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처음 녀석을 만난 건 부대로 전입온지 한달이 채 지나가기도 전이었다. 나보다 한달 후임이었던 녀석을 처음 보았을때부터</P> <P>범상치 않은 놈이란 걸 느낄 수 있었고 역시나 내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녀석은 흔히 말하는 오타쿠였고 그중에서도 아주 </P> <P>악질이었다. 그리고 내가 오타쿠에 대해 안좋은 인식을 가지게 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P> <P>현역으로 왔는지 의심이 가는 정신세계와 개념을 가지고 있던 녀석을 고참들 역시 곱게 볼리 없었다. 일단 말투부터가 </P> <P>남달랐다. 자꾸 자기 입으로 이상한 효과음을 내는 것이었다. 움직일때 입으로 휙휙,슉 이런소리를 냈고 그럴때마다 </P> <P>나는 손발이 오그라듬을 느꼇다. 그 버릇은 고참들이 아무리 얘기를 해도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고 결국 열이 받을대로 받은 </P> <P>고참이 한번만 더 휙휙,슉 이지랄 하면 너를 퍽퍽 때려줄거야. 라며 녀석을 갈궈댔고 실제로 몇번인가를 퍽퍽 때려준 후에야 </P> <P>녀석의 말투는 고쳐졌다. 하지만 언제나 뭔가 나사빠진 행동으로 우리는 항상 긴장해야만 했다.</P> <P> </P> <P>대대전술 훈련이 있던 날이었다. 그날 밤 매복훈련이 예정되어 있었고 하필 그녀석과 한 진지를 쓰게 된 나는 제발 아무 일 없이 </P> <P>무사히 훈련이 끝나기를 기도했다. 산 중턱에 진지를 파고 들어가 있는데 여름이라 그런지 모기가 극성이었다. </P> <P>보급으로 나온 바르는 모기약을 챙기라고 훈련 전에 미리 얘기를 했었는데 혹시 또 잊어버리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P> <P>모기약 챙겼냐고 물어보니 이번엔 왠일로 잊지않고 챙겨온 것이었다. 그 후임에게 먼저 바르고 달라고 얘기하고 잠시 후 모기약을</P> <P>건네받기 위해 고개를 돌린 나는 기절할 뻔 했다. 달걀귀신 처럼 맨들맨들 광이나는 후임의 얼굴에 달빛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P> <P>도대체 뭘 발랐기에 얼굴이 저모양이 된건지 랜턴을 켜서 나에게 전해준 모기약을 확인해 보았다. 그러면 그렇지... 녀석이 가져온건 </P> <P>총기 수입할때 쓰는 윤활유였다. 이 마귀같은 새끼.. 모기잡을때 wd뿌릴 새끼.. 오만 생각이 다들었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얼굴에 </P> <P>기름칠을 하고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는 그녀석을 보며 얼굴을 닦아주고 모가지를 조여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P> <P></P> <P> </P> <P>녀석은 분기마다 한번씩 대형 사고를 치고는 했다. 그 시작은 사단장이 격려차 부대를 방문했을 때부터였다. 부대를 정비하고 </P> <P>사단장이 방문해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 방문의 하일라이트인 사단장과의 식사시간이 다가왔다. 하필 멀지않은 자리에서 </P> <P>밥을 먹게 된 나는 긴장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귓구멍으로 들어가는지 알지도 못한 채 밥을 먹고 있었다. </P> <P>그렇게 식사가 끝나갈때 쯤 사단장은 넌지시 우리에게 애로사항이 없는지 물어왓다. 요즘 흔히 말하는 답정너의 군대버전인 </P> <P>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에 군생활이 너무 행복합니다. 말뚝박고 싶습니다. 사단장님 사랑합니다. 이런 입에발린 말들을 </P> <P>내뱉기 시작했다. 이런 말들이 오가고 있을 때 한참동안 말이 없던 그녀석이 입을 열었다. </P> <P> </P> <P>"김치가 너무 맛이 없습니다."</P> <P> </P> <P>한반도를 관통하는 북서쪽 시베리아 대기압의 영향인지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고 중대장을 비롯한 간부들의 얼굴이 </P> <P>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굳은 얼굴로 사단장이 떠나고 얼마 후 부대에 피바람 아니 양념바람이 불어닥쳤다. 실제로 업체가 바뀐건지 </P> <P>아니면 기분탓인지 김치가 맛있어진 느낌이었고 흔한 군대의 답정너 퇴치를 몸소 실천한 그녀석은 졸지에 군납업체를 쥐고 흔드는 </P> <P>큰손이 되어버렸다. </P> <P> </P> <P>거꾸로 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나도 그녀석도 짬을 먹고 윗 고참들이 하나둘씩 제대하기 시작했다. </P> <P>항상 주눅들어 지내다가 고참들이 하나 둘 제대하면서 녀석은 슬슬 고삐풀린 망아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랑은 한달차이 밖에 안나는데다 </P> <P>원래 후임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터치하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일단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P> <P>후임중 한명이 휴가를 가는 바람에 그녀석과 같이 근무를 나가게 되었다. 한창 근무를 서고 있는데 녀석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P> <P>꺼내기 시작했다. 무슨 마인부우 집같이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이내 듣기싫은 멜로디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건 오카리나</P> <P>라는 물건이었다. 개인적으로 하모니카에 안좋은 추억이 있어 입으로 부는 악기라면 치를 떨던 시기였다. 매우 심기가 불편해 그만하라고 </P> <P>얘기했다. 내 얘기를 못들었는지 아니면 듣고도 못들은척 하는건지 녀석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진심 귓방망이를 뎀프시롤로 돌리고</P> <P>싶다는 욕구를 겨우 참아내고 그 망할놈의 오카리나를 뺏어들어 바닷가에 던져버리고 그간 쌓아놓았던 욕들을 풀어놓았다. </P> <P>처음 보는 내 그런모습에 놀랐는지 그녀석은 근무가 끝날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고는 복귀하자마자 쪼르르 소대장에게 달려가 </P> <P>근무시간에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보고를 올려버렸다. 평소 그녀석의 행실을 잘 알고있던 소대장이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을리 만무했다. </P> <P>이 골칫덩이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우리에게 뜻밖의 희소식이 들려왔다. 검문소에 근무자가 부족해 우리소대에서 한명을 파견 보내야</P> <P>했고 그녀석은 귀양가듯 그렇게 검문소로 파견됐다. 그렇게 골칫덩이를 해결한 우리는 발뻗고 잘 수 있었고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P> <P>그녀석은 파견간지 한달도 못되서 근무중에 자다 대대장에게 걸리는 바람에 14박15일 패키지 를 다녀온 후에 다른 중대로 전출 되었다.</P> <P>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