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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88701
    작성자 : 야설왕짐보
    추천 : 15
    조회수 : 1107
    IP : 211.253.***.34
    댓글 : 10개
    등록시간 : 2016/06/22 13:55:28
    http://todayhumor.com/?panic_88701 모바일
    [사진주의] 봉신당 : 참회의 서 #4. 대면-2
    옵션
    • 창작글
    • 외부펌금지
    봉신당_참회의서.jpg
    크등장인물_최종_다음.jpg

    ※ 움짤등 다소 불쾌/혐오 사진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 부탁드립니다.
         ※ 포토소설로 형식상 모바일에선 다소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되도록 PC환경에서 보시길 권합니다.

      중·장편 분량의 코믹/공포/스릴러 소설입니다. 챕터 #1 부터 보셔요. (순서대로 보시면 됩니다.)

      봉신당 : 참회의 서 #1. 귀곡성-1 : http://todayhumor.com/?panic_88655
      봉신당 : 참회의 서 #1. 귀곡성-2 : http://todayhumor.com/?panic_88656

      봉신당 : 참회의 서 #2. 숙  명-1 : http://todayhumor.com/?panic_88663
      봉신당 : 참회의 서 #2. 숙  명-2 : http://todayhumor.com/?panic_88664

      봉신당 : 참회의 서 #3. 대  결-1 : http://todayhumor.com/?panic_88677
      봉신당 : 참회의 서 #3. 대  결-2 : http://todayhumor.com/?panic_88678
      봉신당 : 참회의 서 #3. 대  결-3 : http://todayhumor.com/?panic_88682

      봉신당 : 참회의 서 #3. 대  면-1 : http://todayhumor.com/?panic_88700
      봉신당 : 참회의 서 #3. 대  면-2 : http://todayhumor.com/?panic_88701


    ********* 


    스기야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내 하나가 홀 한쪽에 마련된 창고로 달려갔다. 그리곤 황금색 보자기에 싸인 둥근 물체를 들고 나왔다.

     

    음산한 기운이 이리도 강하다니... 어찌 이것을 신물(神物)이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사내가 신경을 가지고 다가오자 설 산이 치를 떨며 말했다. 흡사 홀로 한 겨울인 양 온 몸을 떨어대고 모공 하나하나가 쭈뼛하게 선다. 대체 신경의 어떤 부분이 그를 불편하게 했을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신경이 청연의 앞에 놓였다.

     

    자 어서 신경의 힘을 불러내라 봉신당의 숨겨진 가주(家主) 이청연군!”

     

    무거웠던 분위기를 단숨에 허물어뜨리는 스기야마의 착각,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을 틀린 그 말에 청연의 표정마저 의아함이 깃든다. ‘저요?’ ‘산아 나?’ ‘아 헷갈리셨구나? 가주, 기자 발음이 조금 달라요. 저는 기 자!’ 열심히 쫑알거려 보지만 어쩌랴! 스스로 모든 내막을 간파했다 믿는 스기야마에겐 씨알도 안 먹힐 얘기였다. 확신에 가득 찬 표정으로 웃으며 그가 말했다.

     

    이제 그 가면... 좀 벗는 게 어때? 설마 아직도 나를 속일 셈인가! 나 스기야마 토오루! 이미 너희들의 얄팍한 수작 따윈 간파했단 말이다! 어서 신경의 힘을 불러내! 그리고 내 육신에 쌓인 선대의 업을 풀어라! 알겠나! 봉신당의 진짜 가주!”

    ... 아니... 저기요 그게... 뭔가 착오가 있으셨던 거 같은데, 저는 가주가 아니라 기자 허억!”

     

    말을 채 마치기도 전, 청연의 외마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스기야마가 총구를 청연의 얼굴에 가져다대며 위협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런! 또 무슨 흉계를 꾸미는 건가? 몇 번을 말해야 되지? 이젠 속지 않아!”

    ... 흉계라뇨. ... 저는 기... 기잔데요. ... 정말입니다. 흐어어어! 왜 이러세요.”

    끝까지... 거 참 질긴 놈이군! 어디 그 질긴 인생! 이 자리에서 마무리하고 싶나! !”

    흐아악! 살려... 살려주세요. ...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그래! 진작 그랬어야지! 좋아 그럼 일단 신경의 힘부터 깨워!”

    ... 신경이요? ... 제가 의... 의사는 아니지만, ... 사람의 신경이란 게 이... 인체의 정보를 전달하고 또 명령을 내리는... ... 저기... 그러니까... 몸속에 신경을 어떻게 깨워야 되나... 허헉... 관절통은 캐내는데, 신경은... 헤헤... 으아아악!”

