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embed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src="http://bgm.pilsu.net/130522111017.swf" wmode="null"></embed><br /><br /><br /><br />아주 옛날에, 그러니까 7년이나 전에, 집에 불이 났었다.<br />지금은 도서관에 가는 길이다.<br />잃어버린 게 있어서다.<br /><br />“어느 도서관이라도 좋아. 도서관에 들어서면 니은 행의 책꽂이로 향하렴. 그러면, 그리고 나면, 책장과 책장 사이에 어깨보다도 좁은 계단이 숨어있어. 머리를 콩! 부딪히지 않게 조심해야해? 그 도서관에는 세상의 모든 책이 다 있어. 상상도 못할 만큼 그렇게 많은 책이 있어. 그 어떤 책도. 그 도서관? 그 도서관은……….”<br /><br />집이 불에 홀라당 타고, 남은 것은 없었다. 불은 모든 것을 녹이고 태웠다.<br /><br />허름한 구식 주택이었다.<br /><br />할아버지, 할머니 때부터 살던 집이라, 대들보랑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었다.<br />물론 대들보도 기둥도 새까맣게 타서 재가 되었다. 지붕은 말 할 것도 없다.<br /><br />잿더미 속에서 벨벳, 그러니까 조금 누르스름한 흔적이 보이는 다홍색의 벨벳 앨범을 발견했는데,<br />그 앨범은 분명 책꽂이 가장 밑, 가장 커다란 칸에서 수십 년을 있었어도 있는 줄도 몰랐던,<br />아니 있는 둥 마는 둥 했던 그런 앨범이었다.<br /><br />앨범은 손가락 한 톨 정도의 귀퉁이와 몇 겹의 두툼한 페이지,<br />갈비뼈 같은 동그란 알루미늄 페이지 고정 틀만 남아있었다.<br />사진을 덮는 비닐은 열에 녹았는지, 주름처럼 쭈글쭈글 흉하게 비틀어져 있었다.<br /><br />사진들이 하나같이 귀퉁이만 남아 원형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br />퍼즐의 한 조각과 같은 그런, 그런 것들뿐이었다.<br /><br />별 생각 없이, 타고남아 삐죽하고 남아있는 사진을 훑다가 한 사진에서 손으로 쓴 글귀를 발견했다.<br />불에 타 끊어진 글귀는 「에게…」 였다. ~에게. 알 수 없었다.<br /><br />누구에게 라는 걸까.<br /><br />불이 난 것이 7년이나 지나서, 그 궁금한 ~에게라는 글을 발견한 것도 7년이나 지나서.<br />지금에서야, 혹시 그 도서관에는 앨범이 남아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br /><br />바람은 내 걸음을 마주하고 불었다. 여름 바람은 시원하면서도 포근했다.<br /><br />“죄송한데, 이곳 니은 행은 어느 쪽으로 가면 될까요?”<br /><br />속삭였다. 사서로 보이는 여자는 나를 보더니, 이유도 없이 미소 지었다.<br />사서의 가느다란 손가락 끝이 향하는 곳을 돌아보니, 정면으로 금방 천정에 걸려있는 니은 푯말이 보였다.<br /><br />푯말이 살살 흔들렸다.<br />여름 후텁지근한 풀냄새를 타고 그렇게나 흔들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br /><br />무심결에 물었다.<br /><br />“저곳에 지하로 통하는 작은, 그러니까 이렇게 어깨처럼 좁고 낮은 비밀 계단이 혹시 있을까요?”<br /><br />바보 같아서였을까. 사서는 대답이 없었다. 대답대신 그녀는 도서관의 유리문을 잠궜다.<br />유리문을 흔들어 단단히 단속한 그녀는 그리곤, 말없이 앞장서 니은 행의 책장 앞으로 걸었다.<br />어리둥절해 그녀를 바라만 보던 나를 그녀는 저만치서 손짓해 불렀다.<br /><br />책장들 틈으로 사라진 그녀를 따라 걸으니, 그리운 냄새가 떠다니고 있다는 걸 알았다.<br />나이를 먹고 있는 종이의 냄새였다. 그것은 괜히 품위가 있었다.<br />왠지 그리움이 느껴지는 건, 요즘 들어 책을 손에 쥐는 일이 줄어서 이리라, 혼자 생각을 했다.<br /><br />책장 사이 어디에도 사서는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며,<br />몰래몰래 “저기요.” 하고 부르자, 저기 밑에서 “여기요.”하는 목소리가 들렸다.<br /><br />“여기에요.”<br /><br />그녀는 책장 밑에 숨이었었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책장 밑 계단에 숨어 있었다.