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해준 이야기입니다. <div><br></div> <div>-</div> <div><br></div> <div>어쩌다보니 조금 규모있는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div> <div><br></div> <div>다만 입사한 날 무슨 내부 정리가 덜 되어있어서 팀이 애매모호하다고 했다.</div> <div>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병아리답게 얌전히 자리에 앉아서 어리버리하게 있다가 퇴근하고 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며칠 정도 반복되었을까.</div> <div><br></div> <div>어느날 출근하는 아침에 배가 살짝 아팠다.</div> <div>급똥인가 아닌가를 빠르게 판단한 후, </div> <div>급똥이 아닌 걸 확인한 나는 똥을 쌀거면 돈을 받고 싸겠다는 의지로 <span style="font-size:9pt;">빠르게 출근길에 올랐다.</span></div> <div><br></div> <div>출근하고 가방을 자리에 놓고 컴퓨터를 켜자마자 나는 똥이 급하지 않다는 사실을 최대한 어필하기 위해 여유부리며</div> <div>'화장실좀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옆자리 선배에게 또박또박 말한 후에 화장실을 뚜벅뚜벅 걸어갔다.</div> <div><br></div> <div>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빛의 속도로 바지를 내렸고 나는 낮은 탄식을 내뱉으며 돈 받고 똥을 싸는 기분을 만끽했다.</div> <div><br></div> <div>이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div> <div>휴지가 없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div> <div>진짜인가? 이 상황이 실화인가?</div> <div>입사한 지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일이란 말인가.</div> <div><br></div> <div>나는 화장실칸 옆에 붙어있는 점보롤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손을 집어넣고 하염없이 더듬어댔다.</div> <div>손에 닿는 휴지심의 단단한 감촉이 아무리 더듬어봐도 끝나지 않았고 좌절감을 더더욱 증폭시켰다.</div> <div><br></div> <div>아, 상황 판단을 빠르게 해야한다.</div> <div>화장실에 간다고 해놓고 너무 오래 시간을 끌면 변비라고 오해받거나</div> <div>아니면 화장실 가서 딴짓하는 불량한 신입사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div> <div><br></div> <div>다행히 우리 회사에는 비데가 있었다.</div> <div>세정 버튼을 꾸욱 눌러보았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세 번 정도 세정 버튼을 누르며 턱을 괴고 생각했다.</div> <div>이 정도의 물줄기로는 나의 깊은 곳 까지 깨끗하게 해결해주지 못할 거라고.</div> <div><br></div> <div>어디선가 본 것 처럼 양말을 쓸까.</div> <div>그런데 그러면 슬리퍼도 안 사다 놓은 회사에서 맨발로 하루를 견뎌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div> <div>그것보다 쓰레기통도 없는데 이 화장실에는.</div> <div><br></div> <div>누구한테 부탁할 사람이 없나.</div> <div>팀 배정이 안 되어서 번호 저장된 사람도 없었고, 동기는 여자였다.</div> <div>유일하게 저장되어있는 회사 사람은 나와 면접을 본 임원 정도 뿐이었다.</div> <div>이사님에게 휴지좀 가져다 줄 수 없냐고 물어볼 수는 없지 않은가.</div> <div><br></div> <div>화장실에 들어오는 누군가에게 휴지좀 가져다 달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div> <div>그 누가 되었든 내 선배일테고, 이 사실을 알게되면 나는 아무리 진급해도 똥쟁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서 </div> <div>퇴사할 때 까지 선후배 모두에게 영원히 놀림받을 것 같았다.</div> <div>가뜩이나 소심한 나에게 그건 정말 악몽이었다.</div> <div><br></div> <div>그러다 문득 위험한 아이디어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점보롤 케이스는 자물쇠로 잠겨있었다.</div> <div>나는 그 아래 구멍에 팔을 넣어 조심스럽게 휴지심 주변부를 더듬어보기 시작했다.</div> <div>나름 출근한다고 신경써서 짧게 깎은 손톱이 살짝 원망스러워졌다.