     

    횡설수설이 계속되자 흥분한 스기야마의 총구가 하필 청연의 콧구멍을 찔러왔다. 안 그래도 비굴한 표정인데, 코까지 짓눌리니 그 모습이 제법 가관이다. 이쯤 했으면 조금은 여유를 가져도 좋을 법 하나 스기야마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처럼 청연을 위협했다. 사실 청연의 실체를 조금만 알았더라도 이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또 얼마나 쓸데없는 감정의 낭비인지 알았을 테지만, 지금의 스기야마에겐 청연이 봉신당의 숨은 실력자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따라서 어떤 논리적인 설명도 통할 여지가 없었다.

    딸깍, 권총의 안정장치가 풀리고, 극도로 흥분한 스기야마가 부릅뜬 눈을 희번덕거린다. 겁에 질리다 못해 참담하기까지 한 얼굴의 청연은 오줌이라도 지릴 듯 긴장해 있고, 결국 모든 문제의 핵심인 봉신당의 박수(白手) 설 산이 몸을 일으키며 천연덕스레 말했다.

     

    이런 하찮은 일에 어찌 가주님께서 나서시겠습니까? 제가 하지요.”

    하아 하아.. 그래! 산아! 니가.. 니가 해! 신경인지 쉰경인지... 니가... 니가 좀 해... 하아하아

     

    어느 덧 공황상태에 접어든 청연이 시선 한 번 돌리지 못 하고 소리친다. 상황을 회피하고픈 본능적인 외침이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청연을 도우려 일어선 설 산이 다가오지 못하고 멈춰 있다. 바라보니 시퍼렇게 날 선 일본도가 그의 목을 겨누고 있다. 칼의 주인인 코헤이가 호통 치듯 말했다.

     

    4-2-1.jpg


    네 이 놈!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 그냥 거기에 있으라고, 하찮은 조수주제에 어딜 나서는 거냐!”

    내가 신경을 깨우겠다하지 않았소!”

     

    급작스런 설 산과 코헤이의 대치, 설 산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묻자 결정권이 없던 코헤이가 주저하며 물었다.

     

    어찌할까요. 스기야마님!”

    잘했다 코헤이. 네 이 놈!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아까 마사치카를 무너뜨렸듯, 앞에서 네 놈이 시선을 교란하고 또 저 놈이 뒤를 치는 그 얄팍한 수법을 쓰겠다? 어리석긴! 똑같은 수법에 두 번 당할 내가 아니다! 설 산! 넌 뒤로 물러 서! 모든 일은 이청연, 너 혼자 한다. 알겠나?”

    ? 제가요? 뭘요? 어떻게요? 아 대체 제가 왜요!”

    그만두시오. 봉신당의 신물이었다 하나 이미 과거의 일, 단절되어 전해진 바 없으니, 아는 바 역시 없소. 게다가 지금은 시기상 완연한 만월(滿月), 음기가 극에 달했을 터... 자칫 위험할 수 있다는 걸 모르시오?”

     

    설 산이 엄히 따져 묻지만 스기야마의 표정은 요지부동이었다. 외려 불신의 얼굴로 귀찮다는 듯 말했다.

     

    위험하다? 그러니 더욱 더 가주가 나서야지! 안 그런가?”

    맞습니다. 스기야마님!”

    어쩔 텐가! 청연 군! 할 텐가... 아니면 죽을 텐가?

    흐아아악! ‘하든가 말든가지 왜 주... 죽어요!”

     

    다급한 비명소리가 들리고, 쇠붙이의 차가운 촉감이 청연의 관자놀이에 와 닿는다. 두 눈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온몸이 주책맞게 바르르 떨린다. 누가 봐도 분명 겁에 질린 얼굴이다. 하지만 스기야마는 조금도 방심하는 기색 없이 진지했다. 망상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 했고, 어떤 해명도 그를 납득 시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이고 할게요. 합니다. 해요. 제가... 제가 뭐든 하겠습니다.”

    어서! 신경의 힘을 불러내라!”

    ... ... ... 그게!”

    어서! 하라니까!”

     

    설 산이 입술을 깨물고, 마지못한 듯 청연도 제 앞에 놓인 보자기의 매듭을 풀어 헤친다. 하나 둘 풀어지는 매듭,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인 신경이 빛바랜 청동색의 자태를 드러냈다. 어느새 기대감에 차오른 스기야마의 눈빛, 허나 어쩌랴! 청연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멍한 표정으로 신경을 손에 들지만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다.

     

    으아아! 한다구요 해요. ... 그럼 이 거울의 힘을 불러내는 주문이 뭘까... ?”

     

    허망한 질문이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하지만 답은 들려오지 않고, 스기야마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시간 끌지 말고... 어서!”

