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직장 동료 Y에게 들은 이야기다.</p> <p> <br></p> <p>몇년 전, 큰 태풍이 왔던 날 밤.</p> <p> <br></p> <p>Y는 출장에서 돌아오던 길, 침수된 도로를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었다.</p> <p> <br></p> <p> <br></p> <p> <br></p> <p>시간은 자정 근처.</p> <p> <br></p> <p>저녁 지날 무렵부터 호우경보가 내린 상태였기에, 그 무렵에는 다른 차도 거의 없었다.</p> <p> <br></p> <p>그저 수십미터 간격으로 놓인 가로등 불빛만 따라갈 뿐, 시야는 최악이었다.</p> <p> <br></p> <p> <br></p> <p> <br></p> <p>도로는 점점 불어나는 물에 잠겨가고 있었다.</p> <p> <br></p> <p>그럼에도 Y는 어떻게든 쏟아지는 빗속에서, 와이퍼를 최대한 빠르게 켠 채 필사적으로 달려갔다.</p> <p> <br></p> <p>하지만 마침내 더는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 와버렸다.</p> <p> <br></p> <p> <br></p> <p> <br></p> <p>창을 열고 차 아랫쪽을 살피니, 타이어가 거의 물에 잠길 수준이 되어, 문틈새로 물이 서서히 새어들어 오고 있었다.</p> <p> <br></p> <p>더는 안되겠다 싶어서, Y는 자신이 가입한 자동차 보험 회사에 전화해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p> <p> <br></p> <p>분명 특약 중 "집중 호우 상황에서의 구조" 관련 조항이 있었으니까.</p> <p> <br></p> <p> <br></p> <p> <br></p> <p>실제로 이런 걸 부르는 건 처음이라 좀 긴장하며 전화를 했는데,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보험사 측에서는 바로 대응에 나섰다.</p> <p> <br></p> <p>정중하게 사정을 설명하자, 곧바로 구조 팀을 파견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p> <p> <br></p> <p>Y는 자신이 현재 있는 위치를 상세하게 전한 뒤, [부탁드리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p> <p> <br></p> <p> <br></p> <p> <br></p> <p>비는 계속 쏟아지고, 바람도 요란하다.</p> <p> <br></p> <p>밖은 어두운데, 그저 불안할 따름이다.</p> <p> <br></p> <p>빨리 안 오려나, 하면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사이드 미러에 뒤에서 희미하게 불빛이 다가오는 게 보이더란다.</p> <p> <br></p> <p> <br></p> <p> <br></p> <p>겨우 구조가 왔구나 싶어, Y는 안심했다.</p> <p> <br></p> <p>소형 트럭 같은 차가 Y의 차 뒤에 딱 멈추더니, 우비를 입은 스태프가 나타났다.</p> <p> <br></p> <p>창문을 콩콩 두드리기에 살짝 열자, [괜찮습니까?] 하는 질문이 날아왔다.</p> <p> <br></p> <p> <br></p> <p> <br></p> <p>생각보다 더 젊은, 아직 청년 같은 남자였지만, Y에게는 구세주처럼 보였다.</p> <p> <br></p> <p>[빨리 오셨네요.]</p> <p> <br></p> <p>[나오실 수 있겠어요?]</p> <p> <br></p> <p> <br></p> <p> <br></p> <p>[수압 때문에 문이 안 열릴 거 같네요...]</p> <p> <br></p> <p>[그럼 창문으로 나오시죠. 제가 끌어드릴게요.]</p> <p> <br></p> <p>솜씨 좋은 스태프 덕분에, Y는 무사히 차에서 나왔다.</p> <p> <br></p> <p> <br></p> <p> <br></p> <p>스태프는 자신이 입은 것과 같은 우비를 Y에게 건네고, 뒤편 트럭까지 안내했다.</p> <p> <br></p> <p>Y는 구조 차량 조수석에 타고, 스태프가 건넨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p> <p> <br></p> <p>스태프는 Y의 차 엔진과 침수 상황을 조사해야 한다며,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했다.</p> <p> <br></p> <p> <br></p> <p> <br></p> <p>[아, 이건 서비스입니다. 