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꿈과 현실은 무섭게 닮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하나가 되려는 듯. 나는 꿈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완전히 하나가 되어 살려는 듯, 문득 생각에, 이것은 내 무의식이 꿈이란 자동차의 엑셀레이터를 밟고 저기 저편에 달려오는 현실로 달려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꿈속에 겨울이 생기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점점 더 현실과 꿈의 구분이 힘들었다.
나는 자주, 깜짝깜짝 놀래며, 열쇠를 확인했다.
나는 지금 꿈속인가, 현실 속인가.
그게 더 없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너에게 필요 받는 존재인가,
나는 지금 너에게 필요 없는 존재인가.
그것을 알지 못하는 순간이 너무 막막해서, 숨이 막힌다.
이제는 꿈속에서도, 현실에서도 눈을 뜰 때, 매번 죽을 고비를 넘긴다.
그래서 눈을 뜨면 옆자리를 더듬어 너부터 찾는다.
설사 내가 죽기 직전의 순간이라도, 나는 너부터 찾아봐야만 했다.
내가 꿈꾸는 이유가 오롯이 너란 사람 하나뿐인데, 그것을 확인하지 못한다면, 이 병에 맞서서 살아가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니가 아니면, 나는 꿈과 현실을 구별 할 수가 없다.
하늘에 빌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이상 나의 꿈을 빼앗지 말아주세요.
7
잠에서 깨었을 때. 나는 너와 나의 집에 있었고, 세상은 캄캄한 밤 속이었다. 밖에는 세상이 미쳐버린 것처럼 겨울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너는 나에게 달려들었다. 곧, 나는 너에 의해 칼을 빼앗겼다. 너는 필사적으로 내 손에서 칼을 빼앗았고, 내가 정신을 차리고 나니, 너는 칼을 바닥에 버리며, 나를 쓰다듬어 주었다. 꿈속에서 우성유전자 연쇄보존의 법칙이란 병에 걸린 나를, 너는 동정해주었다. 너라는 사람이 있는데, 왜 이런 몹쓸 병에 걸렸을까, 하며 가슴을 치는 니가, 나는 고맙기도, 또 가끔은 현실에서 내게 이 병을 준 니가 얄밉기도 하였다.
칼을 빼앗은 너는 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는 내가 못 지켜줄지도 몰라.”
너는 나를 바로 보다, 다시 안아주기도, 안아주다 훌쩍하고 울어버리기도 하였다. 이제는 지켜주지 못한다는 말이, 너의 눈물이 나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여기는 내 꿈속이야.
니가 나를 지키는 곳이 아니라, 내가 너를 지키는 곳이야.
“나, 암이래…. 죽는데….”
그럴 리가 없다. 현실에서도 암은 인류에 의해 정복되고 있는 병이다. 하물며 너는 꿈속이었고, 꿈속에서 만들어낸 니가 바보같이 암으로 죽는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꿈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어차피 의사들은 글러먹은 놈 천지다.
나는 니가 내 꿈에서 죽는 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때.
밖에서 천둥번개가 쳤다.
그 천둥번개는 마치 꿈이 내게 전하는 메시지와 같았다.
‘나는 이제 너의 지배를 받지 않아.’
라고 소리쳐 전하는 메시지와 같았다.
너는 거짓말처럼 무너져 버렸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이렇게 갑자기 아프고 죽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세상은 나에게 너무 가혹해.
너무해.
몇 개 없는 나의 삶을.
왜, 왜 빼앗아?
너를 향해 달려가는 순간, 나는 다시 잠에서 깨어났다.
8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주 잘 아는 문.
니가 살고 있는, 내가 필요하지 않는 니가 살고 있는 곳의 문.
밖은 꿈속처럼 천둥번개가 치고 있었고, 꿈속처럼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니가 나오질 않고, 너의 옆집의 남자가 시끄럽다고 나왔고, 그 남자를 무시한 채 계속 문을 두드리니, 너의 집에선 니가 아닌, 너의 새로운 남자가 나왔다.
나는 왜 문을 두드렸을까.
나는 왜 내가 필요치 않은 너의 집 문을 이리도 집요히, 잠에서 깨자마자, 두드렸을까.
나는 이유도 모르면서, 너부터 찾았다.
너의 남자는 나를 미친놈이라며 밀치고, 때리고, 밟으며, 내가 너의 집 앞에서 사라지길 강요했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 말을 해야만 하는 것 같았다. 그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한 번 만요. 지금 그 아이가 많이 아프거든요? 아니, 곧 아플 수도 있거든요? 암 일수도 있어요. 한 번만.”
한 번만 만나게 해주세요.
9
나는 너를 만나지 못했다.