    하하하! 농담입니다. 조크! 조크 아시죠? 하하핫! 자아! 열려라 참깨!”

    오오옷!”

     

    청연의 그럴듯한 동작과 기합에 스기야마가 반응해 보지만, 정작 변화를 보여야 할 신경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스기야마의 시선이 다시금 매서워지고, 청연이 나름의 상상력을 짜내어 닥치는 대로 외쳐 보지만 애초에 될 일이 아니었다.

     

    수리수리 마수리! ! 반야밀다... 바라함... ... 나무아미타불!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봉신당의 의식은 꽤나 난잡하군! 얼마나 더 그리해야 하지? 난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야!”

     

    요상망칙한 주문이 계속되자 의아해진 스기야마가 독촉한다. 당황한 청연은 무언가 도움을 달라는 듯 설 산에게 눈치를 주지만 반응이 없다. 굳은 표정으로 무언가를 계속 고심하는 눈치다. 결국 난처해진 청연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계속 주문을 외워댔다.

     

    주문을 외워보자. 야발라바 히야! 야발라바 히야 하야물라 하야물라!”

     

    허지만 노래 가사까지 동원하다보니 흥이 났을까? 브레이크 없는 뇌세포가 구성진 노래 가락을 여과 없이 읊고, 스기야마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덩크슛! 한 번 할 수 있다면, 내 생애 단 한 번만이라도 얼마나 짜릿한 기분을 느낄 까아아! 주문을 외워보자! 야발라바 히야... 야발라바... 흐어억!”

    네 이놈!”

     

    화가 난 스기야마가 불같은 고함을 토해내고, 총구가 청연의 관자놀이를 사정없이 찌른다. 그리곤 딸깍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권총의 안전장치를 푸는 소리였다. 격노한 스기야마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 이제 마지막 기회야! 이번에도 발뺌을 하며 내 부탁을 거절한다면, 나로선 실망스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어!”

    흐아아! 살려주세요! 흐윽! 제발!”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내내 무언가를 고심하듯 머뭇대던 설 산이 마지못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가주님! 봉신당 무녀의 다른 이름은 만월의 무녀, 마침 오늘 달이 가득 찼으니 창을 가린 커튼을 치우는 것이 어떠신지요.”

    히이익... 야 썰 싼이! ... 내가 지금 죽게 생겼는데 달구경 하게 생겼냐?”

    カーテンを(커튼을 걷어라!)”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스기야마가 소리쳤고, 곧 사내 둘이 달려가 창을 가린 두터운 커튼을 걷어냈다. 그러자 곧 희뿌연 구름 사이로 커다란 보름달이 보이고 은은한 달빛과 함께 스산한 기운이 엄습했다.

     

    본디 봉신당의 모든 의식을 관장하는 것은 무녀의 일, 가주라 해도 섣불리 의식을 수행할 순 없소!”

    거짓말 마! 이미 신경은 반응하고 있다!”

     

    스기야마의 대답에 흠칫 놀라는 설 산, 하지만 스기야마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희미한 달빛의 영향인지 내내 침묵하던 신경이 진동하며 특유의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커튼을! 커튼을 완전히 치워! 신경이 만월의 빛을 흡수하고 있다! 어서!”

    하이!”

     

    스기야마의 지시가 떨어지자 창 앞에 선 사내가 급히 남은 커튼은 물론 창문을 활짝 연다. 창틀을 뒤흔드는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고, 그 바람에 밀려난 듯 달을 가린 구름이 천천히 흩어져 갔다.

     

    오오! ! 그래 그거였어! 만월의 빛을 받으니 신경의 요력(妖力)이 살아난다.”

     

    스기야마의 말 대로였다. 달빛이 강해지자 신경이 내뿜는 빛의 광량도 섬뜩하리만치 늘어나 있었다. 더 이상 낡고 불투명한 골동품으로서의 청동거울이 아니었다. 미약한 달빛을 머금은 뒤 그것을 음산한 푸른빛으로 바꾸어 한층 증폭시키고 있었다.


    4-2-2.jpg
     

    하지만 약해! 내가 알고 있는 신경의 요력은 이 정도가 아니야! 자 어서! 신경의 진짜 힘을 불러내 보실까?”

    하아.. 하아! ... 그게.. 그러니까

     

    청연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연신 설산을 바라본다. 도움을 바라는 간절한 눈빛이다. 피하려 해도 집요하게 뒤를 쫓는 구원의 신호다. 어찌하랴 달빛의 기운을 받은 신경은 이미 눈을 떴고, 스기야마의 탐욕이 끝을 모르고 차오른다. 설 산이 눈을 감았다. 그리곤 조용히 말했다.

     

    눈을 감고, 우선 마음을 모으십시오. 달빛의 푸르름에 현혹되지 않는 마음이 기자님을 지킬 것입니다.”

