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영화감상이나 글쓰기, 음주와 함께 몇 안되는 나의 취미 중 하나는 여행이다.</div> <div>뭔가 재미있는 것이 없을까 이것저것 기웃거리다 찾게 된 취미들이다.</div> <div></div> <div>게임은 중학교때 보글보글 이후로 끊었고</div> <div>스마트폰이 생기면서부터 사탕크러쉬나 애니빵 정도만 깔짝거리다</div> <div>그마저도 예쁜 쓰레기 블랙베리로 바꾸면서 손을 뗐다</div> <div> </div> <div>어릴때 우표수집도 해봤지만 그것도 잠시,</div> <div>우표책은 지금 어디있는지도 모르게 잊혀갔다.</div> <div> </div> <div>뜨게질도 해봤다. 하지만 넋놓고 뜨다보면 뜨게질 방향을 헷갈려</div> <div>풀었다 떴다 반복하기를 수차례.</div> <div>겨우 목도리 하나만 뜨고 더이상 뭔가를 뜨다간 </div> <div>목도리 대신 스트레스로 내 얼굴이 뜨든지, 세상을 뜨든지 둘중에 하나일것 같아 그만뒀다.</div> <div> </div> <div>퍼즐맞추기를 해볼까해서 500피스짜리를 사서 일주일만에 맞추고</div> <div>재미가 붙어 1000피스 짜리를 샀다가 2년만에 겨우 완성했지만</div> <div>퍼즐 한 조각을 잃어버려 머리를 쥐어뜯다 때려치기로 결심했다.</div> <div> </div> <div>고등학교때는 '그래 포켓볼을 쳐보자!!' 마음먹고 </div> <div>특별활동을 포켓볼반으로 가입했으나</div> <div>당구장에 가서 요구르트만 먹다 끝났다.</div> <div> </div> <div>이후 대학생이되어 사귀게 된 당구덕후 남자친구를 따라</div> <div>일주일에 3일은 당구장에서 살았지만 별 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div> <div>구석 의자에 앉아 짜장면을 먹으며 남자친구가 점수를 뺄때마다</div> <div>춘장을 휘날리며 환호성을 지르는게 다였다</div> <div>그러다 내기 당구에서 이기는 날이면 누나 가슴에 삼천원쯤은 있는거라며 </div> <div>천원짜리 몇장을 건네받았고 그걸로 집에가는길 맥주 한캔 사먹는 것으로 즐거움을 느끼는게 다였다.</div> <div> </div> <div>혼자있는게 행복하고 조용한걸 즐기는 나는</div> <div>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아나섰다</div> <div> </div> <div>화창한 봄이면 노트북을 옆구리에 끼고</div> <div>홍대 캠퍼스에 앉아 글을 쓰거나 </div> <div>월드컵공원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배를 깔고누워</div> <div>오징어를 씹으며 영화한편을 보는 일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div> <div> </div> <div>그때부터였다.</div> <div>취미로 글을 쓰고 영화에 빠져살고 여행을 다녔던 것이.</div> <div> </div> <div>그야말로 봄같던 나이 23살</div> <div>그날도 화창한 봄이었다.</div> <div>노트북 하나만 챙겨 홍대로 향했다.</div> <div>그러다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졌다.</div> <div>그길로 지하철을 타고 용산역으로 향했다.</div> <div> </div> <div>옷도 세면도구도 없었다.</div> <div>가진거라곤 노트북과 알바비로 받은 몇푼 안되는 돈이 들어있는 체크카드뿐</div> <div> </div> <div>용산역에 도착해 대충 시간표를 살피다 가장 빠른 표를 예매했다.</div> <div>백양사역.</div> <div>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div> <div>아는 사람도 없이 무작정 기차에 올랐다.</div> <div> </div> <div>그러다 목적지까지 가지않고 </div> <div>어딘지 모르는,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 곳에서 중간에 내렸고,</div> <div>그렇게 나의 첫번째 즉흥 여행이 시작됐다.</div> <div> </div> <div>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div> <div>"어디야? 언제올꺼니?"</div> <div> </div> <div>"오늘 못가. 지방 내려왔어."</div> <div> </div> <div>"왜?"</div> <div> </div> <div>"놀러."</div> <div> </div> <div>"알았다."