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구나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늘 불안감을 가지고 삶을 살았다. 이러다가는 남들 만큼도 못하며 사는거
아닐까? 낙오자? 딱히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특기가 있었던게 아니었다. 그저 어릴적부터 컴퓨터에 관심이 많아서
돈 많이 안드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적을 두었지만, 천재성이나 남들보다 확식하다 할만한 능력을 지닌 것도 아니다.
2. 이 불안한 정서에서 내 인생의 굴곡에 의해서 얻은 정서적 문제는 가장 큰 문제였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아르
바이트를 하게 되면, 한달이 멀다하고 잘린적이 흔했고, 친화력이 부족해서 사람들과의 관계는 늘 어그러져 있었다.
사랑이라는 것도 평범함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사람들이 하는게 아닐까?
3. 군대에 가야할 시기가 왔을 때다. 나는 당시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고, 의사 선생님은 진심으로 만류해
주었다. 하지만, 남들 다하는 것도 못하면 이대로 정말 낙오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리고 어떤 변화를 갈구하기도 했고, 갈때는 끌려가는 기분으로 가긴 했지만, 충분히 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내가 선택을 했으니....
4. 군대에서 얻은것과 잃은것...... 셀수 없이 많다. 긍정적인 면에서 다행인 점은 사회성과 소프트웨어 기술 이고
잃은 건 지독한 불면증과 사람에 대한 냉소를 배워 왔다는 거? 아 하나 더... 심각한 무기력증...
5. 특기를 살려 전산운용병에 지원을 했다. 행정병이 아니라 군 인트라넷 망을 관리하는 중앙 전산실에서 장비들을
운용하기위해 생긴 특기병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전산실에서 하는 오만 잡무를 다 익혔고,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하게 되었다. 소프트웨어 개발병이라는 직무는 따로 있지만 이건 정말 국방부 또는 사령부 예하에서 하는 것이고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이 필요하기에 자격요건은 되지 않았다.. 대신 작은 단위의 군단, 사단 급에서 쓰는 소규모의
소프트웨어 개발인력이 필요했고, 이를 전산운용병들이 간혹 맡아서 하게 되기는 한데, 내가 그 일을 맡았다.
6. 문제는 이 전산실이라는 곳이 시장바닥 마냥 지저분하고 너나 일의 구분이 없고, 오만 인간 군상들과 어울려야
하는 곳이었다. 좀더 정확히는 통신병과에 속하는 일이라 각종 통신관련 기술병들과 서로 다른 직무를 함에 따라
입장과 사정이 다른데도 불구 선후임이라는 이유로 갈등도 많았다.
7. 좀더 정확하게 얘길 하자면, 내가 속한 군단 전산실은 모든 군단 예하의 인트라넷 망을 관리하는 곳이었다.
그러다보니 수억, 수천만원의 네트워크 망을 관리 하는 곳이기도 했다. 이것만 하면 다행이지만....
그다음은 각종 소프트웨어의 서버장비들도 관리를 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소프트웨어(국방물자, FRMS, 전자문서, Email)
등에 문제가 생기면, 민원을 해결해 줘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군단 예하 모든 전산기기들 보안과 기능을 점검해야 하는데... 전산실을 거치지 않고서 나갈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컴퓨터가 고장나면 수리를 해야 하는 곳도 전산실이었고...
전산실 간부가 아무리 높은 직책일지언정.. 군단 사령부 대부분 계급이 기본 소령, 중령은 먹고 들어 간다는 점에서.
고작 대위 하나가 반장으로 일하는 곳은 그야말로 군인들의 민원처리 장소였고, 가장 만만한 곳이었다.
사제 컴퓨터 수리는 우스운 일이었다...
8. 업무는 이처럼 가중한데, 내가 배치 받은 당시 전산실 인원은 고작 10명 남짓이었다. 그리고 온종일 신경써야
하는 대부분의 업무가 먼지 아는가? 바로 전화 업무였다.
군단의 거의 모든 일들이 전산화 되어 있던 상황에서 컴퓨터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사람들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오류라도 하나 뜨면, 이 무식한 군간부들은 전산실에 전화를 걸어 문제 해결을 요구해다.
컴퓨터가 조금 느려졌다거나... 갑자기 키보드나 마우스가 안된다..... 컴퓨터가 뻗었다. 이메일을 실수로 삭제했다.
결제를 엉뚱한 곳으로 보냈다.(예를 들면 삼성장군 군단장?)
민간에서도 각종 진상고객으로 하소연 많은 걸로 알고 있다. 특히 텔레 마케터들...
