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r></p><p><p>아버지는 가끔 혼자서 면회를 오시곤 했다. 그리고 제대 한 후에는 <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가족들 몰래 아버지와 단 둘이 술을 먹는다. </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아버지의 말로는 가족 내 남자들끼리의 단합과 화합을 도모하는 </span><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자리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어머니와 동생에게 </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그동안 쌓였던 울분과 서러움을 토해내는 일종의 고해성사 같은 </span><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자리나 다름없다. </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처음 아버지와 단 둘이 술을 먹은건 내가 외박을 나왔을때였다. </span></p><p> </p><p>우리가족은 좀 심하게 화목한 편이었다. 어쩔땐 부모자식의 관계가 아닌 친구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p><p>하지만 어머니와는 다르게 아버지를 대하는데 있어서는 어려움이 있었다. 가족끼리 모두 있을땐 느끼지 못하지만</p><p>아버지와 단둘이 있을때는 왠지모를 어색한 공기가 집안에 흘렀고 아버지와 나는 어서 누군가가 집에 돌아오기만을 </p><p>간절히 바라곤 했다. 한번은 집에 전화를 했는데 아버지가 전화를 받어 당황한 나머지 밑도끝도없이 </p><p>죄송합니다 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어버린 적도 있을 정도이다. </p><p> </p><p>외박을 나가는 날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외박사실을 알리기 위해 집에 전화를 했다. 왠일인지 어머니가 아닌 </p><p>동생이 전화를 받았고 나는 동생에게 어머니가 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이어지는 동생의 말은 </p><p>나를 충격에 빠트렸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렸다는 것이었다. 내 귀로 들었지만 믿기지가 않았다. </p><p>지금까지 살면서 서로 큰소리 내는걸 한번도 본적이 없을 정도로 우리 부모님은 사이가 좋았다. 중매로 만난 우리 </p><p>부모님은 결혼한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불같은 사랑을 했고 그 불길은 가끔 동생과 나를 오그라들게 만들었다. </p><p>결혼식 사진에 찍힌 날짜와 내 생일이 4달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 명백한 증거였다. </p><p> </p><p>이렇게 서로 죽고 못살던 사이인데 그런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렸다니 믿을수가 없었다. </p><p>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시간동안 온갖 생각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평소에 아침드라마를 즐겨 시청하던 탓인지 </p><p>망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내 출생의 비밀에 관한 의문에 까지 다달았을때 쯤 집에 도착했다. </p><p>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p><p> </p><p>병원에 있다던 어머니는 거실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얼굴을 보니 어머니는 코가 퉁퉁 부어 있었다. 어머니의 퉁퉁 </p><p>부운 코보다 날 더 당황스럽게 만든건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평소에 아버지가 집안일 </p><p>하는걸 본적이 없었기에 도대체 이 상황이 어떻게 된 상황인지 도무지 감이 오질 않았다. 설겆이를 마치고 방안으로 </p><p>슬며시 들어가려는 아버지를 본 어머니는 청소기를 돌려야 하는데 청소기의 진동이 코를 울려 도저히 청소를 할 수 </p><p>없다며 바닥을 뒹굴렀고 방에 들어가던 아버지는 풀죽은 얼굴로 다시 청소기를 잡아야 했다. </p><p><br></p><p>동생에게 들은 사건의 내막은 이랬다. 평소처럼 잠을 자던중 아버지가 잠결에 팔을 휘둘러 손등으로 어머니의 코를</p><p>직격한 것이었다. 그렇게 불의의 백스핀블로우에 당한 어머니는 쌍코피가 터진채 잠에서 깨어났고 그때까지도 </p><p>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른채 잠을 자고 있었다고 한다.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어머니의 코는 살짝 금이 갔고 </p><p>그날부터 아버지는 어머니의 노예가 되었다. 어머니와 동생은 한통속이 되어 계모와 팥쥐마냥 아버지를 괴롭혔고</p><p>졸지에 콩쥐가 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내 잠버릇이 유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p><p><br></p><p>그날 밤 어머니와 동생이 잠든 후 아버지는 조용히 날 불러냈다. 그날 밤 처음으로 아버지와 단 둘이 술을 마셨고 </p><p>처음으로 취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한순간의 실수치곤 너무 많은 굴욕과 서러움을 당해서인지</p><p>아버지는 울분을 토해냈고 그렇게 가족욕을 하며 아버지와 나의 거리는 좁혀지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술을 먹고 </p><p>멀쩡한 상태에서 일대일로 다시 붙어보자며 안방으로 들어가려는 아버지의 가정법원 행을 막기위해 나는 </p><p>안간힘을 써야했다. 그 일 이후로 가끔 아버지는 혼자 면회를 오셔서 그간 있었던 일과 여자 둘 사이에</p><p>끼어서 당해야 했던 수모들을 털어내고 가시곤 했다. </p><p><br></p><p>얼마 후 휴가를 나갔을 때 아버지는 여전히 집안일을 하고 계셨고 어머니의 콧대는 전과 조금 달라 보였다. </p><p>여자들이란.. </p><p><br></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