    ... 눈 감았어!”

    거울의 떨림과 호흡의 간격을 맞추는 것이 우선, 그것이 곧 내밀어 닿는 것이니 소통의 기본이라.”

    ! 호흡! 후하 후하 후하아아! 후아아아아암!”

     

    차분한 설 산의 설명과 경박한 청연의 호흡은 도무지 어울리는 모양새가 아니었지만, 신경이 발하는 미세한 진동과 청연의 호흡이 점차로 그 주기를 함께하니, 알 수 없는 바람이 머리칼을 헤집고 구름이 내려와 앉은 듯 푸르른 안개가 주위를 감쌌다.

     

    오오! 떠오른다! 떠오른다!”

     

    스기야마가 외쳤다. 그의 탄성에 가리었을 뿐, 혼자만의 외침은 아니었다. 청연과 신경을 바라보던 모든 이들의 입에서 같은 말이 내뱉어졌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 바람, 그리고 푸르른 안개, 세 가지의 신묘한 기운을 머금은 신경이 마치 살아있는 듯 두둥실 허공으로 떠올랐다. 모두의 얼굴이 신경이 내뿜은 푸르름에 잠식되어 바래 질 즈음, 호기심 많은 이 남자도 동참한다.

     

    어디요 어디? 엥 뭐야 바닥에 있구만...”

     

    갑자기 하고 고꾸라지는 신경, 누가 봐도 원인은 하나다. 신경의 요력이 발하자 몸이 달은 스기야마가 험상궂은 얼굴로 소리쳤다.

     

    집중해 집중! 멍청한 척 하면서 시간 끌지 마라! 달이 곧 중천(中天)! 어서! 어서 다시 하란 말이다!”

    ! 알겠습니다. ... 눈 감고! 그래 호흡... 후하아! 후하아아! 후하아아아아!”

     

    이런 경박한 호흡에 맞춰 빛을 발하는 것은 신경으로서도 분명 자존심 상할 일일 텐데, 딱히 대상을 가리는 것은 아닌지, 혹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푸르름은 다시 감돌고 바람이 거세어졌다.

     

    거울의 소임은 본디 비추는 것, 태양이 양의 기운으로 천지 만물을 비춘다면, 신경은 만월의 음기로 양지에 설 수 없는 것들을 비추니 오호 통재라! 애달픈 자들의 초상이 흐드러지게 우는 구나

    ... 그말 따라해야돼?”

    호흡에 집중하십시오. ()으로 요력을 달래어 사역코자 함입니다.”

    그래 후하아아! 후하아아아아!”

     

    점점 커져 가는 청연의 호흡소리, 짙어지는 푸르름의 운무(雲霧), 구슬피 읊는 설 산의 곡소리, 각기 다른 세 움직임이 하나가 되니 불어오던 바람이 거칠어지다 못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푸른 운집이 신경을 중심으로 모이고, 서서히 작아져 하나의 점으로 응축되었다 싶던 바로 그 순간, 갑작스레 그것은 맹렬한 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하더니 각기 다른 형체로 실체화 되어 흩어졌다. 그와 함께 들려오기 시작한 사람들의 아우성...

     

    뭐야! 이게 왜 나한테로 와!”

    ... 이 파란 구름이 몸에 붙었어!”

     

    사방으로 퍼져나간 운무가 사람들을 향해 가고 있었다. 놀란 이들 몇은 급히 손을 휘저어 제게로 다가오는 구름을 쫓으려 하지만 아무 의미 없는 몸부림일 뿐, 요란한 움직임으로 피해도 도무지 떨쳐 낼 수 없다. 설 산이 말했다.

     

    크기도 색도 저마다 다르니, 모두가 스스로행한 업()의 운무라... 이를 어찌 할꼬...”

     

    그의 말 대로였다. 사람들 각각의 몸을 둘러싼 운무는 그 크기와 색이 상이했다. 작은이도 있었고, 유독 짙푸른 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의 업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했다. 단 한사람, 모두의 것을 합쳐도 당해낼 수 없는 거대한 운무의 소유자, 스기야마가 신경을 향해 다가섰다.


    4-2-3.jpg

    그래... 이 검푸른 먹구름이 나의 죄다? 선대의 업이다? 그렇군!”

     

    짙게 피어오른 운무의 대부분이 스기야마 한 사람의 것이었다. 폭풍전야의 먹구름마냥 짙고 푸른 그것은 금방이라도 뇌우(雷雨)를 뿌려댈 듯 흉폭한 모습으로 점점 더 그 세를 불렸다. 그냥 놔둔다면 넓은 홀 전체가 그의 운무로 가득 찰 듯 끝없이 모여들었다.