</div> <div> </div> <div>첫날은 찜질방에서 잤다.</div> <div>계란도 까먹고 찜질도 하고 노트북으로 글도 끄적거리다 하루가 지났다.</div> <div> </div> <div>어디를 갈까. 그냥 집에 가자.</div> <div>주변을 둘러보다 다시 서울로 왔다.</div> <div>하지만 날씨가 다시 내 발목을 붙잡았고</div> <div>이번에는 청량리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div> <div> </div> <div>그렇게 도착한 강촌.</div> <div>엄마에게 문자를 했다.</div> <div>"오늘도 못가. 다른데 왔음."</div> <div>"알"</div> <div> </div> <div>그날은 하루종일 강촌 여기저기를 걸어다녔다.</div> <div>사람구경도 하고 핫도그도 사먹고 해장국도 사먹었다.</div> <div>바이킹도 타보고 싶었는데 평일이라 사람이 없어서인지 운행을 안해서 타지 못했다.</div> <div> </div> <div>거리에 있는 돌벽에는 '송이야 사랑해'라고 적혀있었다.</div> <div>내 이름이다. 누구지?</div> <div>또 남몰래 나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다녀간 모양이었다.</div> <div>이런 집착은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콧방구 한번 뀌고 맥주 한캔사들고 펜션으로 갔다.</div> <div> </div> <div>방에 들어와 영화를 한편봤고, 글도 한편 썼다.</div> <div> </div> <div>다음날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문득 중요한 문제가 생각났다.</div> <div>삼일째 속옷을 갈아입지 않았다는 것.</div> <div>속옷을 빨아널고 벌거벗은채 침대에 누웠다.</div> <div>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div> <div>뭔가 불안하지만 자유로웠다.</div> <div>탈옥수의 심정을 체험하며 잠이 들었다.</div> <div> </div> <div>아침이 돼서 춘천으로 향했다.</div> <div>남이섬으로가면 겨울연가같은 로맨스가 펼쳐질것만 같았기 때문이다.</div> <div> </div> <div>로맨스는 개뿔.</div> <div>남이섬은 배용준 입간판과 사진을 찍는 일본아줌마들로 가득했다.</div> <div> </div> <div>아무 가게나 들어가 파전에 막걸리 한잔을 걸치고</div> <div>숲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div> <div>타조가 보였다.</div> <div>무서웠다.</div> <div>과자를 흩날리다 내 앞에 모여든 비둘기떼만큼이나 무서웠다.</div> <div>그 길로 다시 남이섬을 빠져나왔다.</div> <div> </div> <div>이왕 춘천에 온거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div> <div>춘천 시내에 도착하자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div> <div>"오늘은 올꺼니?"</div> <div>"아니."</div> <div> </div> <div>통장잔고를 확인했다.</div> <div>30만원 남짓.</div> <div>아직은 부자다.</div> <div>갑자기 뭔가 사치를 하고 싶어졌다.</div> <div>옷이나 악세사리에는 별 관심이 없었기에 뭘할까 고민하다가</div> <div>위장에게 사치를 선물해주기로 했다.</div> <div> </div> <div>조금 헤매다 눈에 들어온 것은 일식집 간판.</div> <div>당차게 문을 열고 들어가 물었다.</div> <div>"1인분도 되나요?"</div> <div>"원래는 안되는데...음...들어오세요. 해드릴게요."</div> <div> </div> <div>점원언니를 따라 다다미방에 들어갔다.</div> <div>멋졌다.</div> <div> </div> <div>그때 처음 먹어본 우메보시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div> <div>쉬어터진 맛.</div> <div>입에 넣자마자 추녀대회라도 참가한듯 온 얼굴을 찌푸렸다.</div> <div> </div> <div>뒤이어 음식을 내놓던 점원언니가 엣훙풋푹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div> <div>"그거 매실장아찌인데 되게 아이셔에요. 조금씩 드셔야될텐데."</div> <div> </div> <div>빨리 말해주지.</div> <div>뒤이어 나오는 코스요리에 소주도 한병 깠다.