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분립과는 조금 다른 성질이지만
정부 - 언론 - 국민
이 세가지는 민주주의 정치에서 상호유기적이며 견제의 책임, 소통의 의무, 주도적 권리들을 동시에 지닙니다.
민주주의 원칙을 공고히하기 위해선 정부와 국민, 이분법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필히 언론이 가진 정보의 힘으로 정당한 논리와 신념으로 정부를 비판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반대로 언론이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취재가 정부의 정책에 피드백과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경우도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한 까닭은 언론이 시대상에 부합하는 절대적 가치로써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지 못한 원인도 포함되는게 아닐까요.
더욱이 이미 정부는 국민들을 사용이 아닌 이용하는 방식을 고수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죠.
휴전 중이라는 무의식적인 잠재위기상황 등 정부의 힘이 거북할정도로 강한 이유는 다방면에 필연적으로 존재합니다.
거기다 지형적으로 좁고 닫힌 특색과 장단점을 지닌 그놈의 단일민족 유대감 등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우리' 나라는 다수의 개인부터 집단까지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이 타락에 익숙해져 있는건 확실합니다.
기업들도 뒤가구려 정부와 결탁하고 국민들은 사회로부터 그런 분위기와 시국양상에 휩쓸려버리기도 합니다.
국민들의 평균지능이 뛰어나다는 이점이 이제는 사회구조의 혁신에 집중되어
껍떼기뿐인 민주주의에 만족하는게 아닌 진실된 정치민주화를 유지하고
공정한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만 많은 숙제가 남아있습니다.
또한 저열하고 별다른 의미없는 오락거리로 대중의 시선과 관심은 쏠려버리기도 하고
예술과 문학을 논할 자리는 외면당하여 대중의 의식수준마저 정체 혹은 퇴화합니다.
섣불리 글을 쓰다보니 점점 뻔한내용에 흐름의 결착도 막연해집니다만 이런 혼란속에서도 드는 확신은
저널리즘을 넘어서 온라인으로 행하는 시민저널리즘이 현실의 민주화를 위한 첨병 중 선두가 되리라는 겁니다.
아쉽지만 무언가 실질적으로 속시원한 해결책을 토로하기엔
절대적 가치로 믿었지만 인간의 본성에 부서지는 모습으로 회의감을 안겨줬던
이상뿐인 기저의 잔재들이 현실에 짓눌린 머릿속을 더욱 혼탁하게 하는 듯 합니다.
경제성장은 선진국들을 답습하여 이룩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심한 정치판국을 떨쳐버릴만한 귀감이 되는 몇몇의 청렴한 북유럽 국가들의 정재계 시스템을 본받으려면 많은 정재계인사들이
금전적 탐욕으로만 얻어낸 지위와 위신들은 스스로 버려야 할 판이니 그 모순을 극복할것인지
아니면 결국 노화와 죽음의 손아귀가 그들을 거둬갈때야 점진적으로 종결될 문제일지
한낱 미온적 삶에서의 방관자인 지금으로선 알수없군요.
wing it
달콤한 우정
아름다운 이성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얼굴을 보고 싶거든 정면으로 당당하게 보고
옆에서 엿보지 마라.
성철 스님의 주례사 
오늘 두 분이 좋은 마음으로 이렇게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결혼하기를 원해놓고 살면서는 아이고 괜히 결혼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할 걸 후회하는 마음을 냅니다. 
이 결혼 할 때 마음이 어떠냐? 선도 많이 보고 사귀기도 하면서 
돈은 얼마나 있나?, 학벌은 어떻나? 성질은 어떻나? 건강은 어떻나? 
이렇게 다 따지고 이리 저리 고릅니다. 
손해 볼 마음이 논꼽 만큼도 없습니다. 
이렇게 골랐다는 것은 덕보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덕보겠다는 마음이 살다보면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아내는 30%주고 70% 덕보자고 하고 남편도 30%주고 70% 
덕보자고 합니다. 
둘이 같이 살며 70%를 받으려고 하는데 실제로는 30%밖에 못 받으니까 
살다보면 십중팔구는 결혼을 괜히 했나, 속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덕보려는 마음이 없으면 어떨까요? 
아이고 내가 저분을 좀 도와줘야지, 저분 건강이 안 좋으니까 내가 평생 
보살펴 줘야겠다. 저분 경제가 어려우니 내가 뒷바라지해 줘야겠다. 
아이고 저분 성격이 저렇게 괄괄하니까 내가 껴안아서 편안하게 
해 줘야겠다. 
이렇게 베풀어 줘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면 길가는 사람 
아무하고 결혼해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덕보겠다는 생각으로 고르면 백 명중에 고르고 고르고 해도 
막상 고르고 보면 제일 엉뚱한 것을 고르게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부터 덕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 
내가 아내에게 내가 남편에게 덕 봤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 줘야겠다고만 
다짐하면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제가 말로 부조를 하니까 두 분이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매일 밤마다 반복되는 그리고 번복되는 어제의 각오는 잊은 채 
시시한 욕구를 채우려고 너 스스로와 했던 약속을 기만하고 모욕하고 비웃었지.
굳은 다짐으로 쓰여졌던 약속의 증서는 휴지조각으로 버려지고 또다시 내일을 외치며 도대체 언제쯤 관둘지 모르는 그 공허를 외치며 스스로에 대한 자기혐오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애써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거적으로 덮어놓고선
남이 쌓아올린 탑을 남들에게 뽐내는 역겨운 대리만족을 넘어, 마치 그 주인이라도 된 양 허세를 부리는구나.
부끄러움은 잊은지 오래- 오히려 민망할 정도로 당당하다.
검은 밀물은 매섭게 밀려드는데 모래성은 높아져만 간다.
꿈은 화려하기 그지 없는데 어째서 시궁창에서 한심한 꼴로 허우적대는가.
그래놓고 후에 가서 이상의 날개는 현실에 의해 꺾이어졌다는 되지 않는 감상을 늘어놓을 것인가.
시간보다 빠르게 달려야 하는데 어째서 뒷걸음질만 치는가 - 바로 뒤엔 절벽있는데
지금 네가 즐기는 그 쾌락이 죄 많은 너의 가슴을 찢는 고통으로-
그리고 수십배는 더 고통스러울 죄 없는 어머니의 소리없는 오열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면서 어째서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으로 그렇게 퇴보를 반복하는 것인가. 
.
.
.
들어라.
하루의 절반을
눈물로 지워본 적이 없는 이들아.
또한
들어라.
노력없는 희망만큼이나 
또 절망적인 것은 없음을 아직 모르는 이들아.
언젠가는 가장 비참하게 찢길 오만과
지독한 비린내를 풍기는 나태로 찌들어
이제는
끝없이 내일만을 되뇌이는
그 검은 입으로
감히 
너의 꿈을 모욕하지 말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알프레드 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