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노래인지도 모른다.
언제적 노래인지도 모른다.
다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몇년전인지 헤아릴수도 없을 정도로 어린시절 어머니께서는 한달에 한번 내 손을 잡고 나들이를 나가셨다는 것이다.
얼굴이 붉은 서점아저씨는 서점앞에서 붕어빵장사를 하신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허허 웃으시면서 붕어빵을 하나 주셨다.
키가 훤칠하신 시계집 아저씨는 가게 앞에 의자를 가져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셨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면 웃는 얼굴로 마주 손을 흔들어주셨다.
시계집 옆 건강원의 아저씨는 손님이 없을때는 시계집 아저씨와 수다를 떠는게 일상이셨다.
과일가게 아저씨는 정육점을 함께 하신다. 짧게 자른 머리와 붉은기가 남아있는 흉터, 넓은 어깨가 어린 나에게는 위협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성격좋은 분이셨다. 과일을 사러가면 덤으로 사과나 귤을 하나씩 더 쥐어주시곤 했다.
건강원 옆 떡집 아저씨는 항상 바쁘게 일하고 계셨고, 나는 어머니께 인절미를 사달라고 조르곤 했다.
그 앞 분식점에서는 떡복이의 매콤달콤한 냄새가 은은하게 퍼진다. 인사를 하면 주인아주머니께서 이쑤시게에 떡과 오뎅을 찍어서 건네주셨다.
어머니는 불량식품이라고 군것질거리를 잘 사주시지 않던지라 나에게는 별미였다.
대로변에는 약국이 있었다. 잠자리 안경을 쓴 머리가 살짝 벗겨진 약사아저씨가 계셨다.
어머니는 약국에서 영양제나 비타민제를 종종사곤 하셨다.
새콤달콤한 맛에 사탕처럼 영양제를 덥썩덥썩 집어먹는 나를 보며 약사아저씨는 쑥쑥 자라겠네요! 하면서 사람좋게 웃으셨다.
약국 옆에는 은행이 있다. 은행에서는 특유의 영수증의 잉크냄새와 소독약냄새가 났다.
나는 그 냄새를 좋아했다. 라는 것을 어머니께 말하면 뱃속에 해충이 있는 것이라며 내 배를 꼬집으셨다.
ATM기기 3개만 있는 작은은행에서 어머니는 통장정리를 한참동안 하셨다.
그때의 어린 나는 어머니의 한숨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세상물정이 밝지 않았다.
단지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 쓰레기통에서 영수증을 주워다가 파쇄기에 넣는 놀이를 했던 것 같다.
그때 나오던 노래가 Love is blue였다.
어린 내가 그 노래의 제목을 알리가 없었지만 잔잔하면서도 경쾌한 멜로디는 뇌리에 깊숙히 남아있다.
어머니가 통장을 갈무리한 핸드백을 잠구는 소리가 나면 용무가 끝나셨다는 것이다.
다음 수순은 정해져있었다.
은행 건너편에는 빵집이 있었다.
고소한 빵냄새를 풍기던 초록간판의 작은 빵집은 문을 열면 딸랑, 하고 풍경소리가 울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다양한 종류의 빵이 있던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어린 나는 세상 모든 빵이 모여있다고 생각했다.
가게 한가운데에 진열되어있는 롤리팝캔디는 이가 썩는다고 200원짜리 작은 막대사탕 하나 못먹던 나에게는 꿈의 동경이었다.
내 머리만한 사탕을 핥으면 어떤 느낌일까. 이빨이 모두 녹아버리는건 아닐까?
혹시라도 어머니께서 사주시지 않을까 기대해봤지만 어머니는 항상 그 옆의 바게트를 사셨다.
바게트, 마늘빵, 생크림, 공갈빵.
공갈빵은 딱딱하고 얇은 표면을 부수면 속에 얇은 꿀이 발려있던 빵이었다.
그것은 계산을 끝나자마자 바로 먹어도 되는 빵이었다.
혓바닥에서 사르륵 녹는 달짝지근한 빵조각은 아직도 그 맛을 기억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면 그날 점심은 크림을 찍은 바게트와 마늘빵이었다.
바게트는 내가 먹기에는 너무나 딱딱했다. 어머니께서는 바게트를 작게 찢어 생크림을 듬뿍 찍어 내 입에 넣어주시곤 했다.
우유를 싫어하던 나였지만 생크림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생크림을 숟가락으로 퍼먹으려다가 어머니께 꾸중을 들었다.
마늘빵은 매운맛이 날 것 같았지만 짭잘하고 달콤한 맛이 났다. 길다란 마늘빵 한조각을 잡고 아삭아삭 갉아먹었던 기억이 난다.
입에 묻은 생크림까지 다 먹어치우면 그대로 낮잠을 잤다. 다음 나들이를 기대하며.
언제부터인가 은행을 가도 그 노래는 들리지 않았었고, 저절로 기억에서 잊혀졌다.
은행에서 나오던 노래의 제목이 love is blue라는 것은 최근에 아주 우연히 알게 됐다.
그로부터 몇년이 지났을까, 어머니와 함께 걸었던 나들이 풍경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모두 다른 가게로 바뀌었거나, 같은 가게라도 주인이 달랐다.
대형 체인점으로 바뀐 빵집에는 내 기억속의 공갈빵이 없다.
생크림은 내 기억만큼 달지 않고 느끼했다.
하지만 멜로디는 여전이 잔잔하고 경쾌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