근데, 내가 일한 곳은 군대였다. 전화벨 세번 이상 울리기 전에 받지 않으면 영창도 보내는 곳이었다. 상대하는 간부
들 군단 사령부라 대부분이 군대내에서 한끝발 하다 온 사람들의 집합장소 였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이말의 의미는 말그대로 난 널 엿 먹일 수 있는 사람이다! 라는 뜻이었다.
어떤 인간은 내가 소령이나 되는데 왜 마우스가 볼마우스냐... 광마우스로 바꿔달라...ㅆㅂ (발에 채이는게 소령들인
데 어쩌라고)
9. 일과중에 전화는 정말 5분에 세네 통은 온다. 그리고 일과중 대부분 일들은 바로 이 전화업무를 처리 하는 거라
봐도 상관 없다. 문제는 짬밥 좀 됐다는 선임들은 이 전화를 절때 받아선 안되는 존재인 마냥 행동했다.
자신의 직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넘기는 데도, 단 한통화라도 넘기게 되면, 그날 갈굼은 당연한 거였다.
10. 내 선임들 중 5명이 몇달 지나지 않아 상병 초에 왕고를 잡았다... 그 넘들은 자기일도 제대로 하지 않고.. 온종일
전산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컴퓨터로 몰래 깔아놓은 게임이나 하는 주제에 요구사항과 자신에게 떨어진 미션을
아랫 후임들에게 떠 넘기기 일수 였다. 어쩌다 네트워크 점검, 훈련, 막내급에서나 할법한 PC수리나 전화 받기라도
할라 치면 그 불평불만과 갈굼은.......
11. 어떤 실험이었던가?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적이 있는 유명한 실험이었다.
일반인을 선발하여 간수와 죄수를 구분시켜 실험을 했는데, 간수를 맡은 인간들이 권한이 주어지자
단순한 실험터였던 그곳이 지옥이 되었다, 죄수역을 맡은 사람들이 괴롭힘 당하다 실제 죽기도 했다고.. 후유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근데, 나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별로 놀라지 않았다. 대한민국 군대가 바로 그런 곳이 아닌가..
안량한 권한이 조금이라도 주어지면, 자신이 정말 대단한 인간이라도 된거 마냥 오만 특권은 다 누리려 하면서
의무는 지지 않는...
상황이 불리할 때는 피해자 놀이를 하면서, 막상 자신에게 안량한 권력이라도 생기면 소꿉놀이 하듯이 밑을 향해
말도 안되는 폭력과 억압을 행사했다.
12. 특히 전산실이라는 곳은 그런 생활 하기가 아주 편한 곳이었다. 건물 자체가 다른 곳과 분리되어 터치 할 간부
는 고작 한두명 뿐이었고, 왕래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보안시설이라 보안권한 없으면 출입도 안되었다.
간수 역을 맡게된 병사들은 암묵적인 묵인과 방관을 이용해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감시했다...
허락 없이는 화장실도 갈 수가 없었다.
간부와 책임자들은 알면서도 방관했다. 왜냐하면 그게 어쨌든 더 편하니까?
간수와 죄소의 놀이를 하기에 아주 적합한 장소였다.
선임들은 간부 앞에선 아무말도 못하고, 단체 생활을 하는 내무반에라도 가면, 다른 고참들에게 짓눌려 기도 못폈으면서
정작 자기 직속 후임들에게는 김일성 처럼 굴었다.
13. 선임들의 선임들의 선임 때 부터 내려오던 방식은 좀 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그나마 앞 선임들이 일찍 제대해
군번이나마 잘 풀렸던 이 인간들은.. 지독했다. 자기들이 당했던 그 방식 그대로 아랫 후임들을 휘두르고 억업하고..
게다가 영리하기까지 해서.. 후임들끼리 이간질 하고, 갈라서게 하는 법도 잘 알았다.
14. 나는 그 모든 업무를 하면서도,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도 맡았다.. 선임들은 갖들어온 새파란
놈이 전화도 받지 않고 자기들 처럼 편하게 일하는 꼴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오분에 수통씩 오는 전화라는 전화
는 다 받아야 했고, PC수리 같은 하찮은 일은 자신들의 몫이 당연 아니었다. 청소, 음료 심부름 이런건 그냥 말하지
않겠다. 전산 민원이란 민원은 전부 아랫 급들이 처리 해야 하는데, 이 중에서도 어쩔 수 없이 선임들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할라 치면, 말도 못할 수모란 수모는 다 당했다.
15. 자연이 내가 해야 할 본래 직무는 야근을 통해 처리 해야 하는데, 제때 잠을 못자는게 당연했다. 여기에 보태어
불침번도 아랫급들이 맡아야 할 일이었다. 잠은 늘 부족했는데, 남들 다 허락된 주말, 휴일 낮잠도 우리 분대의
전통이라며 피로를 풀 기회 한번 주지 않았다. 심지어 감기에 걸렸을 때도, 배탈이 나서 모든 음식을 개워 내고..
