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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bestofbest_389107
    작성자 : 박준준준
    추천 : 137
    조회수 : 43473
    IP : 222.106.***.197
    댓글 : 21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8/03/28 00:23:17
    원글작성시간 : 2018/03/27 13:24:59
    http://todayhumor.com/?bestofbest_389107 모바일
    드림 오브 등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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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1.png





    아직 봄이 오려면 한참 남은 겨울, 경북의 어느 시골회사를 다닐 때였다.

    월급은 또 기약이 없고, 자취방 보일러 기름은 바닥 난지 오래. 
    식비도 간당간당한 마당에 목욕탕을 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기에 벌써 한 달이 넘게 몸에 물을 묻혀보지 못했다.
    남보다 조금 일찍 출근해 화장실에서 겨우 시리지 않은 정도의 물로 세면하는 것이 전부였다.

    온기라고는 1g도 없는 자취방은 냉골 그 자체였고, 오래된 전기장판이 있긴 했지만 뭐가 잘못된 건지 절반만 따듯해졌다. 그래서 하체를 뎁히다가 상체가 너무 추우면 다시 몸을 거꾸로 돌리길 반복하다보니 제대로 잠을 자는 건 무리였고, 결국 공벌레처럼 웅크린 채 장판 반쪽에 누워 자다보면 폐차장 압착기에 짓눌리는 악몽을 꾸기 일쑤였던.

    암튼 그런 시절이었다. 




    텅 빈 쌀통을 보며 마지막 남은 라면을 꺼내 물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쉬어 터진 김치라도 남아있지 않나 냉장고를 뒤적이다 우연히 냉동실 구석에서 검은색 비닐봉다리에 든 정체불명의 덩어리 세 개를 발견했다.

    열어보니 잔뜩 낀 얼음 사이로 뭔가 불그스레 어둑어둑한 부분이 군데군데 보였다.
    도대체 무엇일지 한참 기억을 더듬어보던 그때! 추석 때 쯤에 보너스 받아서 먹고 남았던 등심들이 겨우 떠올랐다!

    바보 같으니 냉장고에 등심을 넣어두고는 궁상을 떨었구나. 이 미련한 놈.

    기쁨을 감추지 못해 그 자리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다보니 어느새 물이 팔팔 끓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 오늘은 라면, 내일은 등심이라고 결심한다. 
    오늘은 라면, 내일은 등심.
    아직 나는 등심을 먹을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해동을 위해 등심을 냉장실에 넣어두고 돌아서는데 입가 근육이 뻐근하게 아프다. 
    너무 오랜만에 미소 지은 탓이리라.

    전기장판이 수명을 다 했는지 밤새 어디선가 찌직 찌직 하는 소리가 났지만 꺼버릴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얼어죽느냐 감전되어 죽느냐의 갈등 속에 또 새벽까지 잠을 설치고 말았다.

    출근 후 하루 종일 일은 손에 잡히질 않았고 대신 머릿속으로 완벽한 저녁식사 플랜을 짜기 시작했다. 책상 서랍 속의 동전을 다 그러모으니 겨우 소주 한 병과 깻잎 한 줌을 살 돈이 나왔다. 
    그리고 점심에 시켜먹고 남은 찬밥을 한 덩이 비닐봉지에 싸 품에 넣었다. 
    준비 완료! 

    퇴근시간까지가 천 시간 만 시간 같았다.



    소주 한 병과 깻잎이 든 봉다리를 흔들며 미친 듯이 자취방으로 달렸다. 
    하늘이 도왔는지 주인집 계단 밑 양파망에 검게 죽어있는 양파 몇 알을 발견했다. 
    속까지 완전히 썩진 않은 것 같아 고기와 함께 볶기 위해 몰래 두 알을 빼냈다. 
    자취방 미닫이문을 열고 뛰어들자마자 냉장고부터 벌컥 열었다.

    당연히 등심이는 그 자리에서 다소곳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오백 원 어치 깻잎과 아직 온전한 양파 속알맹이를 물에 깨끗이 씻고, 전자레인지에 밥을 돌리면서 후라이팬을 꺼내 행주로 한 번 훔친 후 가스불 불 위에 올린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적당히 해동되어 흐느적거리는 등심 봉지를 꺼냈다. 
    고맙다. 난 이제 행복할 준비가 다 되었어. 
    사랑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아.





    그렇게 냉장실에서 해동이 끝난 비닐봉지 안에는
    작년 설날에 어머니가 싸주신

    청국장 세 덩이가 
    날 향해 빙긋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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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과거의 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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