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백일장] 제 3종 근접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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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한당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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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시간 : 2014/01/22 17:5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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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 제 3종 근접조우

가끔 자기 동네에서도 길을 잃는 아서 파시어(‘멀리 내다보는 자’ 라는 뜻.)에게 이 난생 처음 보는 지방도로는 너무나 난해했다. 그는 실제로 [버밍엄-35km]라고 적힌 표지판을 총 일곱 번 지나갔는데, 놀라운 사실은 그가 버밍엄에서 10km 남짓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버밍엄을 향해 차를 몬지 5시간이나 지났다는 사실이다. 설상가상으로 국도변은 완벽하게 평평한 평야지대라서 어디가 어디인지 전혀 감을 잡기가 힘들었다. 마침내 여덟 번째로 [버밍엄-35km]라고 쓰인 표지판을 지나자 아서는 차를 세웠다. 그의 가엾은 폴란드제 자동차에서 불안한 하얀 증기가 모락모락 피어났기 때문이다. “염병할 교통공사 개자식들. 분명히 술에 떡이 된 채로 아무데나 가서 땅따먹기 하는 기분으로 이 표지판들을 박아놨겠지. 놈들 때문에 난 지금 내가 빌어먹을 버밍엄으로 가는건지 아니면 더 빌어먹을 나이아가라 폭포로 가는건지도 모르겠다고.” 사실 아서의 불평은 꽤 정당한 구석이 있었다. 태초에 영국이 바다 밑에서 솟아나 섬다운 모습을 갖추자마자 이 땅은 온갖 불합리성을 지닌,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고 불편한 정부체계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 사건을 역사교과서에는 ‘마그나카르타(대헌장)’라고 써놓고 있다. 아서의 낡고 불쌍한 폴란드제 자동차는 이젠 증기와 더불어 가냘픈 쌕쌕 소리까지 내고 있었다. 이 자동차는 1966년에 처음 만들어진 이후로 유럽의 도로란 도로는 모두 달려본 베테랑이었지만, 자동차에게 있어서 베테랑이란 말은 그저 ‘낡아빠진 것’ 정도의 뜻이었다. 아서가 신경질적으로 자동차를 걷어차며 소리 질렀다. “이 빌어먹을 똥차는 왜 또 주저앉는 거야! 누가 폴란드제 아니랄까봐 염병할만큼 게으르고 더럽고 멍청하군!(아서는 상당히 편협한 지역관을 지닌 사람이다. 실제로 폴란드인들은 근면성실하고 깨끗하다. 하지만 머리가 똑똑한지는 잘 모르겠다.)” 아서의 우악스런 발길질에 자동차의 연소기관이 꽝 소리를 내며 완전히 연소해버리는 동시에 지구의 대기권, 정확히는 아서의 정수리로부터 약 1,000km 떨어진 상공에서 거대한 회색빛 금속체가 지표를 향해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이 순간, 버밍엄에서 10km 정도 떨어진 마을의 소문난 악동, 아담과 소피는 친구들과 함께 각종 색깔의 형광등을 들고 싸우는 우주인들과 석탄통을 뒤집어 쓴 악당이 나오는 영화의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키가 작고 못생긴 초록색 외계인 역할의 크레이브가 하늘에서 무언가 이상한 그림자를 발견했고, 크레이브는 잠시 한 눈을 판 대가로 팔이 네 개 달린 우주장군역할의 아담에게 치명타를 얻어맞고(우주장군의 팔이 네 개인 탓에 크레이브는 네 대를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목이 잘려버렸다. 완전히 낙심해서 지나가는 자동차가 없나 둘러보던 아서는 자기의 머리가 이상하게 찌릿찌릿하게 일어서는 것을 느꼈다. 아서는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각종 자연재해에 대해 잘 훈련받은 직장인답게 재빨리 자동차 밑으로 기어들어갔고, 긴장된 마음으로 기다리던 번개는 결국 치지 않았다. 대신 대기 중에 이상한 빛들이 감돌기 시작했으며, 거대한 파리가 목덜미에서 윙윙거리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땅의 잔디들은 마치 정전기에 곤두선 머리카락처럼 일제히 팔락거리며 공중으로 일어섰다. “맙소사, 지구의 종말이군. 아마겟돈(성서에 예견된 인간세상의 종말)이야.” 그는 적그리스도에 대해서 떠올렸다. 마왕, 왕을 몰락시킬 자, 무저갱의 천사, 용이라 불리는 거대한 짐승, 이 세상의 왕자, 거짓의 아버지, 사탄의 자식이자 암흑의 군주. 적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나타나기 전에 생기는 여러 징조 가운데에는 인과율의 역전이 있다. 아서는 비로소 자신이 오늘 왜 이렇게 운이 나빴는지 납득 할 수 있었다. 그는 오늘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예고하는 징조들 중 하나에 심각하게 휘말린 것뿐이었다. 갑자기 그의 자동차가 바람에 날리는 손수건처럼 힘없이 날아가 버렸다. 동시에 눈부시게 환한 빛이 하늘에서 쏟아져 나왔고, 아서는 잔디 속에 머리를 쳐박은 채로 자동차 안에 넣어둔 지갑과 외투, 휴대전화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아서 파시어씨 되십니까?” 강력하고 환한 빛에서 개구리 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서는 상대방이 이야기 하는데 땅에 머리를 박고 있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들려고 했으나 엄청난 밝기의 빛 때문에 도로 땅에 머리를 박아버릴 수 밖에 없었다. -“아, 빛을 줄여줘. 이건 이 종족의 인사법이 아니야.” 개구리 같은 목소리가 위를 향해 이야기하자 그 즉시 환한 빛이 수그러들었고 아서는 그제야 고개를 들 수 있었다. 