     

    자 어서! 어서 이것들을 물리쳐라! 업을 소멸시키고, 그로 하여 나를 걷게 하라!”

     

    흥분한 스기야마의 외침, 허나 청연의 가진 재주라곤 그저 신경의 진동에 동화되어 호흡을 유지하는 것 뿐, 무엇을 물리치고 어떻게 소멸시켜야 할지 몰랐다. 심지어 아직도 눈을 감고 그에게 그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허나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스기야마는 청연이 제 말을 무시한다 여겼던지 다시금 총구를 들이대며 소리쳤다.

     

    내 말을 무시하는 거냐! 어서! 내 업을 물리치란 말이다!”

    으아! 후우우! 후우우웁! 후아아앗 뭘 물리쳐요! 후아아아! 후아아아! ! ! 미치겠네! 후하아아!”

    ()은 덕()으로 업()은 업()으로... 만물의 이치가 그러하니, 이 많은 업을 풀어내려면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터! 위험할 수도 있소!”

    후후훗, 정녕 나를 바보로 보는 게냐? 내가 그 정도도 모르고 일을 벌렸다 생각하나? 문헌을 찾았지! 신경, 조선의 왕들을 지켜온 봉신당의 신물, 그 힘은 능히 귀기를 다스리고 왕가의 액운을 치유한다. 만약 네가 말한 그 대가와 위험이 액을 가진 자에게 향한다면, 어찌 봉신당이 왕가의 숨은 조력자가 되었겠는가! 당연히 봉신당의 무녀는 액맞이 무녀일 터! 나를 속일 생각은 마라! 나의 횡액을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 너희 둘 중 하나! 어때 내 말이 틀렸나?”

     

    논리 정연한 스기야마의 주장에 설 산이 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다. 그 사이 스기야마의 주변을 떠도는 운무는 한층 더 자욱해지고, 호흡에 집중하던 청연의 모습도 미력한 변화가 느껴졌다. 신경의 푸른 빛, 그것이 신경만이 아닌 청연의 몸에서도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자세히 바라보니 신경이 내뿜는 빛의 아우라가 반복된 호흡을 통해 청연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역시! 너희 가주가 액맞이 무녀의 역할을 하고 있었군! 어서! 제례를 계속해!”

    그럴 수 없습니다. 무녀란 본디 그 능력을 타고나지만, 수련을 통해 스스로 액을 상쇄하는 힘을 키운 자! 하지만 저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 그럼 지금 당장 죽어도 좋단 말인가!”

     

    !’ 요란한 총성이 다시 한 번 홀 안을 메우고, 매캐한 화약연기와 함께 바닥이 움푹 패인다.

     

    ! 이번엔 바닥을 쏘았지만, 다음은 어디가 될지 맞춰 보겠나? 어렵진 않을게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총을 겨누는 스기야마, 채 가라앉지 않은 총구의 열기가 청연의 관자놀이를 뜨겁게 달구자 다급한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흐아아아! ! 산아! 액맞이고 달맞이고! 일단 해! ! ... 살고 봐야지! ?”

    흐흐흐, 자 이정도면 본인의 동의는 받은 것 같은데?”

    비열한 인간! 타인의 생명으로 제 자신의 업을 풀려하다니!”

    좋을 대로 떠들어. 네까짓 게 어찌 알겠나! 어머니는 죽고, 정이 그리워 기어도 아버지는 날 안지 않았지! 왠지 아나? 내가 병신이라서야! 스스로 설 수 없는 무능력한 자식이라서! 학교에서도 사회에 나와서도 그건 똑같았어! 앞에선 고개 숙이지만 뒤에선 다들 손가락질 했지! 그 비웃음, 그 수모! 어찌 네가 알겠느냐! 이건 내 생의 숙원(宿怨)이야!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일생일대의 대업(大業)! 걸을 수만 있다면, 지옥 불인들 못 들어갈까! ! 선택해! 너의 가주가 지금 죽을 것인지! 아니면 내 업을 지우다 죽게 할 것인지!”

     

    스기야마가 흥분하여 소리치고 청연은 여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설 산의 표정이 어두웠다.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의 순간, 하지만 설 산이 받아든 선택지엔 가혹한 이분법의 답안뿐이다. 설 산이 이를 악 물었다. 그리곤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기자님, 정신을 집중하고 호흡을 유지하세요. 어떠한 원한과 분노가 닥쳐올지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후하아아 걱정마! 후하아아! 내가! 후하아아! 숨쉬기는 후하아아! 일가견이 있어! 후하아아!”

    무념무상(無念無想) 마음을 비우십시오. 혼란한 마음일수록 더 심하게 요동칩니다. 품은 것이 적어야 고통도 적은 법!”