몸이 좀 따뜻해질거에요.]</p> <p> <br></p> <p>스태프는 Y에게 보온병을 내밀고, 빗속으로 걸어나갔다.</p> <p> <br></p> <p>서비스 좋네, 하고 감탄하며, Y는 보온병 안에 든 것을 컵에 따랐다.</p> <p> <br></p> <p> <br></p> <p> <br></p> <p>홍차였다.</p> <p> <br></p> <p>따뜻하다.</p> <p> <br></p> <p>김과 함께 좋은 향기가 차 안 가득 퍼져나간다.</p> <p> <br></p> <p> <br></p> <p> <br></p> <p>뜨거운 걸 잘 못 먹는 탓에 야금야금 마시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p> <p> <br></p> <p>보험회사에서 걸려온 전화였다.</p> <p> <br></p> <p>구조가 잘 도착했나 확인하려고 전화했나 싶어, Y는 전화를 받았다.</p> <p> <br></p> <p> <br></p> <p> <br></p> <p>[아, Y씨 되시나요? A보험입니다. 지금 상황이 어떠신가요?]</p> <p> <br></p> <p>[아, 네, 감사하게도...]</p> <p> <br></p> <p>[실은 정말 죄송하게도, 지금 B길이 호우경보 때문에 출입통제 중입니다. Y씨가 계신 곳까지는 크게 우회해서 가야되서, 아마 스태프가 도착하기까지 앞으로 최소 40분 내지 50분은 걸릴 거 같아요.]</p> <p> <br></p> <p> <br></p> <p> <br></p> <p>[...네?]</p> <p> <br></p> <p>[여보세요?]</p> <p> <br></p> <p>[......]</p> <p> <br></p> <p> <br></p> <p> <br></p> <p>[여보세요, Y씨? 괜찮으신가요?]</p> <p> <br></p> <p>[저...]</p> <p> <br></p> <p>[네.]</p> <p> <br></p> <p> <br></p> <p> <br></p> <p>[저기, 스태프 분, 벌써 오셨는데요.]</p> <p> <br></p> <p>[네?]</p> <p> <br></p> <p>[10분 전쯤에... 남자분, 젊은분이요. 벌써 덕분에 차에서 나왔습니다.]</p> <p> <br></p> <p> <br></p> <p> <br></p> <p>[네? 정말이신가요?]</p> <p> <br></p> <p>[네. 지금, 홍차도 주셔서...]</p> <p> <br></p> <p>[홍차요?]</p> <p> <br></p> <p> <br></p> <p> <br></p> <p>대화가 영 이어지질 않는다.</p> <p> <br></p> <p>보험사 직원은 잇달아 질문을 해온다.</p> <p> <br></p> <p>그 구조 차량은 몇시쯤 왔는지, 어떤 차량인지, 어떤 인상착의에 몇명이 와서 어떻게 대응했는지.</p> <p> <br></p> <p> <br></p> <p> <br></p> <p>하나하나 대답하는 사이, 휴대폰을 쥔 Y의 손에는 식은땀이 배어갔다.</p> <p> <br></p> <p>불안 때문에 자신이 점점 빠르게 말하고 있는게 느껴졌다.</p> <p> <br></p> <p>보험사 직원은 [Y씨, 일단 진정하세요.] 라고 말한 뒤, 한 호흡 쉬고 이렇게 물었다.</p> <p> <br></p> <p> <br></p> <p> <br></p> <p>[저... 그 사람, 정말 저희 직원입니까?]</p> <p> <br></p> <p>보험사 직원의 말에 따르면, Y에게 온 남자는 복장이나 차량 모두, 자기네 회사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었다.</p> <p> <br></p> <p>통상 호우로 인한 구조를 나갈 때는 최소 두명 이상의 인원이 편성되는데다, 홍차 같은 걸 서비스로 준비하지도 않는다고.</p> <p> <br></p> <p> <br></p> <p> <br></p> <p>Y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p> <p> <br></p> <p>보험사 직원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p> <p> <br></p> <p>[그쪽으로 향하고 있는 구조 인력과 연락해서, 현황을 확인하는대로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p> <p> <br></p> <p> <br></p> <p> <br></p> <p>그리고는 Y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p> <p> <br></p> <p>Y는 잠시 멍하니 있었지만, 스스로가 처한 상황을 천천히 돌아보니 등골이 오싹해지더란다.