환한 빛의 기둥 안에 서있던 것은 나방처럼 검고 번들거리는 눈과 묘하게 조소를 지은 듯한 얇은 입술을 지닌 작은 난쟁이. 미스터리 서클 매니아들 사이에서 외계인의 정석으로 인정받는 그레이형의 외계인이었다. <o:p></o:p> -“아서 파시어씨?” “예, 예. 그게 제 이름입니다.” -“한 번만 대답하셔도 됩니다. 우리는 댁의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어요.” 그레이는 예상대로 굉장히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다. 아서는 내심 그레이의 개구리같은 목소리와 괴상한 얼굴이 그의 상사인 티모시와 많이 닮았다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우린 당신에게 우주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에... [우주의 평화나 공존이나 뭐 그런 것들 여러 가지를 전합니다.] 이상입니다.” 아서는 속으로 그 말을 곰곰이 씹어보았다. “아, 정말 친절하시군요.” -“우리가 왜 25만 광년을 날아와서 당신네 종족 65억 명 중에서 굳이 당신에게 이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짐작 가는 바라도 있으십니까?” 아서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 어.... 그건 인류가 원자를 동력으로 이용하는 것과 또......” -“아뇨, 저희도 모릅니다. 그건 아마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자연 현상들 중 하나겠지요.” 개구리는, 아니 그레이는 모호한 표정으로(인간이 그 표정을 읽을 수 있다고 가정하고.) 지평선을 둘러봤다. <o:p></o:p> -“이런, 실례지만 선생님은 얼마나 되셨습니까? 아마 오래됐겠죠?” “어, 아뇨. 개인적으로는 한 40년 정도 됐습니다. 하지만 종으로는 한 50만년 정도 되지 않았을까요?” 그레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사실 가늘게 떴어도 어마어마하게 큰 눈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산성비가 내리게 놔뒀죠? 그리고 이산화탄소도 배출하게 놔뒀죠?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선생님의 행성의 바롬지수를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레이는 뭔가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길가의 개구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 아뇨.” -“유감이지만 선생님 행성의 극지방 빙하가 이 범주에 드는 행성 표준에 심각하게 모자라다는 말씀을 드려야겠는데요?” “저런.” 아서는 이 외계인을 MI6(영국의 정보기관)나 UN중 어느 곳에 소개시켜야 할지 고민했지만 곧 자기는 둘 중 그 어느곳도 찾아가지 못할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레이가 작게 한숨을 쉬자 아서는 자기도 모르게 말이 빨라졌다. “어, 저, 제가 책임을 지고 확인해보겠습니다, 아, 제가 저라고 했을 때는.... 아, 남극은 어느 국가에 소속되어 있다고 생각되지.....” -“선생님은 선생님의 종족이 광폭적인 소비문화에 휘말린 이 행성의 실질적인 지배우위 종족이라는 사실과 선생님의 종족이 이 행성의 자연을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십니까?” “어, 예.”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레이는 무심한 표정으로 뒤로 휙 돌더니 다음 순간 아서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동시에 하늘 위를 가득 매우고 있던 거대한 금속성 원반도 사라지고 없었다. 아서는 한바탕 파티를 벌이던 기분으로 부스스한 머리를 천천히 매만지고 있었다. -“아, 거듭 실례합니다. 선생님.” 작게 뿅 하는 소리와 함께 아서의 앞에 그레이가 다시 나타났다. -“저희와의 조우과정에서 있었던 재산상의 피해에 대해 보상드릴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러 왔습니다.” 아서는 날아간 자기의 똥차와 지갑, 외투, 그리고 휴대전화를 떠올렸다. “어, 실례지만 방금 날아간 제 자동차와 그 안에 있던 물품들을 다시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레이가 대답도 없이 손가락을 튕기자 아서의 자동차가 마치 원래부터 그곳이 있었다는 듯이 나타났다. “혹시 이 자동차도 좀 고쳐줄 수 있습니까?” <o:p></o:p> 사실 아서는 마음 같아선 이 자동차를 이름에 GT나 슈퍼가 들어가는 류의 자동차로 바꿔달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만난 상대, 더군다나 자신에게 실망감을 느낀 처음만난 외계종족의 일원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은 왠지 염치없는 행동인 것 같았다. 게다가 과연 외계인들이 이름에 GT나 슈퍼가 들 어간 류의 자동차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지도 장담 할 수 없었다. <o:p></o:p> -“구식 연소기관은 이제 잘 굴러갈 겁니다. 초보적인 질소반응로를 탑재했으니 더 이상 화석연료를 주입 할 필요도 없으시겠죠. 지금부터라도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조금씩 줄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레이가 말했다. “아, 네. 그렇죠.” -“그럼 이번에야 말로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레이는 작게 뿅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사라졌다. [굿 오멘] 오마쥬입니다.

한당무의 꼬릿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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