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style="text-align:left;"><strong></strong> </div> <div> </div> <div>위진시대 문학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건안문학을 시작으로 서진(西晉) 시대에는 수도 낙양을 중심으로 이른바 '태강문학' 이란 것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앞서 말한 건안문학의 '건안(建安)' 이 후한 말의 연호인 '건안' 에서 따와 만들어진 말이듯이 이 '태강(太康)' 역시 진이 삼국 중 최후의 국가 오(吳)를 멸하고 난 후 정한 연호인 '태강' 시대에 유행하였다 하여 따온 말입니다.</div> <div> </div> <div> </div> <div style="text-align:left;"><img width="400" height="231" alt="061265677441028_change_zhangsw0219_b.jp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406/1401892785ZFbH3tVNWcNkEGAFj9MwlZcN9udY.jpg"></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strong>건안칠자 - 조조, 조비, 조식 이 조씨 삼부자를 주축으로 그 외 공융, 진림, 유정 등 총 7인의 문인들이 모여 만든 일종의 문학 동아리(?)입니다.</strong></div> <div style="text-align:left;"><strong></strong> </div> <div> </div> <div>바로 앞시기의 건안문학이 당시 시대인 후한 말의 어지러운 세태를 반영하여 주로 비분강개한 필체로 시궁창인 현실을 개탄하였던 것이 주를 이루었던 것에 반면 <strong>태강문학은 주로 좋게 말하면 화려한 문장, 나쁘게 표현하자면 군더더기 투성이의 시들이 많이 등장하며 다루는 주제도 귀족들의 향락생활이나 당시 유행하던 도가사상과 섞인 주제들을 다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strong> 즉 문학은 귀족들의 소유물이 되었던 것이지요.</div> <div> </div> <div>이는 <strong>태강문학이 건안문학과 태강문학 중간에서 교량 역할을 했던 '정시(定始)문학' 의 시풍을 계승하고 따랐기 때문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strong> 정시(定始)는 삼국시대 위(魏)의 연호로서 시기상으로는 서기 240~249년 까지의 약 10여년 동안의 기간을 말합니다. 위진시대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청담사상의 유행이기도 하지만 유독 이 시기에는<strong> 청담사상(도가의 한 갈래로 주로 형이상학적인 것을 주제로 토론하는 사상으로, 화려하면서도 퇴폐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한마디로 뜬구름 잡는 소리나 늘어놓는 사상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strong>이<strong> </strong>성행하는데요, 당시 위나라에서 정적 사마의를 몰아내고 권력을 차지한 조상(曺爽) 휘하 관료들 및 문인들 대다수가 청담사상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청담가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치가였지만 문인이기도 햇던 이들은 청담사상의 영향을 받은 시들을 쏟아내었던 것이지요. </div> <div> </div> <div><strong>청담사상 역시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지라 이 정시문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태강문학 역시 귀족주의적 성격의 정시문학과 별반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를 보였던 것입니다.</strong> <strong>다만 정시문학의 주를 이루었던 청담사상만은 태강문학 시기에는 유행하지는 않았습니다.</strong> 이렇듯 정시문학을 계승했다는 점도 태강문학의 귀족적 성향을 설명하는 한 요인 중 하나지만 또한 헬게이트 급의 후한 말~삼국시대가 종결된 후의 안정된 시기였으니 아무래도 문학부문에 있어서도 비교적 안정되고 향락적인 방향으로 발전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div> <div> </div> <div>이러한 시대적 배경의 영향으로 태강문학은 사회적으로 대두되는 문제는 물론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고찰수준에까지 접어들던 건안문학과는 180도 다르게 사회, 인간문제 이딴건 뒷전으로 고이 모셔두고 순전 놀자판으로 노는게 체고시다를 연발하며<strong> 문학의 창작자인 귀족문인들의 사상과 생활관을 주입하며 정시문학 시기부터 조짐을 보이던</strong> <strong>시의 내용보다는 시 자체의 형식과 문장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시류를 좇아, 어려운 말로는 유미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보입니다. </strong>그리고 문학이 여전히 귀족들의 전유물이었음은 두말 할것도 없고요.</div> <div> </div> <div>이 태강시대의 대표적인 귀족문인들로는 <strong>장화(張華), 육손의 손자인 육기, 육운 형제, 좌사(左思), 반악(潘岳)</strong> 등이 있고 특히 조정의 중신이었던 장화는 아예 과거 건안시대에 조조가 문인들을 모아 문학그룹을 만들었던 것을 본따 <strong>'24우(二十四友)'</strong>라고 하는 문인모임을 만들기까지 합니다. </div> <div> </div> <div>정리하자면 <strong>태강문학은 점차 귀족적 성격을 보이던 건안문학-정시문학에 이어 먼 훗날 당(唐)대를 거쳐 송(宋)대 이전까지 문학작품이 귀족들의 전유물로 확립된, 귀족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결정적인 시기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strong></div> <div> </div> <div> </div> <div>그리고 이 태강문학의 뒤를 이은 것이 <strong>영가(永嘉)문학</strong>이란 것인데요, 사실 중국 문학사의 큰 흐름에서 보았을땐 이 영가문학은 그다지 큰 의미는 없습니만 위진시대의 문학흐름을 다루는 글이니 만큼 영가문학도 이 시대의 하나의 흐름으로 간주하고 다루어볼까 합니다.</div> <div> </div> <div>먼저 '영가(永嘉)' 는 서진(西晉)의 3대 황제 회제(懷帝)의 연호로서 서진 말에서 서진을 계승한 동진(東晉) 초까지의 시기를 말합니다. 