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사이비 교주 (8)
“참! 누나, 그 사람 연락처는 도대체 어떻게 찾은 거예요?”
나의 물음에 은경은 씨익 웃으며 답했다.
“그 사람 이름이 많이 특이하잖아?”
류휘류, 특이한 이름인가?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은경은 말을 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찾아봤는데, 내가 아는 사람이 맞더라.”
“뭐야…? 둘이 아는 사이였어요?”
은경은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 사람은 나를 모르고, 나도 직접 만난 건 오늘이 처음이야. 그 사람 작가거든.”
“작가요? 소설 쓰는?”
은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설은 아니고, 시나리오 작가. 그런데 요즘은 평론 쪽으로 더 많이 활동하는 것 같아.”
“누나 영화 쪽으로 관심이 많은가 봐요?”
나의 물음에 은경은 양쪽 어깨를 슬쩍 올렸다 내리며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뭐, 예전에 충무로로 출근 도장 찍던 적이 있거든.”
“오! 충무로! 거기서 무슨 일 했는데요?”
나도 모르게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고, 그런 나의 표정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은경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무슨 일 했는지 맞춰 봐. 맞추면 내가 소원 하나 들어줄게.”
은경의 말에 양 눈썹이 슬쩍 올라갔고, 그런 나를 보고 은경은 쯧쯧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이것 봐. 하여튼 머릿속에 음란한 생각만 가득하다니까.”
“어? 음란한 생각 안 했거든요.”
은경은 못 믿겠다는 표정을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고, 나는 그런 은경을 향해 말을 이었다.
“아무튼 소원 들어준다는 말, 정말이죠?”
“그럼! 대신 기회는 한 번뿐이고, 못 맞추면 네가 내 소원 들어주기. 어때?”
은경의 말에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 음란한 생각은 내가 아니라 누나가 하는 것 같은데요?”
“쳇, 뭐래?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해요, 콜!”
나의 대답과 동시에 은경의 표정이 급 진지하게 변했다.
응? 뭐지?
문득 준비된 미끼를 물어 버린 기분이 들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대신 나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난주 대형 서점을 지나다 책 이야기가 나왔고 그때 은경은 이런 말을 했었다.
책은 물론이고 무언가 읽는 일은 질색이라고 말이다.
질색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읽는 걸 싫어한다면, 쓰는 일 역시 좋아하지 않을 터.
즉, 대본이든, 평론이든, 쓰는 쪽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하나 더.
은경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은 걸 본 적이 있는데, 사진 속 구도를 잡거나 인물이 돋보이게 하는 감각이 그리 좋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촬영이나 편집 쪽도 아니다.
게다가 은경의 우월한 기럭지와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들지 않은 미모를 고려한다면, 이건 사실 그리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인 셈이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누나 배우 지망생이었죠?”
나의 대답에 은경의 입가에 웃음이 퍼졌다.
“땡! 나 소원 하나 적립했다?”
“헐… 그럼 뭔대요?”
“영화사 홍포팀에서 일한 적이 있어. 대학 졸업하고 한 3년 정도.”
은경은 두 눈을 찡긋하며 말을 이었다.
“혹시 실물로 보고 싶은 배우 있으면 나한테 말만 해. 내부 시사회 티켓 정도는 아직 구할 수 있으니까.”
그때였다.
“주문하신 모듬 어묵탕 나왔습니다.”
식당 종업원은 커다란 냄비를 테이블 중앙 인덕션 위에 올렸고, 인덕션 스위치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요리는 다 되었으니까 바로 드시면 되고요, 인덕션 온도는 1 또는 2에 맞추시면 됩니다.”
냄비 뚜껑을 열자 뽀얀 김과 함께 짭짤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주문할 때 요청한 대로 어묵은 한입 크기로 먹기 좋게 잘라져 있었다.
나는 앞접시 하나를 가득 채워 은경에게 내밀었고, 은경은 받은 접시를 바로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호로록 국물을 마시더니 두 눈을 질근 감은 채 말했다.
“크—! 이거 엄청 시원하다. 정말 좋아.”
은경의 말대로 칼칼하면서도 감질맛이 우러나온 국물이 일품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어묵탕을 안주 삼아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셨고, 세 번 주전자를 채우자 750cc 짜리 사케 팩은 이내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세 번째로 채운 주전자까지 비웠을 때였다.
은경은 발그래 술기운이 오른 얼굴로 짧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어제 저녁 늦게 연락이 왔어.”
“누구한테요?”
“…… 작은 이모한테….”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은경은 테이블 언저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다물고 있었고, 나는 머릿속으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생각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나는 빈 사케 팩을 들어 은경의 빈 잔 위에 기울였지만 몇 방울 나오지 않는다.
“음… 술을 하나 더 시킬까요?”
나의 물음에 은경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만 마시자. 너 내일 출근해야 하잖아.”
은경의 말이 맞다. 월요일인 내일 나는 출근을 한다.
하지만 은경은 아니다. 목요일부터 오늘 오전까지 근무를 했고, 내일부터 월, 화, 수, 이렇게 사흘을 쉰다.
나는 테이블 옆을 지나는 직원을 불렀다.
“사장님, 여기 참이슬 하나 주세요. 잔도 소주 잔으로 새로 주시고요.”
그리고 고개를 돌려 은경에게 말했다.
“나는 한 잔만 먹을게요. 나머지는 누나가 다 마셔요.”
은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오늘 내 원룸에서 자고 가.”