<br />내가 들어가기엔 힘겨워 보이는 아주 좁은 계단이었다.<br /><br />“몸을 옆으로, 이렇게! 이렇게! 하고 들어오세요.”<br /><br />그녀가 옆으로 도는 시늉을 하며 나를 이끌었다.<br />계단은 어두워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br />나보다 몸집이 한참이나 작은 그녀는 냉큼 저 밑까지 내려간 듯,<br />찰박찰박 조용한 발소리만 들려왔다.<br /><br />“불을 켤 때까지, 발치 조심하세요…. 할아버지.”<br /><br />더 밑으로 딛을 수 있는 계단이 없을 때까지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br />혹시 머리를 부딪칠까, 손을 머리 위로 뻗으니 휘휘 허공이 저어질 뿐, 만져지는 것은 없었다.<br /><br />어떻게 다가왔는지 모를 사서가 말했다.<br /><br />“죄송해요. 워낙 어두워서 불 켜는 곳을 못 찾겠어요.”<br />“그…… 죄송하지만, 그 전에 여기에 정말 세상의 모든 책이 다 있나요?”<br /><br />흠~ 하는 입 울림이 들렸다. 내 말이 너무 추상적이었을지 모른다.<br /><br />세상의 모든 책이라면, 글쎄, 초등학교 때 일기를 쓰던 얇은 노트도 있는, 그런 모든 것이라고,<br />나는 생각했었다. 설사 불에 타버린 책이라도, 이곳에는 있을 것만 같았다.<br /><br />물론 그럴 리 없겠지만, 나에게는 그런 쓸데없는 일을 할 만큼의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br /><br />세월과 주름, 흰머리와 나의 큰 아들, 작은 딸 그리고 예순일곱 이란 나이가 선사해준 시간이었다.<br />억지로 떠밀린 시간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그렇게 느껴지는 때도 있다.<br /><br />“찾으시는 책이 어떤 책이죠?”<br />“앨범인데요.”<br /><br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낼 때, 그러니까 정확히는 지갑 속의 사진 쪼가리를 꺼낼 때,<br />사서가 “아! 앨범!” 하고 짧게 환호하듯 소리쳤다.<br />신기하게도 사서의 외침과 거의 맞아 떨어지게 저기 저편으로 등불이 들어왔다.<br />환하진 않았지만, 이 까만 도서관에선 충분히 밝은 빛이었다.<br /><br />“저기 저곳일거예요. 할아버지.”<br /><br />사서는 할 일을 다 한 듯 보였다. 그녀의 도움을 만류하고 혼자 걸었다.<br />정말 세상의 모든 책이 다 있는 지도 몰랐다.<br />불빛은 가까운 듯 아주 멀었다.<br />저 멀리서 비추는 불빛에 어스름하게 주변의 책 제목들이 스쳤다.<br /><br />두서없는 책 제목들은 마치, 다른 도서관들과는 아주 다르게,</div> <div>가나다 순이 아닌, 시간 순으로 책을 정리해 놓은 것 같았다.<br />그 시간 순이란 것이 어떤 것이냐 설명하기엔 내 말주변이 너무 보잘 것 없다.<br /><br />차라리 보이는 대로 소리 내어 읽어 보자면, 잉태, 출생, 첫 말, 첫 걸음, 유치원, 국민학교, 중학교,<br />대학교, 첫 입맞춤, 첫 사랑, 첫 실연, 첫 술, 첫 담배, 첫 연애, 첫 밤………….<br /><br />한 시간이나 걸어서 도착한 등불 밑은 길고 넓기만 하던, 지나온 길에 비해 아늑하고, 또 아담했다.<br />기분 탓이다. 그래도 그 아늑함에 기대어, 책장을 등받이 삼아 천천히 앨범을 찾았다.<br /><br />누르스름한 기운이 남아있는 다홍색의 벨벳 앨범.<br />아주 특이한 그 재질을 찾는 것에 그리 오랜 시간을 허비한 것은 아니었다.<br /><br />「Since 1947」<br /><br />아아, 앨범의 머리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구나.<br />기억하지 못 했다. 책장을 기댄 채 자리에 앉았다.<br /><br />허벅지에 보기 편하도록 얹어 놓은 앨범은 퍽도 묵직했다.<br />엄지손가락을 비집어 앨범의 아무 곳이나 펼치니, 양 페이지로 가득 사진이 담겨 있었다.<br /><br />처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사진을 보니, 내가 찾던 그 앨범이 맞는 것 같았다.<br />불에 타버린 그 앨범이 이렇게 말끔하게 보존 되어 있다니.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 들었다.