정신 차리기도 힘든 상황에서도 일을 해야 했다.
16. 나는 나대로 어떻게든 적응을 하고자 애썼지만..... 소원수리 한번 적어 내지 않고, 어떻게든 어울리려고 노력
했건만, 나는 어느새 군생활 내내 선임들의 갈굼과 왕따질에 놀아 나고 있었다. 바로 맞선임들과는 당연 사이가 안
좋았고, 아랫 후임은 죽어라 기다려도 들어 오지 않았다. 상병 중반을 넘어서야 후임 둘이 겨우 들어 왔는데..
그 전까지는 막내라는 이유로 정말 취급도 못받으면서 죄수 취급을 당했다.
17. 잠은 하루에 4시간 가량 밖에 자지 못했다. 주말조차도.. 문제는 보장 된 이 4시간의 잠 조차도 주기가 없었다.
하루는 아침에 자고, 하루는 저녁에 자고, 하루는 오후에 잤다.... 수면의 시간과 질보다 문제는 수면의 불규칙성이
정신을 좀 먹었다. 자연히 에너지가 다 소진된 방전된 베터리 끼운 장난감 처럼 생활했다. 딱 한번인가 자살 충동도
느낀적이 있었다.
18. 내 잘못이 아닌 일에도 잘못을 뒤집어 씌기 일상이었고, 위에서 해야할 의무와 책임은 전부 만만한 나의 몫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순순히 상대 해줬던게 문제였던거 같다. 어떻게든 반항하고 덤볐어야 했다. 하다 하다 안되면
싸우고 부딛치기라도 했어야 했는데, 너무 순진했다. 짐승을 왕처럼 모셔준다고 왕이 되는건 아니다. 짐승은 짐승
일뿐...
19. 유격훈련에 당연 떠밀리다 시피 해서 참여한적이 있다. 남들은 유격 한번이라도 가면, 군생활이 꼬이네 마네.. 지랄
을 하는데.... 전산실을 벗어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좋았다.
남들 처럼 제시간에 깨고, 재시간에 자고, 제때 밥먹고..... 거기다 운동도 하고.....
내 군생활 중 가장 스트레스가 없던 기간은 유격훈련 1주일 그 기간이 전부였다.
20. 일이 바쁠 때는 3일 연속 잠을 재우지 않고 일을 시켰다. 그러고도 잠자라고 준 시간은 고작 4시간이었다.
60여시간을 못자다가 겨우 네시간 만 자다 억지로 깨울 땐.... 화낼 기운 조차 없이 눈앞이 새하얗다고 해야하나..
기운을 차릴 수 없어 엉거주춤 서있던걸 보고, 짝다리 집는다고 영창에 보내니 마니 지랄을 해댔던 적도 있었다.
젊은 놈이 이때 고생 안하면 언제 하겠나며.... 위로랍시고 던졌던가? 죽지 못해 깨서 일해야 하는 상황에
눈물이 나는지도 모르고 모니터 앞에서 아무생각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던게 생각난다.
21. 선임들은 보름에 한번꼴로 베알이 꼴리는지.. 한두명씩 돌아가며 전산실을 뒤집어 놓았다.
잠 재우지 않고 일시키기는 예사였고, 말도 안되는 미션을 주고 사람을 가지고 장난 치거나 ..
청소라는 명목으로 전산실의 바닥에 치약 청소를 시키거나... 숱하게 꼬여있는 각종 전선들을 재정렬을 핑계로
정리 시켜댔다... 전부 교육적 차원에서...
22. 간부라고 하나 있는 놈은 맨날 상부 눈치에, 떡밥에 일이란 일들은 다 끌고 들어와 부려 먹었다. 자기 딴엔
선임들에게 시키지만 그게 어디 선임들 일인가..... 각종 사제 컴퓨터 받아 와서 수리를 시키거나...
자기에게 득이 될일 같은건 전부 가지고 와서 병사들에게 떠 넘겼다...
맨날 큰소리 치며 갈구는게 자기 일이었고, 누가 부당한 일을 당하든 말든 알면서도 모른체 했다.
20. 후임이 들어 온 순간부터, 악습을 물려주지 않기위해 애를 많이 썼다. 내 땐 안이랬는데... 내가 당한게 있는데..
이런 생각 자체를 가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후임들이 실수를 하든, 어떤 꾀병을 부리든 받아주었다....
내 억울함 풀기에 앞서 그동안 비효율적으로 처리되던 일들을 바로 잡는데 애를 더 많이 썼다.
어차피 막내생활도 개같이 길게 했는데, 전역할 때까지 일 하지 말라는 법 없을 거 같아서.. 위에 일 아랫 일
구분 하지 않고 다 같이 했다. 내 때, 전산실 업무 전환시기가 겹쳐서 전산병 인원이 절반으로 줄었는데도..