너의 남자에 의해 나는 참 계집놈 답도록, 만신창이만 된 채, 너에게서, 너의 집에서, 물러나야했다.
나는 너를 다시 만나기 위해 잠들어야 했다.
니가 그토록 아프다면, 아플 거라면, 나는 너를 구해낼 방법이 하나,
확실치도 않은 방법이 하나, 떠올랐기 때문에, 너를 만나야 했다.
아마 이것은 너를 만나는 마지막이 될 것이다.
나는 다시 너를 꿈꾸기 위해 잠들었다.
10
꿈에서 눈을 떴을 때.
너와 나는 병실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보잘 것 없는 꿈의 주인이었고.
너는 아파하고 있는 너였다.
너는 너무 아파서인지, 눈을 뜰 생각이 없었고, 나는 너의 병실에서 목을 매고 있었다. 너의 잠든 모습이 보인다. 나를 망가트린 사람. 나를 살게 하는 사람.
내가 꿈을 만들어 온 이후.
나는 꿈을 현실과 닮게 하려 노력했지만, 가속력이 붙어버린 꿈은 언젠가부터 현실을 초월하기 시작했다. 꿈에서 백금 반지를 끼면, 나는 현실에서도 백금 반지를 끼우고, 꿈에서 겨울비가 쏟아지면, 현실에서도 겨울비가 쏟아졌다. 현실이 꿈을 쫓아가는, 이 비현실 같은 일과, 나의 꿈이 망가지는 일을, 나는 이상한 일로 받아들여선 안 되는 것 같다.
나는 아마, 운명을 보고 있었나보다.
어차피 너는,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내 것일 수가 없었나보다.
그 대신, 아내 너로 인해 잠시 더 살아갈 수 있는 대신, 나는 너에게 진 빚을 값기 위해서, 너의 죽음을 미리 봤었나보다.
하지만 나는 계집놈이라서, 열등한 유전자라서, 너의 남자에게 그 길을 막혀버렸다.
예전에는 꿈이 현실을 쫓아다녔지만, 아마 지금은 현실을 쫓아가고 있다고, 나는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그 일말의 행운과도 같은, 그 일말의 추측이 맞는 것이라면, 아마 나는, 너를 지워야 할 것 같다.
꿈을 멈추면, 혈실 속에 너는, 혹시나 암에 결려 죽을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너를 꿈꾸지 않기 위해,
어서 빨리,
이 꿈에서 죽어버리면,
이 꿈이 끝날 거라고,
그럴 거라고,
믿는다.
아아, 네가 아프지 않았다면,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났을 걸.
나는 목을 조이는 끈에 저항하지 않고, 내 몸을 맡겼다.
꿈속이나마, 나는 내가 죽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내 추측이 맞았다는 듯,
꿈속의 내가 죽어가자,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세상은 울부짖듯 지진을 치고, 세상은 끝나려는 듯, 암흑에 덮여간다.
니가 그 어둠에 잡아먹히는 것을 보며,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11
현실.
잠에서 깬 나는 이상하게도, 죽으려 하지 않고 있었고, 나만 홀로 남아있는 방에 누워, 통화를 하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너였다.
“나 암이래. 니 말이 맞았어.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니가 걱정해줘서 전화 해주는 거야. 초기라서, 비교적 간단한 수술 받으면, 곧 회복할 수 있을 거레………. 왜 대답이 없어?…………. 저기………고…고마.”
니가 고마워라고 할 것 같아서, 나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너에게 고마움 받고 싶지 않았다.
너를 살릴 이유가, 나는 있었는지 모르겠다.
잠에서 깨고 나니, 병실에서 인사하지 못한 니가 떠올라서, 나는 니가 원망스러웠다.
창밖을 내다보니, 밖에는 겨울비 대신, 천둥번개 대신,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겨울이라니. 세상은 나에게 너무나 가혹하구나.
나는 겨울도, 이제 다시는 너를 꿈에서 볼 수 없는 것도, 약지손가락의 백금반지도, 뭐도 전부 싫어졌다.
어차피, 언젠가 이 지긋지긋한 우성유전자 연쇄보존의 법칙에 의해 죽을 거라면.
죽기 전에 꿈속에 너를 만날 수 없다면.
나는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나았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맨 정신에, 밧줄을 매달았다.
동그란 밧줄 사이로, 어렴풋하나, 꿈결 같은 니가 보인다.
이제는 다 끝내고 싶다.
12
밧줄에 몸을 던지고 나니,
나는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하얀 눈의 벌판이 펼쳐진 곳에 서있었다.
눈이 끝도 없이 펼쳐진 그 가운데엔,
너와 나.
너는 나를 필요로 한다는 듯이, 너무도 따뜻하게 내게 안겨왔다.