    후하아아! 걱정마! 후하아아! 나는! 후하아아! 지금! 후하아아! 아무 후하아아! 생각이 없어! 후하아아!”

     

    청연의 외침이 거친 호흡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려왔다. 애잔한 시선으로 바라보니, 청연은 이미 무념무상, 붕어처럼 입을 벌린 채 오로지 호흡에만 집중중이다. 허나 기억을 되짚어 보건데, 평상시라도 크게 다를 바는 없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다. 그러한 생각에 결심을 굳힌 듯 설 산이 말했다.

     

    잘 견뎌 주십시오. ... 좋지 못한 결과가 있더라도 꼭 댁으로 찾아가 야한 동영상 들은 지워드리겠습니다.”

    후하아아! 후하아아! 산아 뭐라고? 후하아아! 후하아아!”

    ! 아닙니다.”

    후하아아! 후하아아! 산아! 후하아아! 이거 아프고 그런 거 아니지? 후하아아! ”

    “......”

    후하아아! 산아! 후하아아! 왜 대답을 안해! 후하아아! 이거! 후하아아! 아픈 건 아니지? 후하아아!”

    아픈 게 문제겠습니까! 부디 내세(來世)에선 고통없이 사시길...”

    후하아아! 그렇지? 후하아아! 안 아프지? 후하아아! ? 후하아아! 내세? 후하아아! 야 임마! 후하아아! 그게 무슨 뜻이야 후하아아! ! 썰 싼이! 후하아아!”

    시작하겠습니다.”

     

    설 산이 자리에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고, 청연은 리드미컬한 호흡을 유지하며 욕설을 내뱉는다. 천천히 짙어지는 푸른색의 아우라, 스기야마가 탐욕스런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하지만 모두의 시선이 신경을 향해 집중되어 있는 사이,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고통스런 표정의 누군가가 문을 열었다. 열린 문 틈 사이로 비릿한 피 내음이 바람에 실려 오고, 분노와 원한으로 가득 찬 통곡의 목소리가 청연을 향했다.

     

    비겁한 놈! 간악한 놈! ... 나를 이 꼴로 만들어? 내가 이대로 물러 날 줄 알았나?”

     

    푸르스름한 빛이 번뜩이고, 비가 올 듯 스산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모두 설 산이 가부좌를 틀며 무언가를 읊기 시작한 후 부터의 변화였다. 불경, 흐느끼는 곡소리, 때론 알 수 없는 말들이 쏟아지자, 맹렬히 요동치던 운무들이 일제히 그 움직임을 멈췄다. 마치 폭풍전야(暴風前夜)와도 같은 고요였다. 모두가 의아해 하는 가운데 우우웅하는 괴이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를 본 스기야마가 흥분하여 소리쳤다.

     

    .. 울고 있다. 신경이 운다!”

     

    스기야마의 말 대로였다. 마치 살아 있는 듯 청동의 푸른색 몸체가 강하게 떨려왔다. 그 진동이 만들어낸 독특한 파동이 기묘한 소리를 냈고, 그것이 흡사 누군가의 구슬픈 울음 소리처럼 들려왔다. 그래서일까? 멈춰 선 개개인의 운무들이 기묘한 모습으로 형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아니 보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 너는... ... 내가 3년 전에 죽인...”

    미안...... ... 네가 자살 할 줄은 몰랐어!”

    저리가! 넌 죽었어!”

     

    자신의 운무와 마주한 이들의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하나 같이 스스로의 죄와 조우(遭遇)하는 것이 불안한 표정이었다. 허공을 헤집고, 격한 반응을 보이며 부인했다. 하지만 황급한 뒷걸음질도, 도망치려는 발버둥도 소용없었다. 점차 구체적인 형상을 띄기 시작한 그것은 죄의 온상을 집요하게 따라 붙었다. 어느덧 홀 안은 포효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지옥을 연상케 하고, 참담한 얼굴의 사람들 사이, 홀로 희죽이며 웃는 자가 말했다.

     

    이런 비루한 것들, 실컷 울고 통곡해라. 그래봐야 너희는 이미 죽었어! 내 너희를 씹어 삼키고 일어 설 것이다. 자 어서 지워라! 선대의 죄도 나의 죄도!”

    달빛의 눈이여, 비추는 자여! 눈물에 우러러 통곡하는 목소리여! 지금 너에게 고한다. 죄를 비추어 또한 향하게 하라. 너와 같이 흐느끼는 이 있으니, 그로 하여금 대신 울게 하리라!”

     

    설 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휘몰아친 운무의 폭풍이 청연을 향해 날아들었다. 코와 귀 그리고 입 벌려진 모든 구멍으로 짙푸른 안개가 파고들었다.

