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08년 촛불 사태 때였다.
당시 막 졸업하고 난 백수로 지내고 있었다. 유럽발 금융 위기가 있었고..
딱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인데......
정권이 바뀌고 어수선 했고, 쇠고기 파동과 촛불로 정국은 수렁에 빠져 있었다.
나는 쇠고기 파동을 뉴스를 통해 접하고, 다음 아고라에서 글을 서칭하고..
100분 토론을 통해 꾀나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시고는 직장도 못구하는 놈이 쓸데 없는 것에 관심만 가지는 빨갱이
취급을 했다.....
나는 고집이 좀 쌘편이었다.
집에서 만류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부산에서 지켜만 보기 너무 안타까워서.....
쇠고기 파동 관련 부산모임, 다음 카페에 가입하고 딱 한번이라도 좋으니까 참여나 해보자
하고 덜컥 신청하고 어떤 주말 집회때 참여를 했다.
부산 사람이라 서울지리도 잘 몰랐고, 혼자 가자니 너무 겁이 난 것도 있었다.
모임측에서 버스를 대절하여 사람을 모으고 있었고....
나는 잘 됐다 싶어 회비를 내고 참가 했다.
모임 날..... 버스를 배정받아 타고 자리에 앉았는데......
먼가 깔끔하고 단정한 추리링을 입고(보통은 안꾸밈의 상징인데),
모자를 뒤집어 쓴 여자가 오르는 것을 봤다..
부드럽고 먼가 지적인 느낌이 나기도 했다...
속으로 생각에...... 저 여자가 내 옆에 앉았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나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앞뒤로 왔다 갔다 하더니..
내 옆자리에 덜컥 앉는 거였다...
나는 가슴이 두근 거렸고,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가는 입장에서도 좀처럼 말을 붙이지 못했다..
그저 인원확인차 사람들 이름을 호명하고,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여정동안.....
막간을 이용한 사람들의 자기 소개때..... 그녀의 이름을 듣고... 잊지 않으려 애썼던
기분이 들었다....
자기 소개를 할때, 당시 유명했던 여성 3대 카페 중 한곳 소속이었는데.....(여시 아님)
서울에 같이 올라갈 곳을 찾다가 인연이 됐다고 했던거 같다.
서울로 올라가는 동안 지방 번호판을 단 전경차량(일명 닭장차)들이 속속히 서울로 향하는
것을 보며 꾀나 긴장하고 비장감도 감돌기도 했다.
당시 빌려서 탄 버스는 에어컨 쪽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인데, 에어컨이 틀자...
하필 내가 앉은 자리 쪽에서 물방울이 수시로 떨어져 내렸다. 처음엔 한두방울이었지만..
나중에는 거의 물줄기 마냥 에어컨 구멍 틈으로 끊이지 않고 떨어져 내렸다....
마침 촛불집회 참가였고, 물폭탄 맞을 걸 예상했고.... 두둑히 챙겨온 타올로 물을 훔치고
내자리에 떨어지는 물이 그녀에게 향하지 않도록 안절부절 하며 서울로 내내 향했다...
그녀는 말이 적고, 행동거지가 얌전하고 바른 사람으로 보였다...
나는 촛불시위는 더이상 안중에 없어졌고, 그녀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이른 오후에 도착한곳은... 광화문광장이었다...
그 넓은 곳에 수많은 단체와 인파가 모였고.. 수 많은 깃발들이 모여 수많은 사람들을
통솔하고 있었다.
사람들 하나 하나는 개개인 각각이었지만, 깃발이라는 존재는 내가 속한곳과 이곳에서 뭉처야
할 곳을 알리는 중요한 지표였다.
광화문 광장은 처음이었고... 수 많은 사람들 속에서 가져온 먹을 거리를 나누거나...
자원봉사자들의 통제를 받으며 서로 처음 본 사람들끼리 유대를 나누곤 했다.
그녀는 먼가 멍하니 있다가 길이라도 잃을라 치면 같이 버스에서 합석했던 나를 보곤 따라다녀
주었고.. 나도 그녀에 대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먼지 몰랐지만 순조로웠다랄까?
저녁이 되고.. 광장에 촛불이 켜지고..... 수많은 사람들은 어느새 대오를 이루어 거리에 나서서
어딘가로 향했다.... 잘기억은 나지 않지만.... 종각부근 인거 같기도 하다....
지금은 아쉬운게 내가 그날의 일들을 기록해 둔것이 아무것도 없다. 오직 기억에만 의존해야
하는데, 종각일수도 아닐수도 있다. 어쨌든 시위대는 청와대를 향하다가 명박산성과 버스와 전경들로
가로 막힌 곳에서 발이 멈추었다.
나는 이렇게 큰 대규모의 시위는 내 인생 역사에서는 처음으로 겪는 일이었고... 모든게
신기했다. 가장 앞쪽에서는 물대포를 쏘고, 차벽 넘어에서 전경들이 소화기나 어디서 조달한지
모르는 물건들이 날아왔다.
실제로 물대포에 쓰러지고 물건에 맞아 쓰러진 부상자들이 속출하는 난장판이었다.
버스를 무너트리기 위해 정말 기다란 밧줄들이 버스에 걸고 수십 수백 미터를 사람들이
잡아 당겨댔고...... 전경들은 오와 열을 맞추어 다니며 이상한 구호들로 시위대들을 위협했다.
내가 간 날 당시에는 큰 폭력사태는 이러나지 않았지만..... 전경들은 큰 도로에서 벗어난
좁은 골목등지에서 시위대를 주시하고 있었다.