</div> <div><br></div> <div>그러던 중 손톱에 틱 하고 걸리는 부분을 찾았다.</div> <div>나는 그 부분을 살살 긁어내면서 휴지심의 표면을 뜯어내기 시작했다.</div> <div><br></div> <div>유레카.</div> <div><br></div> <div>나는 길쭉한 황색의 휴지심 표면을 얻을 수 있었고, 그건 이 상황을 탈출할 수 있는 동앗줄로 보이는 착각도 들었다.</div> <div>하지만 이 걸로 닦기에는 너무 뻣뻣한 게 단점이었다.</div> <div>나는 이 종이를 하염없이 구기고 구기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div> <div><br></div> <div>어차피 비데의 세정기능으로 주변부는 세척을 했다.</div> <div>그렇다면 남은 건 골짜기 깊은 곳 밖에 없지 않은가.</div> <div><br></div> <div>나는 종이를 두 손으로 비벼가며 긴 끈 같은 형태로 만들기 시작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것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감각이었다.</div> <div><br></div> <div>아마도 언젠가 들어본 이야기에 나오던, 긴 새끼줄에 왔다갔다 하며 처리를 했다던 그런 이야기가 생각났다.</div> <div>아마 티팬티를 입을 때 이런 느낌이 들 것 같았다.</div> <div>영원히 입어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div> <div><br></div> <div>그 줄 한 번 지나가는 일은 정말 숭고한 작업이었다.</div> <div>그렇게 한 번으로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으나 문제는 또 한 번 있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여러분은 닦을 때 언제까지 닦는가.</div> <div>그 기준이 어디인가.</div> <div><br></div> <div>나같은 경우는 닦아낼 때 느껴지는 묘한 쾌감보다 나의 소중한 블랙홀이 느끼는 쓸림의 아픔이 더 커질 때 닦는 것을 그만둔다.</div> <div>그러면 만족스러운 닦음이 되고는 한다.</div> <div>그 지점을 나는 블랙홀의 만족지점이라고 부르고싶다.</div> <div><br></div> <div>이 동앗줄이 한 번 지나갔으나 블랙홀의 만족지점에 다다르지 못했다.</div> <div>나는 잠깐 고민했다.</div> <div>이 찝찝함을 안고 간다면 오늘 하루의 기분이 분명 안 좋을 것이다.</div> <div>그리고 동앗줄이 블랙홀에 닿은 곳은 한 쪽 면 뿐이지 않은가.</div> <div><br></div> <div>그렇다면.</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블랙홀은 만족했다.</div> <div><br></div> <div>이제 문제는 비데의 세정능력으로 인한 주변부에 튄 수분 정도 뿐이었다.</div> <div>몇 가지 방식을 고민해 보았다.</div> <div><br></div> <div>어차피 물이니까 그냥 옷 입고가도 괜찮지 않을까?</div> <div>좀 더 앉아서 말리고 가면 괜찮지 않을까?</div> <div><br></div> <div>어째서 그 비데에 건조기능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div> <div>그때까지만 해도 촌놈이었던 탓에 비데 사용이 익숙치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div> <div>그저 물이 나오니 낮은 탄식을 질러대기 바빴던 것이지.</div> <div><br></div> <div>고민하고 고민하던 끝에 뭔가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div> <div>머리에 번개가 내리치는 기분이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나는 속옷과 바지를 무릎 위까지 올리고 문을 살짝 열어 화장실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했다.</div> <div>그리고 재빠르게 옆칸으로 들어갔다.</div> <div><br></div> <div>그 곳에는 점보롤이 충만하게 있었다.</div> <div><br></div> <div>나는 무표정으로 점보롤을 바라보다가 평소보다 두뼘은 더 많이 끊어서 블랙홀을 닦고 또 닦았다.</div> <div>쓰라림의 고통이 쾌감을 앞지른 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상관 없었다.</div> <div><br></div> <div>젠장, 젠장, 미안해 블랙홀, 이렇게 보드라운데, 이렇게 보드라운 휴지가 있는데 저따위 것을. 저렇게 거친 것을.</div> <div>하고 속으로 사죄하며 닦고 또 닦아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