     

    후하아아! 후하아아! ... 으윽! ! 이게 뭐야! 후하아아! 우웁... 으으윽!”

     

    청연의 호흡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멈추고, 고통스런 신음성을 뒤로한 채 운무의 쇄도가 입을 막는다. 운무와 함께 스쳐가는 죽은 이들의 환영, 그 처참한 표정과 통곡이 청연의 눈동자를 점차 검게 물들였다. 감당하기 힘든 듯 시작된 경련과 고통스런 몸부림, 그럼에도 운무는 사정없이 휘몰아쳤다. 설 산이 질끈 눈을 감고, 휠체어를 짚고 일어서며 스기야마가 소리쳤다.

     

    그래! 이 느낌이야! 다리가! 내 두 다리에 조금씩 느낌이 와! 그래! 이제 나도 설 수 있어!”

    부디 버텨주십시오. 제발...”


    4-3.jpg

     

    환희와 절망, 스기야마와 설 산, 상반된 표정의 두 남자가 각기 다른 감정으로 외치고, 청연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검푸른 운무의 힘이 그의 몸을 끄집어 올린 것이다. 점차로 더 높이 떠오르는 청연의 몸, 그와 함께 빨려 들어가는 운무의 압력 역시 강해졌다.

     

    한계다. 감당하기에 너무 많아. 멈춰야 돼!”

    아니! 멈추면 저 자는 그 자리에서 죽는다!”

    하지만... 지금 멈추지 않으면!”

    다시 말 한다! 지금 멈추면 너도, 저 자도 둘 다 죽는다. 모르겠나?”

     

    스기야마, 어느새 휠체어를 버리고 일어 선 그가 말했다. 아직 걷는 것은 이른지 단순히 서 있을 뿐이지만, 그의 얼굴은 희열에 가득 차 극도로 흥분해 있었다. 일생의 숙원, 평생의 한, 그 모든 것이 이뤄짐에 만족스러운지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그런 반면 청연의 상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었다. 흡입되는 운무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듯 몸 여기저기가 울룩불룩 튀어 나오고 있었다. 이마와 턱은 마치 혹이 난 듯 살가죽이 터져라 부풀어 오르고, 팽창된 눈꺼풀은 눈을 덮어 사람이 아닌 다른 것의 형상을 만들었다. 자지러지듯 떨리는 경련 역시 더 심해지고 있었다. 자칫 내버려두었다간 큰 일이 날 것 같은 청연의 모습에 결심한 듯 설 산이 말했다.

     

    멈추겠소!”

    멈추면 너부터 죽는다!”

     

    청연을 앞에 두고 두 사람의 날카로운 신경전이 펼쳐졌다. 멈추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어느 한 쪽도 쉽사리 움직일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 저주 섞인 분노의 외침이 들려왔다.

     

    んで(죽어!) 奉神堂悪魔(이 봉신당의 악마!)”

    안 돼!”

    아니 넌!”

     

    세 개의 외침, 폭발하듯 쏘아진 그림자의 쇄도, 놀란 스기야마가 돌아서고 설 산이 달려든다. 하지만 무엇도 이 치명적인 움직임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겹겹이 싸인 푸른빛의 운무를 뚫고 날아드는 흑색의 저주, 그 두 개의 힘이 충돌했다.

     

    으아아악!”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고막을 찢어낼 듯 격한 굉음이 이어 졌다.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강렬한 음압(音壓)이 모두의 귀를 사로 잡았다. 홀 안의 모든 유리가 산산조각이 나 흩어지고, 사람들은 귀를 막은 채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폭발음의 뒤를 이어 강력한 후폭풍이 몰아쳤다. 천장의 샹들리에와 창틀이 떨어져 나가고, 책상과 의자 역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팽개쳐졌다. 무시무시한 풍압(風壓)의 폭풍은 어느새 짙푸른 운무를 머금고 한층 더 맹렬해지고, 건장한 사내들조차 버티지 못해 나동그라졌다. 실로 엄청난 후폭풍의 연속, 부서진 집기들이 바람에 실려 흉기가 되어 날렸다.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리고, 고통에 찬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짙푸른 운무의 폭풍은 제 속내를 보이기 싫은 듯 시야를 가리고, 어디서 무엇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또 한 사람의 비명이 깨어진 창밖으로 내밀렸다. 그제야 비로소 가라앉는 폭풍, 누군가의 핏물이 비처럼 흩날리고, 아수라장이 된 홀 한쪽 귀퉁이에서 한 사내가 바닥을 기며 소리 쳤다.

     

    안 돼! ... 내 다리... 내 다리가 움직이질 않아! 안 돼! ... 다리! 흐윽!”

