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가 어떤 특정한 대립구도를 설정하고 거기서 나온 업무 결과를 통해 성과를 얻으면 진급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갈라먹기 하는 시스템.
이 구도 속에 참여함으로써 소속감 동질감 연대감 등을 느끼도록 해주는 것이 어떤 체계를 구조화한 이가 정치적으로 목적하는 바였을 거라고 생각함.
그리고 드라마를 연출하고 주도하여 성과를 얻는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는 체계에 대한 무한 긍정에서 비롯한 사회적인 능력치가 필요함.
이것은 일종의 원시적인 정치적 뼈대라고 생각함. 사람들은 이러한 구조 속에 특정 정치적인 입장을 가지게 됨.
문제는 그것이 실체를 가지느냐 하는 것임.
이것은 간단하게는 왕따나 이지매랑 비슷한 구도 같습니다. 소위 매갈이라는 집단도 그들이 적대시하는 구도와 대상이 과장되었다는 점에서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함.
박정희시절에서 부터 최근까지는 간첩이라는 허상을 근거로 하여 참여에 주도한 이들이 특정 인물을 정치적으로 매장하며 일생동안 영달을 누릴수 있었음. 피해자는 사형당한 이들에서 부터 일생이 망가진 사람까지 다양함. 제 입장에서 국제시장이라는 영화가 주는 이만하면 잘 살았다는 메시지를 수용할 수 없는 이유는 당시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에 참여함으로써 그 체계를 긍정하는 것이 그러한 체계가 구조적으로 만들 수 밖에 없는 희생자들을 외면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며 이 체계가 정당한가에 대한 의문을 '살아내었음'을 근거로하여 불식시키기 때문임. 그 영화는 박근혜에게 찍힌 cj가 변명처럼 만든 영화라고 생각함.
박정희 시절 설정된 구도는 남북대립을 바탕으로 한 '반공'이었으며, 근거없이 생사람 간첩으로 몰아서 이 시스템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진급이나 포상금같은 성과를 지급함. 공직은 낙하산을 통해서 참여했으며 언론 역시 여기 참여하여 성과를 나눌수 있었음. 그리고 반대하면 체벌이 가해졌었음.
이 구조는 최근까지 이어졌었음. 채용비리는 이 구조를 유지하고 성과를 나눠먹는 주요한 수단이었음.
여기에는 또한 실무자로서 참여함 이들은 수사관과 검사 판사. 그리고 이를 보도하는 언론. 그리고 낙하산 공직자와 채용비리로 임명된 이들임.
정부입장에서는 대중들도 미약하게나마 이 상황에 참여하며, 최소한 이 시스템을 긍정할 수 밖에 없도록 해주는 말단 조직이 필요함. 물론 여기도 보상이 주어짐.
그것이 자유총연맹이나 바르살기 운동본부 같은 관변단체에 대한 예산이라고 봄.
구청에서 최근 감사를 하도록 규정을 바꾸었지만 실제로는 예산을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을 안줌.
여전히 이 조직체들은 사법부 언론 관변 단체 속에서 살아있음.
이게 제가 살아온 나라라고 생각하면 존재자체가 역겹지만 제가 공무원이나 수사관을 하고 있었거나 사법시험에 합격하여서 법관의 위치에 있었다면 저들처럼 행하지 않았을 자신은 없음.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미시적인 영역에서의 파시즘과 이를 통한 연대감이라고 생각함.
군대나 학교, 동문, 지역모임 같은 곳에서 행하는 소위 군기잡는 행동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