<br /><br />「에게…」<br /><br />에게, 쓰여 있는 그 배경의 하늘색을 쫓아 페이지를 한 장씩 넘겼다.<br />페이지를 넘길 적마다,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br /><br />그저 웃겼다.<br /><br />그 옛날 옆집 살던 옥이와 쭈뼛거리며 찍은 사진이 그랬다.<br />꽃다발을, 그러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장미 꽃다발을 들고 있는 나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도 그랬다.<br />바다를 배경으로 폼을 재고 있는 모습은 괜히 쑥스러웠다.<br />어느 술집에선가 담배를 물고 찍은 사진도 그랬다.<br />아내와 입을 맞추고 있는 사진이 여러 장 나왔다. 그건 흐뭇했다.<br />큰 아들의 돌잔치 사진은 그리웠다.<br />작은 딸의 결혼사진은 아쉬웠다.<br />손녀딸의 사진은 앙증맞았다.<br /><br />한 장씩 페이지를 앞으로 넘겼다. 한 장씩. 시간은 많았다.<br /><br />에게…를 찾는 것도 금방이었다.<br />조금 더 늦어도 괜찮을 것을.<br /><br />의외로 별 것도 아닌 사진이잖아.<br /><br />울퉁불퉁 못생긴 바위 암초들 위에 느긋하게 출렁이는 바다.<br />한가로운 구름도 찍혀있다. 귀퉁이에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라는 글귀가 적혀있고,<br />글귀 밑으론 어머니와 나. 아직 걸음도 못 땐 듯 다리가 짧고, 몸이 둥그런 나.<br />나는 그렇게 어머니에게 매달려 있었다.<br /><br />이런 것을 위해, 그렇게나 걸어 왔던가. 비닐 속에서 사진을 꺼내어 가까이 들고 봤다.<br />한참이나 사진을 보다, 그제서야 이 사진이 그토록 찾고 싶던 이유가 떠올라 사진을 뒤집었다.<br />그것은 하얀 바탕에 곱게 정성들여 쓰인 편지였다.<br /><br />「이건, 아들이 태어나고 1년 되는 날의 바다야. 그 바다 위에 노랗게 빛나는 건, 아들이 1년 동안 쬐던 햇님이고, 그 옆으로 푸르른 건 하늘이야.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건 아들의 1년을 기뻐하는 엄마랑, 그 가슴에 안긴 건 아들이야. 아들 사랑해. 돌잔치 못해줘서 미안해? 아들의 첫 돌을 기념하며.」<br /><br />사서가 따라 온 모양이었다.<br /><br />“찾아가시겠어요?”<br />“대여가 될까요?”<br />“대여라니요. 원래부터 할아버지의 사진인걸요.”<br /><br />그러고 보니, 빌려 가실래요? 가 아닌 찾아가시겠어요? 하고 물었다.<br />앨범을 두 손으로 들어보았더니, 역시나 묵직했다.<br />집까지 들고 가기엔 너무 힘겨울 것만 같았다.<br />그리고 걱정이었다.<br /><br />“아닙니다. 또 잃어버리면, 다시는 못 볼 거예요.”<br />“그렇지 않아요. 할아버지. 다시는 잊지 않으실 거예요.”<br /><br />아니다. 앨범은 너무 무거웠다.<br />사진 한 장만을 손에 들고 있어났다. <br /><br />“그러면 이 사진만 가져가도 될까요?”<br /><br />사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멀리 우리가 들어왔던 좁은 계단에서 밖의 불빛이 들이치고 있었다.<br />사서는 정중히 그리고 천천히 나와 그곳을 향해 걸었다.<br />걷는 동안, 내가 이 도서관을 어떻게 알았더라… 하는 생각뿐이었다.<br />확실치 않았지만 나는 이 도서관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 같다.<br /><br />아마도 내가 물었을 것이다.<br /><br />“아무 도서관이나 가면 어떻게 찾아? 이름이라도 알아야 찾아가지? 응? 엄마?”<br /><br />그 따뜻한 미소가 기억난다.<br />그 따뜻한 손길도 기억난다.<br />부서지며 쏟아지던 머리칼도.<br />가녀리던 손가락의 하얀색도.<br /><br />“이름 같은 거, 몰라도 찾아 갈 수 있어.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된단다. 그 곳은 우리 아들이랑 엄마만의 도서관이야.”<br /><br />너와 나의 도서관.<br />이름 따위 몰라도 찾아 올 수 있겠지?<br /><br /><br /><br /><br />-끝-<br />"</div>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