</p> <p> <br></p> <p>앞에 보이는, Y의 차량 옆에서 뭔가 작업을 하고 있는 듯한, 우비를 입은 남자.</p> <p> <br></p> <p> <br></p> <p> <br></p> <p>저 남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p> <p> <br></p> <p>보험 회사 직원이 아니라면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이 소형 트럭은 대체 무엇일까.</p> <p> <br></p> <p>이 홍차는 왜 준걸까.</p> <p> <br></p> <p> <br></p> <p> <br></p> <p>여기서 도망을 쳐야할지, 아니면 가만히 기다려야 할지, Y는 혼란스러운 와중 열심히 생각했다.</p> <p> <br></p> <p>창밖을 보니 비는 아까 전보다는 약해져 있었다.</p> <p> <br></p> <p>만약 도망친다면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른다.</p> <p> <br></p> <p> <br></p> <p> <br></p> <p>하지만 어디로?</p> <p> <br></p> <p>게다가 도망치기에는 물이 불어나 최악인 상황이었다.</p> <p> <br></p> <p>문득 앞을 보니, 남자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p> <p> <br></p> <p> <br></p> <p> <br></p> <p>당황한 Y는 앞유리에 서린 김을 닦고 다시 살폈지만, 역시나 아까 전까지 보이던 우비 입은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p> <p> <br></p> <p>어디로 간걸까.</p> <p> <br></p> <p>Y는 결국 큰맘 먹고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p> <p> <br></p> <p> <br></p> <p> <br></p> <p>아까 남자가 준 우비를 입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p> <p> <br></p> <p>차에서 내리니 물은 무릎 밑까지 차 있었다.</p> <p> <br></p> <p>Y는 조심스레 소형 트럭 주변을 한바퀴 돌았다.</p> <p> <br></p> <p> <br></p> <p> <br></p> <p>남자와 마주치기라도 했다면 영락없이 비명을 질렀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p> <p> <br></p> <p>그 순간, 전화가 왔다.</p> <p> <br></p> <p>보험 회사였다.</p> <p> <br></p> <p> <br></p> <p> <br></p> <p>[아,Y씨 괜찮으신가요?]</p> <p> <br></p> <p>[네.]</p> <p> <br></p> <p>[10분 정도 있으면 구조 인력이 도착할 거 같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괜찮으신거죠?]</p> <p> <br></p> <p> <br></p> <p> <br></p> <p>[별로 괜찮지 않아요.]</p> <p> <br></p> <p>[저기, 혹시 몰라서 경찰에도 신고를 했습니다. 지금 그리로 가고 있을거에요.]</p> <p> <br></p> <p>[저는 여기 계속 있는게 좋을까요, 아니면 도망치는 게 나을까요?]</p> <p> <br></p> <p> <br></p> <p> <br></p> <p>[저, 사실은요...]</p> <p> <br></p> <p>[네.]</p> <p> <br></p> <p>[Y씨가 계신 그 근처, 교도소가 있다고 하거든요.]</p> <p> <br></p> <p> <br></p> <p> <br></p> <p>[네?]</p> <p> <br></p> <p>[그 주변에 평소 같으면 경찰차가 밤에 순찰도 돈다고 하는데, 오늘밤은 태풍이 와서 순찰도 쉬고 있던터라, 금방 출동하겠다고 하더라고요.]</p> <p> <br></p> <p>괜히 불안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전화는 끊겼다.</p> <p> <br></p> <p> <br></p> <p> <br></p> <p>전화는 끊겼지만, Y는 다시 차 안으로 돌아갈 생각도 할 수 없었다.</p> <p> <br></p> <p>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소형 트럭 주위를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p> <p> <br></p> <p>남자의 모습이 홀연히 사라진 것이 어쨌든 불안했으니까.