> <div><font size="2">내 이름을 적는 부반장같은 느낌이었다.</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그들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도 약간의 차이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우리 소대장과 부소대장을 관찰한 결과 아무래도 장교들은 장교들을</font></div> <div><font size="2">대할때가 더 편해보였고 부사관들은 부사관들을 대할때가 더 편해보였다. 가끔 부소대장이 옆소대 부소대장이나 탄약관을 대할때는 </font></div> <div><font size="2">정말 동네 형동생 대하듯이 편하게 대한다면 소대장과 함께 있을 때는 뭐랄까 데이트 초기의 연인들이나 교양수업에서 처음 만난</font></div> <div><font size="2">같은조 조원을 대하는 느낌이랄까. 서로 배려는 해주려 노력하지만 약간의 어색함과 뻘쭘함이 느껴지는 그런 분위기였다. </font></div> <div><font size="2">그렇게 소대장과 부소대장을 관찰한 결과 무협지에 빗대어 얘기하자면 정파와 사파같은 느낌의 차이가 난다고 결론내렸다. </font></div> <div><font size="2">소대장이 그건 무림의 도리에 어긋나는일이오. 절대로 안되오 무량수불.. 이런 느낌이라면 </font></div> <div><font size="2">부소대장은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font><font size="2">전부 다 쓸어버려라! 크하하하하 이런느낌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이렇게 홀로 결론을 내리곤 나의 호기심도 조금씩 식어갔다. 그렇게 소대장과 부소대장을 관찰하는 일에도 흥미를 잃어갈때 쯤 </font></div> <div><font size="2">나는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되었다. 그들도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된 계기는 대대 지휘통제실 상황병 땜빵근무를</font></div> <div><font size="2">나갔을 때였다. 원래 지통실 상황병 근무는 본부중대 계원들만 나가는 근무였지만 갑작스레 생긴 결원으로 중대마다 땜방근무를 나가야</font></div> <div><font size="2">했고 우리 중대에선 내가 뽑히게 되었다. 다행히 특별히 알아야 할 일이나 해야할 일은 없고 전화만 잘 받으면 된다는 말에 걱정은</font></div> <div><font size="2">덜했지만 날 불편하게 한건 근무 설 때 간부들이 엄청 많다는 것이었다. 일단 당직사령 자체를 각 중대 중대장이나 고위간부들이 서기</font></div> <div><font size="2">때문에 그것부터가 날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본부소속 장교나 부사관들이 시도때도 없이 들락날락 했기 때문에 항상 소대장과</font></div> <div><font size="2">부소대장 만 보고 지내던 나에겐 색다른 경험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처음 지통실에 들어갔을 때 내 눈에 들어온 풍경은 중대장에게 폭풍갈굼을 당하는 인사장교의 모습이었다. 처음보는 풍경에 </font></div> <div><font size="2">나는 움찔했지만 </font><font size="2">본부소속 사병들은 이미 익숙한 지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그때부터 나의 상상과는 다른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font></div> <div><font size="2">지통실 안의 분위기는 나의 상상과는 사뭇 달랐다. 서로 모여 의견을 제시하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장교들의 모습을 상상했지만 </font></div> <div><font size="2">사실 그런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곳에서 내가 본 풍경은 툴툴대며 대대장 커피심부름을 하는 인사장교의 모습과 </font></div> <div><font size="2">졸다가 뒷통수를 맞는 정훈장교, 처음 전입와 이등병처럼 불안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며 각잡고 앉아있는 신임소위의</font></div> <div><font size="2">모습같은 나에겐 생소한 모습들 이었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건 인사장교였다. 왜 멀쩡한 당번병이 있는데 대대장 커피심부름을 </font></div> <div><font size="2">하고있는지 왜 보이기만 하면 다른 간부들에게 욕을 먹는지. 몇일이 지나자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고문관이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그랬다. 장교들 사이에서도 고문관은 존재했다. 그리고 그는 고문관이었다. 땜빵근무를 나가는 일주일 남짓 그는 볼때마다 크고</font></div> <div><font size="2">작은 사고를 쳤고 그때마다 갈굼을 당해야 했다. 근무 마지막 날. 그날 당직사령은 작전장교였다. 그는 부대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2">우리들 사이에선 악마로 불리웠고 행정병들 사이에선 부두술사로 불리었다. 당직 사령을 설 때 그의 취미는 위병소나 행정반을 </font></div> <div><font size="2">기습해 근무자들을 당황시키거나 영창에 보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악마라 불렀다. </font></div> <div><font size="2">그의 또다른 취미는 행정병들 야근시키기였다. 멀쩡한 행정병을 과도한 업무로 좀비로 만들었고 실제로 한 병사가 과도한 업무를 </font></div> <div><font size="2">못이겨 탈영을 시도하기도 했다. 처음 대대생활을 하던 때, 식사를 하러 가다 식사를 마치고 오는 작전병 한 무리를 본 적이 있다.</font></div> <div><font size="2">턱까지 내려오는 다크서클에 동공은 광채를 잃고 흔들리고 있었다. 영혼 없는 발걸음으로 걷는 그들의 입에선 이모텝... 이모텝.. </font></div> <div><font size="2">하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패잔병들을 보는 듯 한 그 모습은 나의 뇌리에 깊숙히 박혔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게 바로 작전장교였다. </font></div> <div> </div> <div><font size="2">행여 봉변이라도 당할까 나는 밤새 긴장한 채 근무에 임했고 마침내 아침이 밝아왔다. 이제 아침회의만 마치면 모든게 끝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2">하지만 사단이 일어난건 그 때였다. 회의 시작시간이 다가왔지만 인사장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거의 30분이 지나서야</font></div> <div><font size="2">모습을 드러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보다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차마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font></div> <div><font size="2">누군가는 그의 최후를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나는 끝까지 그를 지켜봤다. 하지만 의외로 작전장교는 별말 없이 자리에 앉으라는</font></div> <div><font size="2">말만 할 뿐이었다. 담담한 그의 말에 나는 그래도 아직 그에겐 붉은피가 흐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font></div> <div><font size="2">하지만 아니었다. 자리에 앉은 인사장교를 물끄러미 보던 작전장교는 입을 열었다. 이야~ 너 전투복 좋다? </font></div> <div><font size="2">무슨말인가 싶어 인사장교를 보니 인사장교는 팔쪽에 연필꽂이가 달린 사제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잠잠하던 작전장교의</font></div> <div><font size="2">입에서 온갖 갈굼들이 방언처럼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왠지 들으면 들을수록 그리운 말들의 향연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2">중위 나부랭이가 사제 전투복을 입네 어쩌네 짬이 찌질하네 어쩌네 이제 좀만 더 있으면 자크달린 전투화도 신겠다? 라는 둥 </font></div> <div><font size="2">주로 우리가 후임들을 갈굴 때 나왔던 단어들이 그대로 그의 입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강도는 차원을 달리했다. </font></div> <div><font size="2">기껏해야 1년 남짓 숙성된 갈굼을 날리던 우리에 비하면 그의 갈굼은 종갓집 장맛과도 같은 깊은 맛이 있었다.</font></div> <div><font size="2">단어 하나 하나가 심장을 후벼파고 옆에 있던 우리들의 멘탈까지 산산조각날 것 같은 한마디 한마디가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font></div> <div> </div> <div><font size="2">이미 인사장교의 영혼은 지통실을 떠난것처럼 보였고 그렇게 나는 그들도 그들만의 룰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font></div> <div> </div> <div> </div> <div>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