오히려 일이 더 쉬워졌다. 업무를 미루고 책임을 미루는 일이 사라지니.. 전산실 일이 좀 더 효율적으로 처리되었다.
전화 업무가 거의 떨어지지 않는 저녁의 야근은 전산병들 끼리 담소를 나누고 음식을 나눠 먹는 장이었다.
어떤 말도 오고 갔고, 어떤 행동에도 제재를 하지 않았다... 계급 보다.. 일의 책임을 가지고만 따졌다.
21. 왕고가 된 이후로는 심각한 불면증과 무기력증에 짓눌렸다. 심각한 기면증 증상도 있어서 절때 잠을 자면 안되는
상황에서 발작하듯이 쏟아지는 잠을 절제 하지 못해 실수도 많이 했다. 그러하면서도 불면증도 있었으니 이건
정말 할 짓이 아니었다. 무기력증 때문에 일도 거진 하는 둥 마는 둥 놓아 버렸고... 일보다 쓸데 없는데 시간을
쏟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 하기도 했다..... 다만, 후임들에게 말도 안되는 일을 떠넘기거나 한적은 없었다.
아래로 떠맡겼던 책임들을 다시금 왕고인 내가 책임지고 나니.. 간부들의 갈굼도 날이 가며 심해 졌다.
하지만, 무기력증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나마 후임들과는 심각한 갈등을 겪지 않아서 애들이 내 사정을 많이
봐주었다.
22. 말년 휴가가기 얼마 전에... 모든 업무에서 멀어진 후.. 대신 각종 잡무들이 나한테 떨어졌다. 전산실 청소,
페인트칠, 자갈 모아와서 바닥에 깔아두기.... 햇볓을 쬐고, 큰 부담 없이 하면 되는 일들이라 차라리 속편하게
했던거 같다. 후임들이 말년이 저런 하찮은 일 한다고 전전긍긍 눈치를 보긴 했지만....
내 나름의 말년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무엇보다 컴퓨터 앞이 아니라 해를 받으며 노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꾀나
자유를 느끼게 해주었던거 같다.
23. 제대 이후 심각한 불면증과 발작처럼 오는 기면증에 시달려야 했다. 기면증은 사라졌지만, 불면증은 여태 나를
괴롭힌다. 전화벨 소리에 대한 히스테리가 생겨서, 늘 진동으로 하고 다닌다. 전화벨 뿐만 아니라 사이렌 소리
각종 기계음.. 삐~ 삐~, 따르릉~, 자전거 경적, 오토바이, 자동차 경적 증등... 각종 소음에 지나치게 예민해 졌다.
그래서 그걸 막기 위한 다른 무언가를 듣고 있지 않으면 안되었다. 음악소리도 때론 예민하게 느껴질때가 있어서..
요즘은 라디오 토크를 주로 듣는다.
24. 인간에 대한 시각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 어릴 땐, 모든게 내 문제로 생각하고 위축되었다면, 이때 부터는
사람 자체에 대해 불신을 하게 된거 같다. 내가 잘 하든 못하든, 인간들의 차이와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같은 일
앞에서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대부분 선의 보다는 악의에 더 많이 휘둘린다는 것도
배웠다. 딱히 죄짓고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사람들에게 냉소적이고 냉담해 진게 사실이다.
그전엔 그래도 성선설을 믿었지만...... 내 머리에서는 폐기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성악설을 믿는 것도
아니다.
25.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사회성(?) 이라고 부르지만 '눈치'로 해석되는 무언가를 배우고 나왔다는 거다. 이때
이후로는 어디 아르바이트 가서 잘리고, 남한테 뒷통수 맞고, 사람들에게 괜히 휘둘리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선을 그어서 친하게 지낼 사람과 아닌 사람에 대한 구분을 확실히 했다.
26. 군 제대후 자신감도 많이 생기기도 했지만, 얻어온 고질 병과 바뀐 성격탓에 사실 잃은게 더 많았다.
27. 소프트웨어 개발 경력과 전산실 업무가 복학후 꾀나 많이 도움이 되었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자료와 지식
자체가 또래 애들과 비교 불가였고, 그네들이 쏟아붙는 시간동안 10배는 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딱히 취직에
도움까지 돼진 않았다.
28. 취직때, 먼저 먹었던 그 감 덕에 체 했는지... 좀 처럼 소프트웨어 바닥에 오는 것을 망설였다. 그 숱한 야근의
기억과 지옥같은 현실에 사실 이 바닥에 오는 것을 꾀나 망설여야 했다. 하지만, 결국 버리지 못했다..
다행히 사회는 군생활 보다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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