너는 내가 사라져서 서운했다는 듯, 말했다.
“어디 갔었어. 나 버려놓고.”
나는 이제 더 이상 네가 아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이 나의 꿈속인지, 아니면 이제 나는 완전히 죽어서,
혹시나 죽을 때 운이 좋았어서, 너와 함께 할 수 있는 곳에 왔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너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꿈속도, 죽음 건너에 있는 곳도 아니야. 이제 얼마 시간이 없어. 나는 너를 치료해주고 싶어서 왔어. 비록 정말로 내가 너를 아프게 한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내가 준 병이니까, 내가 너를 고치고 싶어서, 그래서 잠깐 온 거야.”
너는 나를 바로 바라봤다.
나를 바로 바라본 너는 미소로, 상냥한 말로, 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끝없이 펼쳐진 그 벌판에 서서, 나는 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너는 말했다.
“나는 어차피 너의 꿈이지만, 비록… 너의 꿈이었지만,
나는 니가 너무 따뜻해서 행복했어.
나는 비록 너이지만, 너의 꿈이지만, 이 이야기는 분명이 맞는 이야기니까,
너는 내 말을 새겨들어야해.
세상에 남겨야 할 유전자는
예쁜 눈 같은 게 아니야.
늘씬한 몸매를 남기기 위한 것도 아니야.
더 똑똑해 지기 위한 것도 아니야.
너와 나와 우리의 눈은 진정 아름다운 것을 볼 줄 안다면, 그걸로 족해.
너와 나와 우리의 몸은 역경에 도망치지 않는 아주 약간의 강인함만 있다면, 그걸로 족해.
너와 나와 우리의 머리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족해.
그리고 이 간단하고 진실한 삶을 살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너와 나와 우리는
우리의 2세를 위해서,
정말로.
진짜로.
진실하게….
진실하고, 진실하게.
훌륭한 유전자를 남길 수 있다고.
나는 믿어.
그러니까 너도 믿어야해.
남을 위해서 너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나이고 너여서 나는 만족해.
세상은 너와 같은 사람들이 더 가득해야해.
너도 버리고, 너 이외의 사람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
너는 참 대단한 일을 했다고, 나는 생각해.
내가 너여서, 니가 무엇을 버렸는지, 나는 잘 알아.
너는 버려져야 할 유전자로 가득하지 않아.
정말이야.
이 말이, 너에게 치료가 되었으면 좋겠어.
고마워.
나는 너에 의해 죽지만, 너에 의해서 살게 된 거야.
마지막으로… 잘 있어.
나는 이제 지워질게.”
그렇게 말한 너는 멀어지기 시작하더니,
저기 눈의 벌판으로 하얗게 지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먼지처럼.
마치 바람처럼.
사라지는 너를 보며,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이제 나는 잠에서 깨고, 너를 보낸 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너를 보내고, 한참을 살아간다.
이제, 잠에서 깨어나도, 나는 나를 죽이려 애쓰지 않는다.
분명… 너의 덕이다.
니가 살리고 간 너는 잘 살고 있다.
아마, 시간이 흐르고 나면, 너는 나를 잊고,
당연히 모르는 내 꿈속에 너라는 존재도 잊혀 지겠지.
꿈속에 너를 지우면서까지 너를 살려낸 것이 가치가 있기를 바란다.
아마 너는 세상에 살아남아 마땅한 사람이겠지.
나는 꿈속의 니가 그립지만, 너를 그리도 가차 없이 지워버린 내가 아쉽지만,
니가 세상에 살아남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며,
후회하지 않으려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아직도 가끔 현실 속의 너를 훔쳐보러 가는 나를 용서하렴.
이제 내가 너를 꿈꾸는 방법을 모르니, 나는 니가 보고 싶을 때마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너는 나의 덕에 행복했다고 말하지만,
나도 내 안에서 너를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너를 보낸 아쉬움을 글로도, 말로도 표현 할 수가 없는 게 아쉽다.
잘 가.
나는 너를 대신해서 니가 전해준 생각을 남길게.
비록 누구에게도 선택 받고 싶지 않고,
그 누구를 다시는 선택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니가 전한 생각을 남겨서, 나 또한 남길게.
그러면 너도, 나도,
생각으로나마,
아직은,
이 세상에,
남아있을 이유가,
생기는 거겠지.
우리의 유전자는
예쁜 눈이나,
오뚝한 코나,
도톰한 입술 대신에
총명하고, 냉철한 두뇌 대신에,
따뜻한 마음으로 남길게.
그렇게 믿고 살게.
그렇게 남기며 살게.
그렇게 살게.
그렇게 살게….
그렇게 살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