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새로 중대장이 부임하고 부대 체육대회를 얼마 앞둔 날이었다. 새로온 중대장은 약간 4차원 끼가 있었는데 중대 정신교육이 있던 날 </p><p>중대원들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해왔다. 원래 체육대회는 그냥 적당히 놀다가 막걸리도 좀 마시고 고기도 좀 구워먹다 끝나는게 보통</p><p>이었는데 이번 체육대회 우승소대에겐 전원 포상외박을 보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우리 부대 자체가 포상이 별로 없는 부대이다 보니 </p><p>다들 눈을 번뜩이며 중대장의 말에 귀기울였다. 단 조건이 하나 있었는데 그냥 평범한 체육대회 종목이 아니라 군대에서만 할 수 있는 </p><p>종목들을 정해서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소대별로 두개씩 종목을 정해 중대장에게 따로 전달하기로 하고 우리는 고심끝에 훈련을 대비해</p><p>연습했던 철조망 치기와 삽탄하기를 선택했다. 그렇게 나온 종목들을 살펴보니 역시나 모두들 생각이 비슷비슷<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한지 군장싸기, </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총 분해결합 하기, 수류탄 멀리던지기, 이런 고만고만한 종목들이 보였다. 그중 논란이 된 종목이 음어 해독하기 였는데 필시 본부소대</span></p><p>의 의견이었을 것이었다. 우리는 본부소대에 찾아가 체육대회가 올림피아드도 아니고 음어가 왠말이냐, 우리 막내는 음어가 음란한 말인줄</p><p>안다. 라고 강력히 항의했지만 이는 중대장에의해 묵살당하고 결국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고 말았다. 그렇게 체육대회 일정이 나오고 </p><p>나는 그나마 제일 평범한 종목이었던 전투축구와 계주에 참가하기로 했다. </p><p><br></p><p>체육대회 당일, 화합과 소통의 장이 되어야 할 체육대회는 포상에 눈이멀어 온갖 육두문자와 고성이 오가는 전쟁같은 분위기로 치뤄지고</p><p>있었다. 열띤 분위기 속에 어느덧 내가 참가하는 축구를 시작할 시간이 다가왔다. 시간 관계상 전후반 20분씩만 하기로 하고 나는 40분간</p><p>리듬을 타기위해 몸을 풀고 있었다. 한창 몸을 풀고 있는데 연병장 스피커에서 축구에 참가하는 인원은 내무실에서 전투복으로 환복하고 </p><p>나오라는 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축구를 하는데 왜 전투복을 입고오라는 건지 의문이었지만 까라면 까야하는 군인이기에 전투복을</p><p>갈아입고 나온 내 눈앞에는 믿을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연병장 가운데에는 완전군장이 가지런히 쌓여있었고 이게 무슨의미 인지</p><p>이해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중대장이 말한 군대에서만 할수 있는 종목이 이런거였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엎지러진 </p><p>물이었다. 제발 박스나 베개가 들어있길 기도하며 군장을 슬쩍 살펴봤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완벽하게 FM대로 쌓여진 군장이었다. </p><p>체력엔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직접 군장을 메고 공을 차보니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경기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게 체육대회를 하는건지 <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얼차려를 받는건지 헷갈리기 시작했고 나는 떡은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사람은 떡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이미 TV광고가 나오기 몇 년 전에 </span><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온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들 떡이 되어 후반 인절미 타임으로 들어설때 쯤, 스피커 너머로 다시금 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까스!"</span></p><p>이게 뭔소린가 싶어 우리는 다들 멈춰섰지만 중대장은 단호한 어조도 다시 외쳤다. </p><p>"까스!"</p><p>나는 제발 교체해 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날렸지만 소대장은 굳은 얼굴로 엄지를 들어보일 뿐이었다. 개새끼.</p><p>그렇게 방독면을 뒤집어 쓰고나니 이제는 뛰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경기 시작전의 패기발랄한 군인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경기장에</p><p>남은건 경기장을 배회하는 20마리의 좀비들과 축구공 하나 뿐이었다. 결국 1대0으로 우리소대가 승리했고 기뻐할 새도 없이 내 </p><p>머리속에 든 생각은 "아 씨발 결승..." 이었다. 계주멤버 들은 결승에서 빼주는 소대장의 뒤늦은 배려로 결승전은 참가하지 않았지만 </p><p>아직 계주가 남았다는 생각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분명 계주에도 중대장이 뭔가 수작을 부렸을거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맴돌았다.</p><p><br></p><p>아니나 다를까 바통대신 군장이 주어졌다. 그래도 다행히 이번엔 빈 군장만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중대장은 그리 호락호락한 </p><p>인물이 아니었다. 한바퀴 돌때마다 짐이 추가됐고 결국 마지막으로 갈수록 빈 군장은 완전군장이 되어가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그리고</p><p>난 마지막주자였다. 마지막 주자인 나에게 주어진 물건은 다름아닌 그 빌어쳐먹을 방독면 이었다. 이제는 오기가 생겨 우승해서 포상</p><p>외박을 못갈바에는 이대로 질식해 죽어버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뛰었고 우리소대는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p><p><br></p><p>그렇게 나간 포상외박에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인PC방 이란 곳을 가게 되었다.</p><p> </p><p><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