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r></p><p><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www.youtube.com/embed/b62WydDF_zQ"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p><p><br></p><p><br></p><p><br></p><p><u>* 진화론을 창조론 보다 조금이나마 더 신뢰하지 않으시는 분에게는 조금 거북한 글이 될지도 모르니 유념하시길 바랍니다.</u></p><p><br></p><p><br></p><p><br></p><p><br></p><p>혹시나 톨킨의 세계관을 모르시는 분들은 먼저 이 링크를 참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p><p><b>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95419&s_no=95419&kind=search&search_table_name=bestofbest&page=1&keyfield=subject&keyword=%BC%BC%B0%E8%B0%FC</b></p><p><br></p><p><br></p><p>반지의 제왕이나 호빗에서 다양한 종족들을 창조한 톨킨, 그분의 센스는 정말 지금와서도 높게 사서 영화화 되는거겠지만</p><p>글쎄요. </p><p><br></p><p>톨킨의 총체적인 세계관 실마릴리온, 이것의 내용은 독창적이지만 단순하게 보면 </p><p>명칭만 다를뿐 그리스 신화와 크게 형식이 다르지 않다고 봐요.</p><p><br></p><p>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집필했을 1900년대 초인 그 당시에도 어느정도 과학에 교양지식만 있었으면 짐작했을 현대와 미래의 진리가 될 진화설에 맞지 않는 허구적인 이야기라고 여겼던 출판사의 입장이 있었겠죠. </p><p><br></p><p>그래서 출판사에서도 창조신화보다는 독자의 호기심을 끌어당길 수 있는 판타지의 매력이 가득한 호빗과 반지의 제왕을 쓰라고 했던게 아닐까요.</p><p><br></p><p>먼 옛날에야 신화적인것을 진심으로 믿는게 가능했지만 현대에는 현대의 특정 종교들을 신봉하게 되어서 그런 개인이 만든 창조설에 관심을 둘만한 사람은 없었을 거에요.</p><p><br></p><p>게다가 지금까지 환상소설이 형이상학적인 것을 믿든 안믿든 전세계인들에게 흥하는 이유는 그냥 새로움과 재미, 흥미를 위해서 아니겠어요?</p><p><br></p><p>그가 쓴 실마릴리온은 엄청나고 대단한 배경스토리 임에는 분명하나 호빗과 반지의제왕이 이렇게 흥할 수 있도록 감각적이고 리얼한 묘사가 돋보이는 글을 쓰기 위한 톨킨 자기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었던 배경설정이 아니었을까 하네요.</p><p><br></p><p>책 그대로 접한다면 대중들이 공감하고 재미를 느끼며 이해하기 어려운 배경설정임에는 분명하니까요.</p><p><br></p><p>어쩌면 그가 수십년간 굉장한세계관을 창조했지만 다 쓰이지 못한게 아쉬운게 아니라 오히려 공들여쓴 수많은 세계관 그중에서도 반지의 제왕과 호빗이 쓰인것이 다행으로 볼수 있지 않을까요?</p><p><br></p><p>지금와서도 톨킨의 세계관이 수많은 판타지 작가들에게 근원적인 영향을 미쳐서 죄다 아류쯤으로 보이게끔 하는건 정말 '근대 판타지계의 대부'라는 명칭외에는 생각이 나질 않을 정도이기 때문이죠.</p><p></p><p><br></p><p><br></p><p><br></p><p></p><p>한 가지 또 얘기하자면 톨킨과 나니아 시리즈를 쓴 C.S 루이스가 크리스찬이라 너무 성경과 신화적인 내용이 담겨있는건 </p><p>아쉽지만 오히려 크리스찬이 아니었다면 그런 대단한 판타지 소설들과 세계관을</p><p>만들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드네요. </p>
http://justwanttofly.tistory.com/
이후의 요약 만화는 여기 있습니다.
달콤한 우정
아름다운 이성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얼굴을 보고 싶거든 정면으로 당당하게 보고
옆에서 엿보지 마라.
성철 스님의 주례사 
오늘 두 분이 좋은 마음으로 이렇게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결혼하기를 원해놓고 살면서는 아이고 괜히 결혼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할 걸 후회하는 마음을 냅니다. 
이 결혼 할 때 마음이 어떠냐? 선도 많이 보고 사귀기도 하면서 
돈은 얼마나 있나?, 학벌은 어떻나? 성질은 어떻나? 건강은 어떻나? 
이렇게 다 따지고 이리 저리 고릅니다. 
손해 볼 마음이 논꼽 만큼도 없습니다. 
이렇게 골랐다는 것은 덕보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덕보겠다는 마음이 살다보면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아내는 30%주고 70% 덕보자고 하고 남편도 30%주고 70% 
덕보자고 합니다. 
둘이 같이 살며 70%를 받으려고 하는데 실제로는 30%밖에 못 받으니까 
살다보면 십중팔구는 결혼을 괜히 했나, 속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덕보려는 마음이 없으면 어떨까요? 
아이고 내가 저분을 좀 도와줘야지, 저분 건강이 안 좋으니까 내가 평생 
보살펴 줘야겠다. 저분 경제가 어려우니 내가 뒷바라지해 줘야겠다. 
아이고 저분 성격이 저렇게 괄괄하니까 내가 껴안아서 편안하게 
해 줘야겠다. 
이렇게 베풀어 줘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면 길가는 사람 
아무하고 결혼해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덕보겠다는 생각으로 고르면 백 명중에 고르고 고르고 해도 
막상 고르고 보면 제일 엉뚱한 것을 고르게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부터 덕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 
내가 아내에게 내가 남편에게 덕 봤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 줘야겠다고만 
다짐하면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제가 말로 부조를 하니까 두 분이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매일 밤마다 반복되는 그리고 번복되는 어제의 각오는 잊은 채 
시시한 욕구를 채우려고 너 스스로와 했던 약속을 기만하고 모욕하고 비웃었지.
굳은 다짐으로 쓰여졌던 약속의 증서는 휴지조각으로 버려지고 또다시 내일을 외치며 도대체 언제쯤 관둘지 모르는 그 공허를 외치며 스스로에 대한 자기혐오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애써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거적으로 덮어놓고선
남이 쌓아올린 탑을 남들에게 뽐내는 역겨운 대리만족을 넘어, 마치 그 주인이라도 된 양 허세를 부리는구나.
부끄러움은 잊은지 오래- 오히려 민망할 정도로 당당하다.
검은 밀물은 매섭게 밀려드는데 모래성은 높아져만 간다.
꿈은 화려하기 그지 없는데 어째서 시궁창에서 한심한 꼴로 허우적대는가.
그래놓고 후에 가서 이상의 날개는 현실에 의해 꺾이어졌다는 되지 않는 감상을 늘어놓을 것인가.
시간보다 빠르게 달려야 하는데 어째서 뒷걸음질만 치는가 - 바로 뒤엔 절벽있는데
지금 네가 즐기는 그 쾌락이 죄 많은 너의 가슴을 찢는 고통으로-
그리고 수십배는 더 고통스러울 죄 없는 어머니의 소리없는 오열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면서 어째서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으로 그렇게 퇴보를 반복하는 것인가. 
.
.
.
들어라.
하루의 절반을
눈물로 지워본 적이 없는 이들아.
또한
들어라.
노력없는 희망만큼이나 
또 절망적인 것은 없음을 아직 모르는 이들아.
언젠가는 가장 비참하게 찢길 오만과
지독한 비린내를 풍기는 나태로 찌들어
이제는
끝없이 내일만을 되뇌이는
그 검은 입으로
감히 
너의 꿈을 모욕하지 말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알프레드 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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