</p> <p> <br></p> <p> <br></p> <p> <br></p> <p>그리고 Y가 딱 소형 트럭 바로 뒤까지 돌아간 순간, 갑자기 트럭의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났다.</p> <p> <br></p> <p>설마, 싶었지만, 쏟아지는 빗속에서 소형 트럭은 지축을 흔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p> <p> <br></p> <p>심지어 후진으로.</p> <p> <br></p> <p> <br></p> <p> <br></p> <p>Y는 황급히 물을 헤치며 뒤로 도망쳤다.</p> <p> <br></p> <p>하지만 소형 트럭은 아직 후진하고 있었다.</p> <p> <br></p> <p>무척 느린 속도로.</p> <p> <br></p> <p> <br></p> <p> <br></p> <p>Y가 바로 뒤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굳이, 느린 속도로 천천히 후진하며 다가오고 있었다.</p> <p> <br></p> <p>Y는 가벼운 패닉 상태에 빠진 채였다.</p> <p> <br></p> <p>도망쳐도 도망쳐도 트럭은 뒤에서 계속 따라온다.</p> <p> <br></p> <p> <br></p> <p> <br></p> <p>그때, 헤매던 Y의 눈에 이리로 다가오는 자동차 불빛이 들어왔다.</p> <p> <br></p> <p>Y는 그 불빛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렸다.</p> <p> <br></p> <p>이번에는 보험 회사의 로고가 찍힌 진짜 대형 트럭이었다.</p> <p> <br></p> <p> <br></p> <p> <br></p> <p>소형 트럭은 Y를 쫓아오던 걸 그만 두고, 전방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 버렸다.</p> <p> <br></p> <p>Y는 지친 나머지 빗속에 주저앉았고, 보험 회사 구조 인력에게 부축을 받았다.</p> <p> <br></p> <p>보험 회사 직원 두명도 Y를 덮치려 하던 소형 트럭을 분명히 봤다고 했다.</p> <p> <br></p> <p> <br></p> <p> <br></p> <p>Y의 차에는 아무 일 없었다고 한다.</p> <p> <br></p> <p>유리창이 깨지거나 문이 뜯어지거나, 시트를 칼로 난자하거나, 타이어가 모두 펑크가 나 있거나 앞유리에 손자국이 잔뜩 나 있거나 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p> <p> <br></p> <p>비로 인한 침수 피해만 있고, 인위적인 손상은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한다.</p> <p> <br></p> <p> <br></p> <p> <br></p> <p>그래서 더더욱, 그 남자가 빗속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p> <p> <br></p> <p>수수께끼의 홍차도, 독이나 수면제 같은 걸 탄 것도 아닌 그냥 홍차였다.</p> <p> <br></p> <p>Y는 경찰에게 남자의 인상착의를 알렸지만, 지명수배범 중 그런 사람은 없었고, 근처 교도소에서 그날 탈옥한 죄수 또한 없었다.</p> <p> <br></p> <p> <br></p> <p> <br></p> <p>그 근처는 사고가 있었다거나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도는 곳도 아니었다고 한다.</p> <p> <br></p> <p>그래서 정말, 그 청년이 누구고 무엇이 목적인지는 아무도 모른다.</p> <p> <br></p> <p>왜 갑자기 Y를 죽이기라도 하려는 듯 후진을 했는지도 수수께끼인 채다.</p> <p> <br></p> <p> <br></p> <p> <br></p> <p>단지 묘하게 기분 나쁜 사건이었던 때문인지, 그 후 보험 회사 쪽에서는 Y에서 계약 해지를 먼저 제안해 왔다고 한다.</p> <p> <br></p> <p>출처: <a target="_blank" href="https://vkepitaph.tistory.com/1429?category=348476">https://vkepitaph.tistory.com/1429?category=348476</a> [괴담의 중심 - VK's Epita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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