</div> <div>천상의 맛이었다.</div> <div> </div> <div>점원언니는 요리를 내어올때마다 한마디씩 물었다.</div> <div> </div> <div>"근데 왜 혼자오셨어요?"</div> <div>"혼자 여행을 와서요."</div> <div> </div> <div>"왜 혼자 여행오셨어요?"</div> <div>"혼자니까요.."</div> <div> </div> <div>점원언니의 눈동자는 촉촉히 젖어들었고, 나는 소주와 함께 눈물을 삼켰다.</div> <div> </div> <div>언니는 친절했다.</div> <div>서비스로 일본과자도 하나 주셨다.</div> <div> </div> <div>다 먹고 나오기 전 냅킨에 짤막한 감사의 메모를 남겼다.</div> <div>"존맛."</div> <div> </div> <div>PC방에 들러 잘곳을 검색했다.</div> <div>통나무펜션이 눈에 들어왔다.</div> <div>시내에서 한시간 거리에 있는 곳이었지만 한치의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다.</div> <div> </div> <div>"오늘 자고 가려고 하는데요. 여자 혼자구요."</div> <div>"아...혼자요? 왜 혼자오셨을까. 음...어...혼자 오시는 손님은 안받아서요. 죄송합니다."</div> <div> </div> <div>전화를 받은 아줌마는 약간 당황한듯했다.</div> <div>그즈음 숙박시설에서 자살하는 뉴스가 나와서 그랬을까.</div> <div>그 후에 전화한 또 다른 펜션에서도 뺀찌를 먹었다.</div> <div>나이트클럽인줄?!</div> <div> </div> <div>세번째 시도.</div> <div>앞선 펜션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고 가격도 저렴했다.</div> <div>"저 혼잔데요. 오늘 묵으려고 하는데 방 있나요?"</div> <div> </div> <div>주인아저씨는 매우 친절했다.</div> <div>"그럼요. 갑자기 여행오셨나보다. 세면도구는 갖고 오셨어요? 여기 새거 남는거 있으니 그냥오셔도 돼요."</div> <div> </div> <div>그길로 택시를 타고 펜션으로 향했다.</div> <div>어둑해져서 도착한 펜션은 생각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div> <div>조금있으면 근처에 하나밖에 없는 슈퍼가 닫는다며 살것이 있으며 얼른 사라고 하셨다.</div> <div> </div> <div>부랴부랴 슈퍼로 향했다.</div> <div>맥주 여섯캔과 마른 오징어 하나를 샀다.</div> <div> </div> <div>오징어를 으적으적 씹으며 컴퓨터에 저장된 잔잔한 노래를 틀어놓고 맥주를 마셨다.</div> <div>핵맛.</div> <div> </div> <div>그렇게 밤이 깊었고, 다음날 펜션 아저씨의 친절한 배웅에 나의 첫번째 즉흥여행은 완벽히 마무리 됐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10년이 지난 지금</div> <div>급히 검색하고 갔던터라 펜션 이름도 위치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만큼 행복한 여행은 없었던 것 같다.</div> <div>다시 간다면 그때 그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div> <div> </div> <div>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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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6/01/13 15:50:57 125.180.***.168 ㅂㅅㅎㄹㄹ
460978[2] 2016/01/13 17:15:55 110.45.***.253 주신0312
644866[3] 2016/01/13 18:18:42 223.33.***.19 교묘한묘목
490688[4] 2016/01/13 19:08:42 223.62.***.112 스위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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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522[10] 2016/01/13 23:37:47 211.36.***.200 9628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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