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직 문재인후보냐 안철수후보냐 두분을 저울질 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20대의 청년으로써 최저임금의 최저기준이 어디에서의 임금이든 영향을 크게 받을수 밖에 없다는걸 알기에
문재인 후보의 이번 정책에 큰 관심을 갖고있습니다.
먼저 7000원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고 따지신다면 대학에서 교양경제만 배우고 한국의 경제력규모가 어느정도인지 겨우 아는
사회초년생인 저도 가능하다고 지레짐작이 아닌 확신에 찬 대답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도 오랜기간 5000원 이하의 최저임금에 익숙해서 그렇지 대한민국에 흐르는 돈의규모는 어마어마합니다.
휴전상황, 자원의 부족, 인재로만 충당해야하는 나라살림 등등의 악조건을
다 따져보아도 1인당GDP대비 최저임금이 이따위로 낮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할겁니다.
한국이 최저임금이 왜 이렇게 낮은지 아십니까?
그건 딱 잘라말해서 바로 부의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아서입니다.
물론 수익창출이란게 일부기업에서 특별히 많이 난다는것은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최저임금이란 어느정도 복지의 개념입니다.
속된말로 망할 윗대가리 놈들이 올바른 조세개혁을 하지않고 남는 세금으로 이런저런 비리를 저지르니 최저임금이 낮은겁니다.
대기업이 하청에게 돈을 많이 분배하지 않는게 용인되는 정책과 사회분위기도 한몫하고요.
하지만 보십시오. 대통령 개인의 힘이 모든상황을 좌지우지 할수는 없다하나 문재인 후보의 역량이 최저임금을 7000원 인상도 못하고
임기를 끝낼 그런 인물로 보이십니까?
절대 아니죠.
최저임금을 7000원 이상으로 만든다는것에는 제가 말한 부정부패척결과 대기업에대한 규제, 조세개혁 등등이 필요한 일일겁니다.
어떤후보에게는 힘들지만 꼭 필요한 정책시행이 될것이고 또 어떤후보에게는 머릿속에 박혀있지도 않은 개념일겁니다.
정부가 하는 일이 뭡니까. 사법! 입법! 행정! 아닙니까.
소비자의 최저임금을 일단 높여서 구매를 통한 시장의 활성화? 이건 결과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무조건 최저임금을 높이면 부담을 느끼는 고용주 또한 있겠지요.
결국 사법과 입법을 통해서 부정부패척결과 대기업에대한 규제, 조세개혁 이 세가지를 때려잡아야 합니다.
물론 문재인후보의 패기라면 충분히 이쪽 방향으로 추진하리라 믿어의심치 않고요.
이상 제 개인적인 바램이자 현실이 되야하는 최저임금7000원 인상에 관한 썰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이성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얼굴을 보고 싶거든 정면으로 당당하게 보고
옆에서 엿보지 마라.
성철 스님의 주례사 
오늘 두 분이 좋은 마음으로 이렇게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결혼하기를 원해놓고 살면서는 아이고 괜히 결혼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할 걸 후회하는 마음을 냅니다. 
이 결혼 할 때 마음이 어떠냐? 선도 많이 보고 사귀기도 하면서 
돈은 얼마나 있나?, 학벌은 어떻나? 성질은 어떻나? 건강은 어떻나? 
이렇게 다 따지고 이리 저리 고릅니다. 
손해 볼 마음이 논꼽 만큼도 없습니다. 
이렇게 골랐다는 것은 덕보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덕보겠다는 마음이 살다보면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아내는 30%주고 70% 덕보자고 하고 남편도 30%주고 70% 
덕보자고 합니다. 
둘이 같이 살며 70%를 받으려고 하는데 실제로는 30%밖에 못 받으니까 
살다보면 십중팔구는 결혼을 괜히 했나, 속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덕보려는 마음이 없으면 어떨까요? 
아이고 내가 저분을 좀 도와줘야지, 저분 건강이 안 좋으니까 내가 평생 
보살펴 줘야겠다. 저분 경제가 어려우니 내가 뒷바라지해 줘야겠다. 
아이고 저분 성격이 저렇게 괄괄하니까 내가 껴안아서 편안하게 
해 줘야겠다. 
이렇게 베풀어 줘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면 길가는 사람 
아무하고 결혼해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덕보겠다는 생각으로 고르면 백 명중에 고르고 고르고 해도 
막상 고르고 보면 제일 엉뚱한 것을 고르게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부터 덕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 
내가 아내에게 내가 남편에게 덕 봤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 줘야겠다고만 
다짐하면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제가 말로 부조를 하니까 두 분이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매일 밤마다 반복되는 그리고 번복되는 어제의 각오는 잊은 채 
시시한 욕구를 채우려고 너 스스로와 했던 약속을 기만하고 모욕하고 비웃었지.
굳은 다짐으로 쓰여졌던 약속의 증서는 휴지조각으로 버려지고 또다시 내일을 외치며 도대체 언제쯤 관둘지 모르는 그 공허를 외치며 스스로에 대한 자기혐오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애써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거적으로 덮어놓고선
남이 쌓아올린 탑을 남들에게 뽐내는 역겨운 대리만족을 넘어, 마치 그 주인이라도 된 양 허세를 부리는구나.
부끄러움은 잊은지 오래- 오히려 민망할 정도로 당당하다.
검은 밀물은 매섭게 밀려드는데 모래성은 높아져만 간다.
꿈은 화려하기 그지 없는데 어째서 시궁창에서 한심한 꼴로 허우적대는가.
그래놓고 후에 가서 이상의 날개는 현실에 의해 꺾이어졌다는 되지 않는 감상을 늘어놓을 것인가.
시간보다 빠르게 달려야 하는데 어째서 뒷걸음질만 치는가 - 바로 뒤엔 절벽있는데
지금 네가 즐기는 그 쾌락이 죄 많은 너의 가슴을 찢는 고통으로-
그리고 수십배는 더 고통스러울 죄 없는 어머니의 소리없는 오열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면서 어째서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으로 그렇게 퇴보를 반복하는 것인가. 
.
.
.
들어라.
하루의 절반을
눈물로 지워본 적이 없는 이들아.
또한
들어라.
노력없는 희망만큼이나 
또 절망적인 것은 없음을 아직 모르는 이들아.
언젠가는 가장 비참하게 찢길 오만과
지독한 비린내를 풍기는 나태로 찌들어
이제는
끝없이 내일만을 되뇌이는
그 검은 입으로
감히 
너의 꿈을 모욕하지 말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알프레드 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