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r></div> <div><br></div> <div> ... 미사일 관련 연재글 질러놓은지가 어언 2주인데 정리도 못하는 차에 오지랖만 넓어서 여기저기 다 끼어들게됩니다 그려.</div> <div><br></div> <div>회사에서 늦게 퇴근하는 통에 졸음으로 정신줄을 반쯤 놓은 상태이니, 지금부터 시작할 지적질에 구멍이 뻥뻥 뚫려있을 것이 예상되는고로... 오타며 뭐며 중간 중간 삑사리 치는 것은 관대하게 봐주십사 부탁드립니다.</div> <div><br></div> <div> 먼저...</div> <div><br></div> <div> 1. 국제정치학적 이유와 2. 국내정치적 이유 이 2가지는 천안함 폭침 논쟁의 핵심에서 벗어나는 주제라 생각합니다.</div> <div><br></div> <div> 일단, 지난 수년 간 각 진영의 논리로 여론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NL 쓰레기들과 수구 우꼴들이 자기 진영의 논리를 앞세워 문제의 핵심이 아닌 부수적 문제까지 들쑤신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1항과 2항의 토픽들은 토론주제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div> <div><br></div> <div> 하지만, 일단 내놓으신 의견에 대해서 몇 가지 뱀발을 다는 우를 범해보자면.</div> <div><br></div> <div>로마옹이 지적한 1. 국제정치학적 이유에서 간과한 주요 사실이 하나 있어요. 그 것은 2008년 경 발생한 김정일의 건강이상과 김정은의 지도자 수업이었습니다.</div> <div><br></div> <div><a target="_blank" href="http://news.kbs.co.kr/news/view.do?ncd=3399020&ref=A">http://news.kbs.co.kr/news/view.do?ncd=3399020&ref=A</a></div> <div><br></div> <div>상기 보도 내용을 준용하자면, 김정일은 2008년 8월에 쓰러져, 11월에 회복한 후 2011년 12월 사망합니다.</div> <div>2008년은 김정일 건강이상설로 떠들썩할 때였으며, 후계자가 누구로 결정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던 시기입니다.</div> <div>김정일이 이 때 쓰러지지 않고, 그리고 후계구도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않았다면, 로마 아재 이야기가 맞을 수 있습니다.</div> <div>하지만 이미 이 때 쓰러졌고, 그 이후 천안함 폭침 있은 2010년 3월까지의 평화는 점차 협상에서 대남 기만으로 돌아선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div> <div><br></div> <div> 그리고 협상에 있어서도 북한은 다자회담보다 늘 통미봉남 상황 하에서 미국과의 직접 거래를 시도하는 것을 선호하던 쪽이었습니다. 2009년 1월은 대북 대화에 비협조적이던 부시행정부 대신 오바마가 들어온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는 군사행동을 통해, 통미봉남을 이룰 수 있는 계기라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div> <div><br></div> <div> 잘 아시다시피, 북한의 공산주의는 주체사상이라는 유교적 공산주의 형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 김정일 같은 윗대 지도자의 주요 발언들을 유훈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span style="font-size:9pt;"> 김정은이 언론에 공개되기 시작한 것이 대략 2008년 경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군부의 신임을 얻기위한 행동들을 합니다. 김정일 접권 과정에 칼기 폭파사건과 아웅산 폭파 사건이 있었습니다. 천안함-연평도로 이어지는 일련의 도발 그리고 장성택 처형까지. 전, 어린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기 위해, 김정일이 그린 빅 픽쳐라고 봅니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2. 국내 정치적인 이유는 양보할 수 있습니다. -_- 왜 천안함 보고서를 지방선거에 맞춰서 내야했는지 솔직히 이해 안갑니다.</span></div> <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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