시위대 뒷편에서는 누군가가 기타를 치거나 같이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놀고 있었고..
불을 피워놓고.. 앞쪽에서 물대포에 맞섰던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축제를 벌이듯 유쾌한 상황이 벌어졌다..
주변 상가들은 대성황이었다... 그 수많은 인파들 중... 일부 이탈한 사람들은... 술집에서
구경을 하며 술을 마시거나 했고..
편의점은 넘치는 사람들 인파에 물과 음료는 거의 동이 나고, 비옷과 간식들을 사려는 사람들
로 북적댔다....
개중 우리 일행은 시위도 하고, 때론 즐기기도 하면서.....
긴 시위대 중간 쯤에 있는 맥도널드를 기준으로 연락망을 구축했다..
맥도널드 안은 완전 난장판이었다. 음식을 주문하는 사람들은 정말 정말 끊이지 않기도 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시위하다 지쳐... 물에 맞아 피로해진 몸을 피해 몰려 들어 있었고..
어떤 사람은 드러누워 있거나 앉아 있었고... 좌석이 부족해 맨바닥에 주저 앉아 있어서
발디딜 틈이 없는 상황이었다.
처음엔 나는 호기심에 혼자 행동하다 시피 돌아 다녔지만...... 맥도날드에서 몇번 그녀와
마주친 뒤에는 그녀와 거의 함게 다녔다.... 딱히 말을 나누거나 한건 아닌데..
버스에 같이 합석했다는 인연에 합격을 했는지.... 그녀는 나를 졸졸 따라 다녔고..
나는 그 험악한 상황에서 무슨 일이라도 잘못 될까봐... 그녀를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게
신경써 주었다... 우리 둘 사이에는 기나긴 침묵만 오갔는데도 불구...
어느새 나와 그녀는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
시위가 절정에 달하고, 인파가 하나둘 사라지고 난후.....
전경이 마무리 해산 작업을 할때..... 나는 그녀보고 다른 곳에 가보자고 했다.
우리는 물에 젖은 생쥐꼴이 었고... 옷을 갈아 입어야 할 상황이었다.
나는 나대로 찜질방이나 목욕탕이라도 찾아 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당시 서울 지리도 몰랐고, 스마트폰이 보급되기도 전이라...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랐다. 목욕탕 간판이 보이거나 사우나 간판이 있는 곳에 다 돌아 다녀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는 남탕만 있다는 말이었다... 참 괴상한 동네라고 생각했다...
처음 만난 그녀를 데리고 모텔이라던가 그런 곳을 갈 엄두를 내어 본적이 없었다...
어두운 새벽에서 점점 해가 밝아오는 당시...... 봉쇄된 그 넓은 도로들은 먼가
이세상에 우리 둘만 남게 한 거 같았다...
차들은 다니지 않았고, 도로엔 낙서된 닭장차들도 보였고, 인파가 휩쓴뒤의 사람들이 남긴
흔적들이 적막하게 굴러 다녔다....
어쩔수 없이... 광화문 근처 지하철역 화장실에 가서....
내가 여분으로 챙겨온 타올을 주며.. 이걸로 몸을 닦고, 새옷으로 갈아입자고 했다..
그녀는 새침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옷을 갈아입고 우리 모임이 미리 지정한 곳으로 향했다..
그녀와 나는 여름의 땀내와 살수차의 물기와 더럽혀지고 눅눅해진 옷을 갈아 입은 상태였고..
서로 냄새나고 찝찝한 상황에서 줄곧 붙어 다녔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상황에서 나는 그녀에게 팔베개를 해주었고.....
고장난 에어컨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들을 훔치며... 그녀와 짧게 느껴지는 여정을 함게 했다..
부산에 도착후 헤어질때, 그녀에게 정식으로 요청을 했다..
그녀의 손을 내 뺨에 가져가 대고 말했다.....
우리 사귈래요?
하지만,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먼가 수심이 깊고, 생각이 많아 보였다..
전화번호를 그제서야 교환하고.....
우리는 일주일 뒤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일주일 뒤... 그녀는 자기집이 해운대 근처라 해서.... 해운대에 찾아갔다...
그날 그녀는 아주 단정하고 차려 입고 나왔다.... 우리는 해운대 해변을 줄곧 걸었고..
밥도 한끼 같이 했다..
그녀는 요리가 전공이고 어느 부페식당에서 일한다고 했다... 나이도 나보다 한살 많았다..
나는 아직 내새울게 없는 백수였고.... 손을 잡고... 때론 분위기에 취해 서로 포옹도 했지만..
그녀는 별말이 없었다.... 애매한 태도.....
나는 자격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특히 여자 앞에선....
사랑은 나에게 과분했는지... 연애는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다...
그녀의 그런 애매한 태도에 나는 조금도 확신을 갖지 못했다....
아니 내가 더 확신을 줘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날 난 그녀와 헤어지며, 마지막으로 서로 포옹을 나누었고.... 손을 끝까지 잡았었다..
그녀는 어떤 수심깊은 얼굴로 나를 바라 보았고.... 그날 끝내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녀와 며칠간 문자는 주고 받았지만... 끝내 내가 연락을 거두었다.
내가 문자를 보내지 않으니 그녀도 더이상 답장이 없었다...
내가 좀더 밀어 붙이거나... 좀더 적극적이었다면 아마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안에 남아 있는 불안감은.... 그녀를 놓지게 했다...
훗날... 후회하고 그녀를 찾으려 수소문도 하고... 잊어버린 전화번호를 찾으려 애썼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차피 나와 인연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후 삼사개월 가량 흘러, 나는 취직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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