     

    *******

     

    ’, 적막한 고요를 깨고 한 발의 총성이 들려왔다. 여유로이 날 던 한 밤의 새들이 흩어지고, 빌딩 앞 도로는 아수라장이 되어 흩날린 집기들로 난잡하다.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사내가 바닥에 쓰러지고, 울긋불긋한 혈흔 위 또 한줄기의 핏물이 바닥을 적셨다. 원망스런 눈빛만이 허무하게 나뒹굴고, 손에 든 총을 수하에게 건네며 그가 말했다.

     

    마사치카! 건방진 놈, 사사로운 복수심으로 감히 나의 대업을 그르쳐?”

    스기야마님 저 놈도 함께 처리할까요?”

     

    심복 코헤이가 신경을 손에 쥔 채 망연자실 서 있는 설 산을 가리켰다.

     

    저 놈은 아직 이용가치가 있다. 사람을 풀어, 그리고 이번엔 무녀를 잡아와! 그 무녀가 대업의 열쇠를 쥐고 있다.”

    하이!”

     

    코헤이가 손짓하자 그나마 부상이 덜한 사내 몇이 설 산에게로 다가선다. 하지만 어인일인지 사내들의 안간힘에도 설 산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멱살을 잡고, 두 팔로 끌어도 다리가 땅에 붙은 듯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안됩니다. 희한하게도 꼼짝도 하질 않습니다.”

    뭐야? 이 멍청한 놈들!”

     

    스기야마가 역정을 내보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설 산이 내보인 괴력은 이미 자신도 알고 있던 터, 흥분한 스기야마가 답답한 듯 소리쳤다.

     

    총을 쏴! 권총으로 다리를 쏴 버려!”

    안됩니다. 조금 전의 폭발로 인해 아래에 경찰들이 와 있답니다. 일단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뭐야? 이대로 물러나란 말인가?”

    어쩔 수 없습니다. 여기는 본국이 아닙니다. 자칫 일이 알려져 여론의 뭇매라도 맞게 되면 앞으로의 일도 곤란해질지 모릅니다. 외국인의 권총 사용은 한국에선 중대한 사안입니다.”

    제기랄! 빌어먹을!”

    일단 피하시죠 스기야마님

    두고 보자! 난 반드시 돌아온다.”

     

    부서진 휠체어 대신 수하의 등에 업힌 스기야마가 악다구니를 내지르며 멀어지고, 홀로 남은 설 산이 처량한 목소리로 물었다.

     

    기자님... 어찌 되신 겝니까. 이제 정녕...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입니까?”

     

    그때 부서진 집기의 잔해사이로 익숙한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스기야마에게 끌려오며 빼앗겼던 설 산의 휴대폰이 낸 소리였다. 잔뜩 금이 간 액정 위로 동생이란 두 글자만이 선명했다.

     

    함께 가셨던 기자 분은 어디 계십니까?”

    안타깝게도 운명(殞命)하셨다.”

    그럴 리 없습니다. 미약하게나마 그 분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나 또한 믿고 싶지 않으나, 내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 어찌 거짓을 말하겠느냐!”

    아닙니다. 분명히 느껴집니다. 망자의 기운과는 다릅니다. 그 기운의 파동이 요상하여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나아가도 쭉 뻗지 못하니 생소하긴 하나 절대 죽은 자의 것은 아닙니다.”

    망자의 기운과는 다르고, 그 흐름이 요상해?”

    ... 너무 먼 곳에 있어 닿지 않는 듯 미약하나 분명 산 자의 기운입니다. 그리고 그 기운이 쉼 없이 전해집니다. 마치...”

    무언가 집히는 것이 있는 게냐?”

    신경의 요력(妖力)... 그곳에 깃든 한()... 그 분을 엉뚱한 곳으로 모셔간 건 아닐 지요?

    그 뜻은 설마?”

    ... 신경과 봉신당의 연이 끊어진 곳, 신경에 얽힌 원혼의 한()이 서린 곳, 그곳이 바로 기자님이 계신 곳 일 겁니다.”

     

    설산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 곧... 네가 있는 곳으로 가겠다. 한바탕 굿을 해야 할 듯 하니... 암자로 떠날 채비를 하거라.”

    이미 준비를 마쳤습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봉신당티져.jpg

    봉신당 : 참회의 서

    Written by 야설왕 짐보(미/스/공)

    스터리/릴러/포 괴담공작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멘트

    다음 챕터부터는 과거로 돌아간 청연과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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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설왕짐보의 꼬릿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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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 그게 나의 인생이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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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합니다. 장편소설 두편(창녀와 나, 진혼무)는 개인사정으로 잠시 글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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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편] 창녀와 나 <추천> <추천> <추천> <글쓴이 강력추천> <은근 호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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