“혹시 그게 아까 내기에서 적립한 소원인가요?”
나의 물음에 은경은 헛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에이, 그럴 리가. 그런데 내일 출근하려면 몇 시에 일어나야 해?”
신도림에서 인천까지 가는 광역버스가 있다.
“지하철로 신도림 역까지 가야 하니까… 음… 늦어도 6시 반에는 나가야 할 거예요.”
주문한 소주가 도착했고, 나는 은경의 잔에 소주를 따라 주었다.
그렇게 둘이 소주 한 병을 비우는 동안 은경은 이모에게 연락이 왔다는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고, 나 역시 묻지 않았다.
술자리를 파한 후 우리는 은경의 원룸으로 왔다.
샤워를 하고 두 번의 사랑을 나눈 후 우리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침대가 작은 탓에 나는 모로 누워 그녀를 백허그한 자세로 눈을 감았다.
은경의 규칙적인 숨소리 덕분에 기분 좋게 잠이 들기 직전이었다.
“자?”
은경의 목소리에 나는 눈을 떴고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속삭였다.
“아직 안 자요.”
대답 대신 은경의 한숨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고, 침묵을 깬 사람은 은경이 아닌 나였다.
“아까 이모한테 연락왔다는 거, 그거 때문이죠?”
은경은 가족과 연을 끊고 살고 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자신의 언니와는 가끔씩 연락을 주고 받는다는 점, 하지만 어머니를 포함한 외가 어른들과는 모든 연락을 차단하고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엄마가 아프대….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은경은 말을 이었다.
“엄마가 나를 만나고 싶어한대.”
나는 이불 안으로 오른팔을 넣어 은경의 팔뚝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한 듯 은경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은경에게 물었다.
“누나는 어떻게 하고 싶어요? 만나고 싶어요?”
“그걸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럼 만나지 마세요.”
“뭐야? 너무 쉽게 말하는 거 아니야?”
“쉽게 말하는 거 아닌데요.”
은경은 몸을 돌려 나를 향해 누웠고, 어둠 속 그녀의 커다란 두 눈이 나를 응시했다.
“그럼 왜 만나지 말라는 건데?”
“알잖아요. 누나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할 거라는 거.”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지금까지 내가 들은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누나 어머니는 누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실 분은 아닌 것 같아요.”
은경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맞아. 그렇긴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음… 이건 내 생각인데…….”
나는 단어를 고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만약에 사과를 할 마음이 있었다면… 그리고 어머니 상태가 아주 나쁜 게 아니라면… 아마 본인이 직접 연락을 하지 않았을까요? 이모가 아니라.”
“아…!”
“그래도 누나는 만나고 싶은 거죠?”
“글쎄… 나도 그걸 잘 모르겠어.”
“만약 만나고 싶지 않았다면 나에게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겠죠.”
나의 말에 은경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듣고 보니 그렇네.”
“만나세요.”
은경은 말없이 나를 응시했고, 잠시 후 시선을 내려 나의 입가에 자신의 이마를 툭 기대며 말했다.
“무서워….”
뭐가 무섭다는 건지 알 것 같다.
어머니와 자신의 언니에게 다시 상처를 받는 거 말이다.
“내가 같이 가줄까요?”
은경은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둠 속 은경의 커다란 두 눈이 반짝였다.
“그래 줄 수 있어?”
나는 오른손을 은경의 등 뒤로 넘겨 그녀의 맨살을 위 아래로 천천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요. 날짜 정해지면 알려주세요.”
“고마워. 그리고….”
은경은 나를 응시한 채 말을 이었다.
“나 부탁이 하나 더 있는데….”
“뭔대요?”
“우리 엄마 만날 때 말이야… 자기를…… 결혼할 사람이라고 소개해도 괜찮을까?”
머릿속에 가장 먼저 스친 생각은 ‘굳이 왜?’ 였다.
그런 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은경이 말했다.
“이유는 묻지 말고.”
“흠… 그 이유는 안 묻는 대신, 다른 거 물어 봐도 돼요?”
은경은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고, 나는 입가에 슬쩍 웃음을 걸어 놓으며 입을 열었다.
“아까 저녁 먹을 때 소원 들어주기 내기한 거, 이거 때문이었죠?”
나의 물음에 은경 역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 김영식 씨, 언제부터 이렇게 눈치가 좋아진 거야?”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게요. 누구랑 한 달 가까이 지내다 보니까, 나도 덩달아 촉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결혼할 사람이라고 소개해도 돼, 안돼?”
“내기에 졌는데 시키는 대로 해야지, 어쩌겠어요?”
은경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나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은경은 다시 벽을 향해 몸을 돌렸고, 나는 이불 안으로 팔을 넣어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손 좀 줘 봐요.”
나의 말에 은경의 왼손이 나의 오른손을 잡았고, 나는 그녀의 손에 깍지를 끼며 말했다.
“누나도 손가락이 많이 가늘은 편이에요.”
어둠 속 은경이 목소리가 돌아왔다.
“누나도? 나 말고 또 누구 손이 이렇게 가는데?”
“있어요. 손가락이 많이 가는 사람.”
* * *
시간은 흘러 한 주가 지났고, 그렇게 다시 주말이 되었다.
그 사이 은경에게 연락이 왔다.
월요일 저녁에 시간을 잡았다고 말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이 수원에 있어서 퇴근 후 인천종합터미널에서 은경을 만나 같이 출발하는 걸로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토요일 오전인 지금.
나는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석륜도로 향하는 배에 오르는 중이었다.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