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우리나라에서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설화나 전설은 대부분 행복한 결말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그런 경향은 근대에도 거의 변하지</p><p><br></p><p> 않아서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를 담은 설화나 소설이 오늘날에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놀랍도록 비현실적인 아름다운</p><p><br></p><p> 한 폭의 그림 같은 이야기들을 제쳐놓고 유독 하나의 비극을 떠올려 보자.</p><p><br></p><p><br> 당신은 아기장수 우투리 이야기를 아는가? 이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결말은, </p><p><br></p><p>기존의 한국적인 설화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매우 신선한 충격을 선사해줄 뿐더러, 그 현실성에 드러나는 절망감은 생각보다 크다.</p><p><br> 우투리 이야기의 구조는 매우 간단하다.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영웅이 될 운명을 짊어진 우투리가 태어난다. 포악한 악의</p><p><br></p><p> 축은 어진 영웅이 자신들에게 해악이 될 것임을 알고 그 영웅을 없애려 한다. 그러나 우투리의 어머니가 저지른 실수로 우투리는 죽어</p><p><br></p><p>버리고, 언젠가 다시 세상을 바로 잡으러 올 것이란 기약 없는 약속만이 백성들 사이에 회자된다.</p><p><br></p><p><br> 아마 이 이야기를 쓴 사람이 권선징악이란 주제를 목표로 했다면 결말을 좀 더 밝은 방향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투리는</p><p><br></p><p> 실패하였다. 도탄에 빠진 백성이 존재하고 포악한 군주가 존재하고 자신을 돕는 군대까지 거느렸지만 기존의 체제를 한 번에 뒤바꿀</p><p><br></p><p> 수는 없었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그것은 우투리의 어머니가 저지른 실수로 빠뜨린 콩 한 알에 상징적인 메시지로 함축되어 있다.</p><p><br></p><p><br> 도탄에 빠진 백성은 누구나 영웅을 원하나 섣불리 거기에 가담하지 않는다. 대의보다 제 한 목숨을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포악한</p><p><br></p><p> 군주는 기존의 권력과 축적해 놓은 자원들, 견고한 통치 지배 시스템을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다. 시작부터 우위는 군주에게 있다.</p><p><br></p><p> <span style="font-weight: bold;">우투리가 넘어야 할 장벽은 포악한 군주와 그 수하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span> 백성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하며, 새로운</p><p><br></p><p> 비전으로 기존의 제도를 갈아엎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만약 그것이 용이하지 않다면 봉기는 지지받지 못하며 설령 성공하더라도 오래</p><p><br></p><p> 가지 못한다. 기존의 제도를 답습하면 기존의 부작용─대표적으로 감시를 벗어난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와 이들에 의해 남용되는 공권력</p><p><br></p><p>─이 반복될 뿐이다. 우투리의 어머니가 저지른 실수는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만으로도 봉기는 실패할 수 있는 것이다.</p><p><br></p><p> 그만큼 이야기 속의 봉기만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개혁이나 혁명도 매우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실패 사례는 흔히 역사에서 접할 수 있다.</p><p><br></p><p>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역사적 사건으로는 동학 농민 운동을 꼽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그 당시의 시대정신이 아직도 종교의 형태로</p><p><br></p><p> 남아있지만,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 또한 현실의 비극이다.</p><p><br></p><p><br> 그러나 우투리 이야기는 단순히 개혁이나 혁명의 어려움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결말이 암시하듯이 언젠가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러</p><p><br></p><p> 우투리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다소 부질없는 희망으로 치부될 지도 모를 기대를 갖게 해준다.</p><p><br> 비극은 반복되는가? 역사는 과연 반복되는가? 우투리는 영원히 성공할 수 없는 숙명을 짊어지고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결코</p><p><br></p><p> 단정적일 수 없다.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span style="font-weight: bold;">백성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비극은 반복된다. 백성들이 무조건</span></p><p><span style="font-weight: bold;"><br></span></p><p><span style="font-weight: bold;"> 영웅에게 의지하려고만 한다면 역사는 반복된다. 포악한 군주의 횡포를 알면서 묵인하고 군주가 바뀌어도 정치는 바뀌지</span></p><p><span style="font-weight: bold;"><br></span></p><p><span style="font-weight: bold;"> 않으리라 여긴다면 우투리는 결코 영원히 아무리 발악하더라도 성공할 수 없다.</span></p><p><br></p><p><br> 다시 우투리를 무덤으로 내팽겨 칠 것인지, 그를 믿고 그 뒤를 따라 폭정에 맞서 싸울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우투리를</p><p><br></p><p> 외면하는 자가 있다면, 그 자는 우투리의 어머니가 외면한 한 알의 콩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그 한 알의 콩이, 그 한 명의 힘이 우투리를</p><p><br></p><p> 죽일 지도 살릴 지도 모름을 깨달아야 한다.</p>
 김하준이 말하였다. "인간에게 날개 뼈는 있을지언정 날개는 없다."
 민은선이 말하였다. "인간만이 역사를 갖고 있으며 역사를 논한다." 
 현준경이 말하였다. "새들에게도 역사란 게 있을까? 새대가리에게 자신의 운명을 자각하길 기대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들에게도 미래가 있을 것이다."
 손은하가 말하였다. "당신은 인간이길 바라는가, 새이길 바라는가?"
 권은주가 말하였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당신의 이야기야!(De_te_fabula_narratur!)" 
출처는 제 블로그라서 굳이 출처를 밝히진 않겠지만 궁금해서 댓글 남기면 알려드리긴 할 텐데 사실 이게 글 전체나 다름없어서 오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근데.. 몇 글자 고치긴 했음..-_-;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