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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대학 이야기를 써오던 임옥님이 이제 자신의 치과 병원 이야기를 올려주셨네요...
한국에서도 많은 치과의사들이 이렇게 환자들을 돌봐주면 좋을듯 해서 글을 퍼왔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와 사진은 여기로 --- http://wjsfree.tistory.com/m/post/108
치과 이야기 12탄 (제목을 치과대학 이야기에서 치과 이야기로 바꿨습니다^^)
3월 15일은 우리 병원을 개업하고 정확히 17년이 되는 날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난 내 개인병원을 가질 생각이 없었다. 치과의사이신 할아버지와 아빠께서 병원운영으로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처음에 내가 치대에 가는 것을 반대하셨던 아빠께서도 개업하지 말고 고용 의사로 일할 것을 적극 권장하셨다. 그래서 난 그저 큰 병원에서 월급받고 일하며 내 생활을 여유롭게 가지겠다고 생각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학교 교수병원과 여러 다른 병원에서 3년여를 근무했다. 한 곳에서 풀로 일하지 않고 2-3 곳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다. 여러 곳을 비교하고 내가 원하는 직장을 찾고 싶었다. 시설이 뛰어난 하버드 교수병원에서부터 작은 규모의 개인병원, 극빈자를 치료하는 보건소 등 다양한 곳에서 일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원들은 내 작은 안목으로도 병원을 운영하는 방식들이 잘못된 듯 보였다. 내가 환자라면 편하게 와서 치료받고 갈 만한 병원이 아니다 싶었다.
얼마나 많은 수익을 올리냐를 제1목표로 삼는 병원이 많았다. 현대식 기기를 들이고 눈에 보이는 치장을 하는 일에 많은 돈을 쓰지만 막상 환자가 와서 얼마나 편안하게 치료받는가, 환자가 어느 정도로 만족할만한 치료를 받는가 등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병원에서 일하는 staff도 별로 좋은 처우를 받지 못하는 듯 했고 일을 지겨워하며 하는 모습을 보았다.
한 곳에서는 일한 지 몇 달이 지난 후 비즈니스 학위를 가진 매니저가 나와의 회담을 요청했다. 매니저의 방으로 가니 그 사람의 책상 위에는 내 production 기록이 다른 의사들의 것과 비교된 도표가 놓여 있었다. 그는 왜 내 크라운 숫자가 다른 의사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지, 내 진료가 너무 conservative(이 때는 보수적이라는 말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한 것은 아닌가 물었다. 환자에게 필요하지 않는 치료를 어떻게 하느냐고 나는 항의를 했다. 치과의사가 아닌 사람이, 의사에게 -아무리 초보이긴 해도- 그 진료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도저히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그런 회담이 한 달 후에도 이어졌고 난 그곳을 미련없이 그만두었다.
내가 평생 일하고 싶은 직장이 없었다. 그래서 한 때는 치과를 포기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다 내가 사는 동네에 빈 가게가 나왔고 건믈 주인이 치과를 유치하고 싶어하며 내게 제안을 해왔다. 그게 18년 전의 일이다. 나는 내가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내 스스로 병원을 차리기로 결심했다.
내 병원을 운영할 자금을 대기 위해 다른 두 직장을 거의 6개월 그대로 유지하며 빚을 내어 시설을 하고 개업한 것이 1998년 3월 15일이었다. 처음 몇 달은 아침 9시에서 밤 9시, 12시간씩 일주 6일을 일했던 적도 있었다.
물론 수익성 있는 병원을 운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경제적인 것을 절대로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제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면 장기적으로 볼 때 오히려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환자들은 그런 것들을 느끼게 되고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기 마련이다.
난 환자에게 믿음을 주는 의사가 되고 싶었고, 환자들이 병원에 들어서면 긴장하지 않고 편안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환자들이 편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즐겁고 편안해야 했다.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는 환자에게 아주 민감하게 전달된다.
그래서 직원들이 즐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또 일에 너무 지치지 않도록 우리 병원에서 풀타임은 나흘을 기준으로 한다. 병원은 엿새를 모두 열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2-3일을 일하는 파트 타임에서부터 풀타임은 4일까지 일한다. 이렇게 시작을 했더니 이제 이 이유 때문에라도 우리 직장을 떠날 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따뜻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위해서 인테리어며, 음악, 꽃, 그림 심지어 잡지까지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고 정성을 다 해 골랐다. 병원에 있는 물건 하나 하나 색이 튀거나 전체적인 하모니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치료 도구는 되도록 환자의 눈에 띄지 않도록 배치했다.
그리고 난 내 것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 병원의 다른 의사의 production을 별로 보지 않는다. 새로 시작하는 젊은 의사들에겐 서두르지 말고 시간을 충분히 가지라고 말한다. 진료 계획을 짤 때는 자신의 엄마에게도 똑 같은 진료를 하겠는가를 생각해보라고 한다. 일을 빨리하고 많은 수익을 올리는 것은 자랑이 아니다.
17년이 지나 과거를 돌아보며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든다. 힘든 일도 많이 있었고 많은 고민의 시간도 있었지만 즐거웠던 일, 감사할 일이 월씬 더 많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정말 일하고 싶은 작업환경을 만들어냈다는 자부심도 있다. 함께 힘을 모아준 직원들에게 정말 감사한다. 키우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18년 전에 3명의 규모로 시작한 병원이 이제 20명 가까운 직원이 일하는 규모로 자랐다.
한 곳에서 오래 일하다보니 좋지 않은 점도 있다. 지난 십여 년을 줄곧 우리 병원에 오는 환자들에게서 이들이 점점 늙어가는 모습을 보게되는 것이다. 머리가 하얘지고, 주름이 늘고 자세가 구부정하니 변하는 환자들을 보며 가끔 가슴이 내려 앉는다. 젊고 아름답고 발랄했던 모습을 기억하는데... 또 그런 환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세월의 흔적이 내 모습에도 보일까 하는 약간 서글픈 깨달음도 갖게 된다.
난 아마 죽을 때까지 이 동네에 살 것이고, 우리 아빠를 기억해주시는 고향의 많은 환자분들처럼 언제가 내가 늙어 더 이상 치과를 하지 않을 때 길에서 마주치는 옛 환자들이 날 좋은 기억으로 반갑게 맞아주길 소망한다.
그나저나 직원들은 17주년 축하 파티 언제하냐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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