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r></p><p></p><p>사회에선 쓸모없어 보이던 재주가 군대에선 큰 장점이 되기도 한다. </p><p><br></p><p>한 후임이 있었다. 약간 마른몸매에 평범한 외모를 지닌 그 후임은 평소엔 그리 눈에 띄지 않았다. </p><p>적당히 어리버리하고 적당히 사고도 치는 그런 평범한 이등병이었다. </p><p>이 후임의 진가를 알게 된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부대 안에선 환경미화기간을 맞아 각종 작업이 한창이었다. </p><p>장마철 내린 비로 잡초들이 무성해져 있었고 나는 보급관님에게 제초작업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p><p>후임 몇명을 데리고 창고로 향했고 제초작업을 위한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p><p>낫을 든 그녀석의 눈빛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p><p><br></p><p>무성히 자란 풀들을 보니 저걸 언제 다 치우나 하는 생각에 한숨부터 나왔다. 예초기 시동을 걸고 </p><p>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였다. 주변의 웅성거림을 들은 나는 작업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p><p>그리고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열린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그곳엔 녀석이 있었다. </p><p>녀석이 지나간 자리엔 마치 메뚜기떼라도 휩쓸고 간 마냥 풀한포기 남아있지 않았다. </p><p>같은시간에 남들보다 몇배는 되보이는 면적을 정리한 후였지만 전혀 지친 기색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p><p>엄청난 속도로 이동하며 낫을 휘두르는 그 모습은 흡사 발업질럿을 보는 듯 했고 빠른속도에도 </p><p>불구하고 한포기의 풀도 놓치지 않는 정교함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p><p><br></p><p>그렇게 넋이 나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중 녀석이 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p><p>비릿한 풀냄새와 녹즙투성이가 된 녀석의 모습에 움찔했지만 고참으로써의 위엄과 기계를 가지고 </p><p>낫 따위에 질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에 나 역시 작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p><p>그렇게 어우러져 우리는 한바탕 풀을 베었지만 그 현란한 낫놀림에 나는 패배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p><p>이쯤되니 도대체 어디서 저런 재주를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후임의 말을 듣고서야 </p><p>모든걸 알게 되었다. 뼈대있는 양반가문의 장손이었던 후임은 이미 어려서 부터 아버지를 따라 풀을</p><p>뽑기 시작했다고 했다. 남들은 명절이나 제사때나 하는 제초작업을 거의 매달에 한번씩 했다고 하니 </p><p>나의 패배가 수긍이 가기 시작했다. 군대에 와서야 풀을 처음 뽑아본 나는 이미 체계적인 유소년 시스템을</p><p>거친 엘리트 예초인이었던 후임의 상대가 될리 없었던 것이다.</p><p><br></p><p>그 후임의 눈부신 활약으로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 보급관님은 </p><p>그동안 보물을 옆에두고도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의 무지함에 탄식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는 작업기간후 </p><p>주어지는 2박3일의 포상휴가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등병이 선택되는 일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p><p>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해 여름이 지나고 나는 제대해 다시는 그 손놀림을 보진 못했지만 </p><p>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장마가 시작되면 부대안에 녹색마인이 나타나 잡초들의 홀로코스트가 시작된다는</p><p>전설과 함께 그 후로도 수많은 포상을 얻었다고 한다. </p><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