기간으로 따지자면 서기 307년~312년으로, 고작 5~6년 남짓한 시기 밖에 안됩니다. </div> <div> </div> <div>이 영가문학이 대두된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당시 시대적 배경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삼국을 통일해 안정기를 누리던 서진이었지만 무제(武帝) 사마염 사후를 기점으로 서진은 내부의 권력다툼으로 급격하게 쇠락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틈을 타 북방에서는 그 사이 힘을 기른 흉노가 건국한 한(漢)이 남하하여 서진을 멸망시켜버리는데 이를 <strong>'영가의 난' </strong>이라고 합니다. 앞서 설명한 회제의 연호인 영가 시기에 발발한 난이라고 해서 영가의 난이라 부르는 것입니다.</div> <div> </div> <div><img width="735" height="506" alt="1394524738SIMpZyQFm.jp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406/1401895879Suojy8BsqAzHBNor.jpg"></div> <div> </div> <div><strong>영가의 난으로 진(晉) 왕조는 화북을 상실하고 강남으로 밀려나게 되니 이것이 동진(東晉)입니다. 그리고 화북에서는 이민족 월드인 5호 16국 시대가 전개되고요.</strong></div> <div> </div> <div> </div> <div>이 영가의 난으로 흉노의 한(漢)에 밀려난 서진은 강남으로 천도하는데 이를<strong> 동진(東晉)</strong>이라고 합니다. 졸지에 나라의 절반이 떨어져 나가고 궁벽한 강남에 쳐박히게 되었으니 자연스레 그 시대를 반영하는 문학작품들 역시 <strong>영토를 잃은 슬픔과 분노, 그리고 언젠가는 중원을 수복하겠다는 의지를 노래하는 시 작품들이 등장하게 되는데요, 이것이 영가문학입니다. </strong></div> <div><strong></strong> </div> <div style="text-align:left;"><img width="300" height="318" alt="xin_5e039598d9ff11d7be2c0050ba1967d3.gif"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406/14018967151fN8VshYjTpUwJGcfHIxviGZjt6.gif"></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strong>유곤.</strong></div> <div><strong></strong> </div> <div>대표적인 시인들로는 서진의 신하이자 동진에서도 중신을 역임한 <strong>유곤(劉琨), 곽박(郭璞), 노심(盧諶) </strong>등이 있습니다. 특히 유곤은 서진에서도 알아주었던 유명한 시인으로 영가의 난으로 나라가 거덜나버리자 호방하던 그의 시풍이 비분강개해져 망국의 서러움을 노래한 것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이후 동진을 섬기면서도 그가 남긴 작품들로는 <부풍가(扶風歌)>나 <중증노심(重贈盧諶)>이 대표적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뭐니뭐니 해도 동진에는 위진시대를 넘어서서 중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왕희지나 도연명 같은 거물급의 네임드 문인들이 있긴 합니다만 유곤 역시 동진의 유명문인 중 한사람입니다.</div> <div> </div> <div>하지만 이렇게 망국의 서러움과 분노, 수복의지를 노래한 시들도 있는 반면에 <strong>시궁창인 현실에 좌절하고 체념하여 현실을 외면하고 벗어나려는 도피성 짙은 작품들도 등장합니다. </strong>중국사를 보면 시대가 혼란스러우면 사람들이 대체로 정신적 위안처로 찾는 것이 바로 도가사상입니다. 이 시대의 동진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아마 우린 안될꺼야 식으로 체념한 나머지 <strong>현실을 외면하며 많은 이들이 은둔하며 신선이나 불로장생과 같은 도가사상에 몰두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위에서 설명한 정시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청담사상이 다시 유행하기도 했고요. </strong></div> <div> </div> <div>이와같은 시류는 먼 훗날 북송(北宋)이 여진족의 금(金)에 밀려나 강남에서 남송(南宋)으로 명맥을 유지하며 문학분야에서 나타난 현상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송(宋)을 대표하는 문학작품인 사(詞)도 남송시기에는 금과의 투쟁을 부르짖는 강경파와 현실에 체념한 온건파 두 부류로 나뉘었으니 말입니다.</div> <div> </div> <div>이러한 <strong>영가문학의 추세는 이후 동진의 주요 문학성향으로 굳어져 동진의 양대 시풍인 현언시(玄言詩)와 유선시(遊仙詩)로 발전하게 됩니다. 현언시나 유선시 모두 노장사상에 기초하여 현실보다는 가상의 신선계에 몰두하고 탐닉하는 현실도피성 짙은 시를 말합니다. </strong>결국 동진은 중원회복의 꿈은 이룩하지는 못했는데 동진의 존속기 내내 이런 암울한 분위기가 사회전반에 깔려 있어 현언시와 유선시 같은 시풍이 유행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div> <div> </div> <div>물론 예외적으로<strong> 동진 중기 무렵에 <귀거래사>를 남긴 도연명 같이 민생을 노래하고 소박한 삶을 주제로 한 '전원시가' 의 시풍도 등장합니다. </strong>도연명의 시들은 서진~동진 시기의 문학을 점하다시피 했던 <strong>현실도피성의 청담사상과는 달리 전원 속의 즐거움과 삶을 노래하는 비교적 현실적인 시풍을 보였던 독특한 시가였습니다.</strong></div> <div><strong></strong> </div> <div> </div> <div style="text-align:left;"><img width="449" height="480" alt="hb1_115_i1.jp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406/1401898450br5n9rae63.jpg"></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strong>도연명(陶淵明). 사실 자(字)가 연명이고 실제 이름은 도잠(陶潛)입니다.</strong></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나중에 시간이 나거든 위진 시대에 이은 남조(南朝) 얘기도 써보겠습니다.<br><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